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콜중독 어머니와 산 20년... 그렇게 될까봐 겁나요

입력
2023.10.30 04:3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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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박구원 기자

일러스트=박구원 기자

저는 독립해 혼자 사는 30대 직장인입니다. 정신 질환을 앓는 어머니와 함께 20여 년을 살았는데 그때 받은 상처가 큽니다. 이제 다 지나간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가끔 어머니의 전화를 받을 때, 어린시절의 기억이 떠오를 때마다 괴롭습니다. 얼마 전 우울증을 겪으며 저에게도 어머니를 닮은 모습이 있는 게 아닐 지 하는 불안감까지 생겼습니다.

어머니는 알콜중독 환자였습니다. 어머니가 술에 의존하게 된 시점은 저의 교육 문제로 시골 마을을 떠나 도시로 이주하면서 부텁니다. 평생을 살던 시골을 떠나 도시에 정착한 이후 어머니는 흔히 말하는 '키친 드렁커(주방에서 술을 마시는 사람)'로 변했습니다. 하교 후에 집에 가면 술냄새가 진동했고, 어머니는 어김없이 식탁에 쓰러져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은 제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6년여 동안 계속됐고, 갈수록 정도가 심해졌습니다. 어릴 적부터 외동이라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제가 잘못하면 파리채로 때릴 정도로 늘 무섭게 대하셨죠. 잘못하면 엄하게 혼을 내 다른 사람 앞에서도 제 실수를 이야기해 창피하게 만들곤 했습니다.

부부 싸움이 빈번했지만 이혼은 하지 않던 부모님의 관계는 제가 대학에 들어가며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어머니의 알콜 중독 증상이 더욱 심각해졌고 간질 증세까지 보이게 된 것이죠. 어느날은 집에서 요리를 하다가도 간질 증상이 오면 기억을 잃고 밖으로 나가버리기도 하고, 밖에서 발작이 생기면 집을 찾아오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부모님의 다툼이 잦아지고, 온 동네 사람들이 다 알게 될 정도가 되자 부끄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왜 이런 가정에서 태어났나"라는 원망도 자주 했어요. 도피하기 위한 수단이 군 입대였습니다. 사춘기 시절부터 봤던 어머니의 술 취한 모습이 더 이상 보기 싫었고, 부부싸움으로 가슴 졸이는 것도 진절머리가 났습니다. 입대 후에는 어머니가 간질 증상으로 뇌 수술을 하게 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마음 한편으로는 걱정이 많이 돼 집에 갔다가도 어머니가 홀로 술을 마시면서 주정을 부리는 것을 듣고 바로 돌아섰습니다. 그 후론 휴가나 외박을 나와도 집에 들어가지 않고 PC방을 전전하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집이 싫었습니다.

의사의 당부에도 지속적으로 음주를 한 어머니는 아예 다른 사람으로 변해버렸습니다. 제대 후 집에 돌아왔을 때 칼부림이 일상이었고, 몸싸움에 집안 살림이 남아나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어머니는 술을 마실 때마다 이혼을 요구했지만 아버지는 이혼 후 어머니가 자립할 수 없다고 판단해 이혼을 미뤘습니다. 그러다 답을 찾은 것이 정신병원 입원이었습니다. 입원과 퇴원을 두 세 번 반복하는 동안 어머니가 끌려갈 때 울부짖으며 소리치던 모습이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습니다. 어머니는 퇴원하면 절대 술을 마시지 않겠다는 약속을 번번히 어겼고, 결국 부모님은 이혼을 했습니다. 그때부터 어머니와 연락이 끊겼습니다. 우연히 아버지를 통해 어머니가 시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전화통화를 했습니다. 어머니는 '조현병'이 있다고 했습니다. 10년동안 어머니는 시설에 거주 중이고, 아버지는 재혼해 새로운 가정을 꾸렸습니다. 저는 소중한 사람을 만나 결혼을 앞두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몇 년 전부터 전화를 걸어옵니다. 처음엔 뜸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1,2주 단위로 통화를 하고, 면회를 간 적도 있습니다. 처음에는 아무 생각없이 통화를 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마음이 불편합니다. 어머니라는 존재는 나를 낳아준 사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통화를 할 때마다 연민과 미움, 원망처럼 복합적인 감정이 휘몰아칩니다. 한 없이 밉다가도 과일이 먹고 싶다는 이야기에 과일을 몇 박스씩 보내는 저를 볼 때마다 혼란스럽습니다. 이 감정을 어떻게 정리해야할까요. 얼마전 우울증으로 약물치료를 받고 난 후부터는 어머니의 병이 유전이 된 것이 아닐까, 나중에 조현병이나 간질 증상이 나타나지 않을까 너무나 불안합니다. 이런 마음의 짐을 평생 떠안고 가야 하나요.

박현우(가명·34·회사원)

현우씨, 20년 넘게 한집에서 알콜문제를 겪는 어머니를 마주할 때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어린 나이부터 피할 수도, 외면할 수도 없는 상황에 놓이면서 막다른 길에 있는 듯 답답했을 것 같아요. 어머니라는 존재는 당신 인생의 최대 난제였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세상에서 든든하고 의지가 되어야 하는 존재인데, 당신을 누구보다 힘들게 하고 앞 길을 가로 막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늘 하면서 살아왔을 겁니다.

사연을 읽는 동안, 현우씨가 자기 자신을 잘 돌보며 성장해왔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당신은 무엇보다 스스로에 대한 자긍심이 있고,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내면의 힘이 있는 사람인 것 같아요. 크고 작은 문제를 반복적으로 겪으면서도 인간관계를 진취적으로 맺고, 성실하게 노력해서 원하는 삶을 살고 있지요. 그런데 어머니만큼은 지금까지도 이해할 수 없는 존재였을거에요. 어머니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기대치도 크지 않지만 여전히 어머니를 떠올릴 때마다 화가 치밀고, 어머니의 요구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답답함을 느끼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모습이란 걸 말해주고 싶어요.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어머니는 전형적인 알코올 의존의 사례에 해당합니다. 정식 진단명이자 치료를 받아야하는 질병이고 수준이 매우 심각한 상태였던 것으로 판단됩니다. 현우씨의 학업문제로 이사를 한 것이 계기가 됐다고했지만 그 이전부터 극심한 스트레스나 우울증 등의 원인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알코올 의존은 갑자기 생기기보다는 오랫동안 방치된 심리적 문제의 결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는 본래 감정적 스트레스에 매우 취약한 사람이었을 것이고, 실제로는 다양한 문제가 훨씬 이전부터 발현됐을 것으로 보입니다. 현우씨는 어린 시절에 그런 어머니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구요.

유년기 자녀에게 있어 부모의 영향력은 절대적입니다. 부모와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할 수 있는 청소년기와 비교해보면 더욱 그러하죠. 유년기에는 부모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없기 때문에 부모의 행동을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어린아이가 부부 싸움을 지켜보며 자책하는 것도 그래서죠. 지금 현우씨가 어머니에 대한 복합적이고 미묘한 감정, 특히 죄책감은 청소년기보다 훨씬 이전인 유년기 경험으로부터 영향받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외동이라 혼자 지낸 적이 많았고, 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무서운 기억 뿐이라고 했었지요. 마음 속으로는 외동을 이유로 외로움을 합리화하지만 보통 외동 자녀의 경우 부모로부터 받는 관심과 애정도가 높기 때문에 반대인 경우가 많아요.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조심스럽게 추측컨대 유년기의 현우씨는 주 양육자인 어머니로부터 정서적인 지지나 관심을 충분히 받지 못한 채로 오랫동안 졍서적 허기를 느껴왔던 것 같습니다. 안타깝게도 어머니는 성격적인 특징이나 우울증 등 요인으로 자녀에게 응당 제공해야할 보살핌을 등한시하거나, 기대 수준이 높아 자녀에게 과도하게 엄격한 기준을 들이대는 식으로 상처를 남겼지요. 어린시절의 결핍감을 직면하는 것은 상당한 고통을 동반하기 때문에 다른 방식으로 감정을 합리화시키는 경우가 많아요. 현우씨가 어머니에 대해 미움과 원망을 느끼면서도 죄책감으로 혼란스러워하는 것도 그 때문이죠. 어머니의 정신질환이 유전될 것을 걱정하고, 불안을 느끼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모든 병증이 그렇듯 정신 질환 역시 유전의 가능성을 완전히 배재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유전에 대한 과도한 불안감과 집착은 병 자체보다는 부모와와 관계에서 해결하지 못한 감정에서 기인하는 경우가 많아요.

마음의 짐에서 자유로워진다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유년기 어머니와의 관계로부터 형성됐던 부정적 기억과 감정의 영향력 하에서 벗어나는 것이죠. 어머니와 엮여있는 현우씨의 주관적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 그래서 중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현우씨와 사이가 좋은 아버지나 가까운 연인, 친구 등 믿을만한 관계로 정서적 지지체계를 만들어가는 것이 큰 도움이 됩니다. 짐작컨대 현우씨는 주변에 그런 자원이 충분히 있을 걸로 보여져요. 누가 됐든 어머니에 대한 감정을 터놓고 이야기하면서 현재의 혼돈을 가만히 들여다보세요. 감정의 실타래를 하나씩 풀어내면서 에너지의 방향을 현재와 미래로, 자신과 다른 관계로 바꿔가며 무거운 짐이 점차 가벼워지길, 그래서 현우씨가 진심으로 원하는 삶을 살아가길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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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손효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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