제주는 잡아 태웠고 울산은 관광자원으로…전깃줄 떼까마귀 어찌할꼬

입력
2023.09.07 04:30
수정
2023.09.07 07:35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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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심을 잠자리로 삼은 떼까마귀

편집자주

도심 속 인간과 동물의 접점이 늘어나면서 이로 인한 갈등과 피해가 생기고 있습니다. 갈등의 배경 및 인간과 동물 모두의 피해를 줄일 수 있는 해결책을 논의하고자 합니다.


울산 태화강 옆 대나무숲을 잠자리로 삼은 수만 마리의 떼까마귀가 이동하는 모습. 울산시 제공

울산 태화강 옆 대나무숲을 잠자리로 삼은 수만 마리의 떼까마귀가 이동하는 모습. 울산시 제공


시각물_위기의 도심동물들

시각물_위기의 도심동물들


차량에 배설물을 떨어트리고 농작물을 해치는 골칫덩이인가, 관광객을 불러들이는 관광자원인가.

겨울 철새인 떼까마귀가 2016년부터 경기 남부와 전북 김제, 울산의 도심지로 날아오면서 배설물과 소음, 농작물 피해를 호소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떼까마귀의 피해 정도나 환경이 다른 지방자치단체들은 퇴치, 포획, 관광활성화 등 각기 다른 해법을 모색하고 있다.

6일 환경부 산하 국립생물자원관에 따르면 떼까마귀는 참새목 까마귀과로 몸길이 44~47㎝에 가늘고 뾰족한 부리가 특징이다. 몽골 북부, 시베리아 등지에 살다 추위를 피해 매년 10월쯤 우리나라를 찾은 뒤 3, 4월에 다시 북쪽으로 간다. 주로 넓은 평야에서 무리를 이루며 논, 보리밭 등 농경지에서 먹이활동을 하던 떼까마귀가 왜 도심 한복판을 터전으로 삼게 됐을까.

산림∙경작지 줄면서 서식지 감소

겨울에 우리나라를 찾는 철새 떼까마귀. 국립생물자원관 제공

겨울에 우리나라를 찾는 철새 떼까마귀. 국립생물자원관 제공

경기 남부와 울산 도심지에 떼까마귀가 급격히 늘어난 것은 2016년부터다. 수원시, 화성시 등에는 매년 2만~4만 마리, 김제시에는 7만 마리, 울산에는 7만~10만 마리가 도래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떼까마귀는 텃새인 큰부리까마귀보다 몸집이 작고 군집성이 강해 무리 생활하는 특성이 있다. 낮에는 논밭, 초지대를 찾아 씨앗이나 벌레 잡이 등의 먹이활동을 하고 해가 질 무렵 휴식에 적합한 장소로 모여든다. 문제는 이들이 잠자리를 도심 한복판 전깃줄로 선택했다는 데 있다.

이들이 어떤 경로로 도심에 정착했는지와 관련해 아직 명확하게 조사된 적은 없다. 떼까마귀 생태조사에 대한 연구는 이제 막 시작한 단계다. 국립생물자원관이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2월까지 조사한 '도심 내 떼까마귀 잠자리 이용 현황 및 환경요인 분석'을 보면 경기 남부에서는 2000년 이후 산림(6.2%↓), 경작지(27.1%↓) 면적이 줄어든 반면 도심(22.5%↑) 면적은 늘었다. 이 같은 경향은 화성시에서 특히 두드러졌다. 떼까마귀 입장에서는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공간을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국내 뗴까마귀 도래지역. 그래픽=김문중 기자

국내 뗴까마귀 도래지역. 그래픽=김문중 기자

반면 떼까마귀에게 도심은 매력적인 잠자리가 됐다. ①도심에는 떼까마귀의 포식자인 수리부엉이가 없고 ②앉아서 쉴 수 있는 전깃줄이 있으며 ③포식자 접근을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조명까지 갖추고 있어서다. 최유성 국립생물자원관 국가철새연구센터 연구사는 "떼까마귀에게 처음부터 도심지가 좋은 서식환경은 아니었겠지만 도심지가 주는 이점에 적응해버린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최 연구사는 "떼까마귀는 주로 건물 3~4층 사이 전깃줄에 모여있다"며 "가로수나 간판 조명이 아래를 비추면서 떼까마귀가 빛으로부터 받는 영향은 적은 반면 포식자 접근은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고 덧붙였다.

울산은 경기 남부와 상황이 다르다. 울산 역시 지역 주민에게 피해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정도가 덜하다. 떼까마귀들이 잠자리를 도심이 아닌 태화강 옆 대나무숲(6만5,000㎡ 규모)을 택했기 때문이다. 떼까마귀는 아침이 되면 대숲에서 나와 울주군 두서면, 경북 경주시 등으로 흩어져 먹이를 찾고 해 질 무렵 다시 대숲으로 돌아온다. 떼까마귀의 이동 경로에 있는 대숲 주변 삼호동, 태화동 일대에만 배설물 등으로 인한 피해가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다.

포획∙퇴치∙관광자원 활용 등 각기 다른 대응

지난해 2월 제주시 연동의 전깃줄 위에 떼까마귀 무리가 앉아 있는 모습. 떼까마귀와 민물가마우지는 조류인플루엔자(AI)에 감염된 사례가 없다. 이들은 감염되면 죽기 때문에 오히려 피해자다. 제주=연합뉴스

지난해 2월 제주시 연동의 전깃줄 위에 떼까마귀 무리가 앉아 있는 모습. 떼까마귀와 민물가마우지는 조류인플루엔자(AI)에 감염된 사례가 없다. 이들은 감염되면 죽기 때문에 오히려 피해자다. 제주=연합뉴스

떼까마귀는 장기간에 걸쳐 무리 지어 농작물에 피해를 준다는 이유로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에 의해 '유해야생동물'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유해야생동물은 기초 지방자치단체장 허가로 포획할 수 있다. 최근에는 각각 내수면 양식업과 어업, 농작물과 과수에 피해를 준다는 이유로 민물가마우지와 큰부리까마귀가 유해야생동물로 지정될 예정이다. 이 조항을 이용해 제주 우도에서는 보리, 쪽파, 마늘 등 농작물에 피해를 준다며 지난해에만 떼까마귀 257마리를 포획해 소각 처리했다. 최근에는 김영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도심지에 야생동물로 인한 피해 예방시설의 설치를 지원하는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반면 도심 한복판에서 총기를 사용해 이들을 포획하는 건 쉽지 않다. 더욱이 근본적인 해결방안 없이 무작정 포획을 통해 수를 줄이는 것이 장기적인 감소 효과로 이어진다고 보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이 때문에 지자체들은 퇴치 활동을 벌이는 한편 주민 보상, 시민인식 개선 등에 나서고 있다.

경기 수원시는 겨울철 레이저 퇴치기를 활용해 도심지 전깃줄에서 쉬고 있는 떼까마귀를 쫓아내고 있다. 수원시 제공

경기 수원시는 겨울철 레이저 퇴치기를 활용해 도심지 전깃줄에서 쉬고 있는 떼까마귀를 쫓아내고 있다. 수원시 제공

수원시는 매년 11월부터 다음 해 3월까지 떼까마귀 퇴치와 청소기동반을 운영하고 있다. 수원시 환경정책과 관계자는 "떼까마귀를 시민의 통행이 많은 지역에서 인적이 드물고 주차 차량이 없는 곳으로 유인하는 방식으로 퇴치활동을 하고 있다"며 "다만 레이저 퇴치기를 활용하면 떼까마귀가 외곽지역으로 이동하지만 효과는 일시적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실제 환경부 과제로 한국환경산업기술원과 서울대, 데이터 수집 신생기업 파프리카가 떼까마귀 데이터를 수집해 분석한 결과가 이를 보여준다. 6주간 퇴치 작업을 하니 떼까마귀가 다른 곳으로 이동했지만 1주간 작업을 멈춘 결과 다시 돌아오는 것이 확인됐다.

울산의 경우는 떼까마귀로 인한 주민들의 보상과 함께 이들의 군무(群舞)를 오히려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먼저 서식지 인근 배설물로 피해를 입은 차량의 청소작업 등 피해지역을 지원하고 태양광 설치 등을 통해 친환경 마을로의 전환을 돕고 있다. 또 시민과 관광객을 위해 올해 12월 태화강 떼까마귀 군무해설장을 운영할 예정이다. 신화자 울산시 환경정책과 자연환경팀장은 "떼까마귀의 잠자리인 삼호대숲을 보전하고 지속 관리하는 한편 시민들에게도 유해한 동물이 아니라 겨울 철새로서 긍정적 인식 전환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떼까마귀 생태조사는 걸음마, 중단기 대책 마련해야

떼까마귀들이 앉은 전깃줄은 건물 3, 4층 높이 사이로, 간판 조명이 아래쪽을 비추면서 포식자들의 접근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국립생물자원관 제공

떼까마귀들이 앉은 전깃줄은 건물 3, 4층 높이 사이로, 간판 조명이 아래쪽을 비추면서 포식자들의 접근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국립생물자원관 제공

떼까마귀 출몰로 인한 갈등을 줄이기 위해서는 단기와 장기로 나눠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이들의 주요 휴식 공간에 배설물이 떨어지지 않도록 분변받이를 설치하는 방식으로 피해를 줄이는 한편 장기적으로는 전선지중화를 통해 떼까마귀가 도심에서 쉴 수 있는 곳을 없애고, 울산의 사례처럼 떼까마귀가 안전하게 쉴 수 있는 대체 서식지를 조성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윤지원 서울대 산학협력단 연구원은 "전신주 유무에 따른 떼까마귀의 출현율을 연구 중인데 실제 출현에 큰 차이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에 앞서 해결 방안 모색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떼까마귀의 생태적 특성을 이해하기 위한 연구와 조사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최유성 국가철새연구센터 연구사는 "대체 서식지를 조성한다고 해서 떼까마귀들이 곧바로 이곳을 선택한다는 보장은 없다"며 "선택의 가능성을 높이려면 떼까마귀의 습성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한 생태조사가 우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 연구사는 또 "인간과 동물이 함께 살아가야 하는 과정에서 일부 불가피하게 개체 수 조절과 관리가 필요하다고 본다"면서도 "다만 유해야생동물 지정 등 단순한 접근이 아니라 이에 앞서 이들을 관리할 수 있는 대책을 먼저 만들고 실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간과 야생동물의 갈등 발생 시 포획, 퇴치 등의 방법을 선택할 경우 동물복지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형주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대표는 "동물이 미치는 영향이 적극적 조치가 필요할 정도인지를 평가할 수 있는 지표가 있어야 한다"며 "야생동물 복지 평가와 개선 방법에 대한 연구 및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고은경 동물복지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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