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절벽에도 해외 입양 보낸다니

입력
2023.09.20 18:00
수정
2023.09.24 15:08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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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에 G8 국가인데 해외입양
국내 '그림자 아이'도 1만여명
태어난 아이 이유 불문 지켜내야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1950년대 전세기를 일부 개조해 아이들을 수십 명씩 태운 뒤 입양 보내는 장면. 국가기록원 제공

1950년대 전세기를 일부 개조해 아이들을 수십 명씩 태운 뒤 입양 보내는 장면. 국가기록원 제공

“지속적인 분만 감소로 30일 폐업 예정입니다.”

광주의 한 대형 산부인과 병원에 걸린 안내문이다. 산간오지도 아닌 인구 142만 명의 호남 최대 도시에서 벌어진 일이다. 2012년 1만4,000명도 넘었던 광주 지역 출생아 수는 지난해 7,400명까지 감소했다. 광주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 여성 한 명이 평생 낳는 출생아 수인 합계출산율은 0.7명까지 추락했다. 한 국가가 현 인구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출산율 2.1명과 비교하면 3분의 1 토막이다. 최근 한 재수생 엄마가 “자식 뒷바라지하다 인생 종 친다”며 “웬만하면 자식 낳지 말라”고 올린 인터넷 글이 큰 반향을 일으키는 세태를 보면 앞으로도 추세가 달라질 것 같진 않다. “한국이 초저출산으로 사라지는 첫 번째 나라가 될 것”이란 석학들의 경고는 점점 현실이 되고 있다.

이처럼 전 세계 꼴찌 출산율로 인구 절벽까지 걱정하는 나라에서 아직도 아이들을 다른 나라로 입양 보내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건 충격이 아닐 수 없다. 국제아동보호기구 ISS(International Social Service)에 따르면 한국의 해외 입양 아동 수는 2020년 266명으로, 콜롬비아(387명)와 우크라이나(277명)에 이어 세 번째다. 뉴욕타임스(NYT)는 2021년 기준 한국이 해외 입양을 많이 보낸 국가 4위라고 지적했다.

우린 1950년대부터 전쟁고아 등을 20만 명이나 이역만리로 입양 보낸 아픈 역사를 안고 있다. 그래도 그땐 너무 먹을 게 없었고 부자 나라로 보내면 잘 살 것이란 변명이라도 가능했다. 그러나 지금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3만 달러가 넘고 주요 8개국(G8) 지위까지 넘보는 나라다. 6,000달러대의 콜롬비아, 4,000달러대의 우크라이나와 순위를 다툰다는 것은 고개를 들 수 없는 일이다.

‘유령 영아’나 ‘그림자 아이’ 문제는 더 심각하다. 최근 전북 전주시의 한 빌라에서 부패한 40대 여성 시신과 함께 발견된 아이는 출생 신고는 물론 출산 기록도 없었다. 병원 밖에서 태어나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던 셈이다. 지난 2월 경기 수원시의 한 아파트에서 영아 시신 2구가 발견되며 시작된 2015~2022년 임시 신생아번호 아동에 대한 전수 조사는 병원 안에서 태어나 출산 기록은 있지만 출생 신고는 안 된 아이들이 대상이었다. 이 가운데 250여 명은 이미 숨진 것으로 확인됐다. 2010∼2014년 임시 신생아번호 아동도 1만1,000여 명이나 된다.

그동안 출산율을 끌어올리겠다며 400조 원도 넘는 예산을 쓴 나라가 정작 어렵게 세상에 태어난 아이들도 지키지 못하고 있다는 건 모순이다. 어떤 사정이 있든 일단 태어난 아이는 가급적 부모가 키울 수 있도록 지원하고 그럴 형편이 못 된다면 사회와 국가가 책임지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그림자 아이가 생기지 않도록 출산통보제 시행을 서두르고, 위기에 처한 임신부가 신원을 밝히지 않아도 의료기관에서 안전하게 출산할 수 있도록 ‘보호출산제’도 검토해야 한다.

제도적 장치보다 더 중요한 건 인식의 변화다. 정상적으로 결혼한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가 아니면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회적 편견이 여전하다. 미혼모나 혼외 자식에 대한 선입관도 공고하다. 따가운 시선을 견디지 못한 아이들은 결국 해외로 송출되거나 마음껏 한번 울어보지도 못한 채 사라지고 있다.

한 아이의 출산은 전 우주가 도와야 가능한 기적이다. 이 세상에 축복받지 못할 아이의 탄생은 없다. 태어난 이상 국가와 사회가 책임지고 살려야 한다. 이런 아이들을 해외에 파는 일은 더욱 없어야 한다. 더는 부끄럽지 않고 싶다.

박일근 논설위원

박일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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