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민이 싹 틔운 '핫플 공주' 원주민과 소통해야 열매 맺는다

입력
2023.10.03 16:00
수정
2023.10.03 16:06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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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포스텍 ISDS 공동기획
[지방 청년 실종 : 6회 공주]

편집자주

청년들이 사라지고 있다. 수도권을 제외한 거의 모든 곳에서 벌어지는 이미 오래된 현상이다. 한국일보와 포스텍 사회문화데이터사이언스 연구소(소장 배영ㆍ이하 ISDS)는 비수도권 지역 곳곳을 찾아다니며 청년에게 지역을 떠나는 이유를 직접 물어보고, 양적 질적 조사 방법을 사용해 미시적 근거를 찾아 매달 첫 번째 수요일에 비수도권 지역을 한 곳씩 분석해 게재한다.

충남 외 지역 청년들이 공주에서 2주 동안 살아보며 이 고장의 매력을 느끼고 새로운 삶의 기회를 찾아보는 '갭 이어;' 프로그램 참가자들이 공주 원도심을 산책하고 있다. 공주청년센터 제공

충남 외 지역 청년들이 공주에서 2주 동안 살아보며 이 고장의 매력을 느끼고 새로운 삶의 기회를 찾아보는 '갭 이어;' 프로그램 참가자들이 공주 원도심을 산책하고 있다. 공주청년센터 제공

공주 원도심을 흐르는 제민천 주변을 찾는 젊은이들이 쇠락하는 공주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개울 좌우에 펼쳐진 멋스러운 근대 건축물과 정겨운 골목골목의 아담한 가옥들이 젊은이들에게 이국적 매력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공주가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데는 이런 매력을 미리 알아차리고 이 동네에 멋진 카페, 서점, 식당, 상점, 숙박시설을 차리고 홍보한 외지인들의 노력이 숨어 있다.

공주의 숨은 매력을 찾아내 극대화한 외지 출신 이주민의 감각을 수용한 ‘관광도시 공주’는 지역 청년 실종을 극복할 대안 모델이 될 수 있을까. 공주에서 만난 청년들의 생각은 여전히 ‘기대 반 우려 반’이었다. 기대 요소는 이주민들이 공주 정책에 여전히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구세대 사고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에 혁신을 주도할 수 있다는 점이다. 반면 효율성을 중시하는 도시 출신 이주민들이 공동체 가치를 중시하는 원주민 청년들과 종종 충돌하면서 여전히 겉돌고 있다는 점은 우려 요소다.

이주민이 시작한 관광도시 공주의 혁신은 원도심이 품고 있는 느긋함과 평화로움을 최적화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공주에서의 삶이 ‘도시의 치유제’가 되도록 하려는 목표에 공감하는 사람들을 서로 연결하는 것이 혁신의 원동력이다. 2021년 공주 원도심을 청년마을로 만들겠다며 시작했다. 마을 안에 다양하게 만들어지는 공간과 모임 그리고 프로젝트를 서로 연결하고, 느슨한 공동체를 형성해 삶은 풍요로워지고 마을은 매력과 활력을 되찾도록 하겠다는 전략이다.

공주 지역청년의 시선으로 공주의 매력을 문제집 형태로 기록하는 '공주살이 능력고사' 출판기념회가 열리고 있다. 공주청년센터 제공

공주 지역청년의 시선으로 공주의 매력을 문제집 형태로 기록하는 '공주살이 능력고사' 출판기념회가 열리고 있다. 공주청년센터 제공

이런 혁신이 지속 가능하게 하려면 이주민들의 연결망이 원주민들로 확산하고 유기적으로 결합해야 한다. 하지만 이주민이 만든 연결망에서 제외된 원주민 자영업자들은 박탈감을 느끼고, 또 이주민 자영업자들은 현지인이 자신들을 배척한다고 생각한다. 공주에서 태어나 성장한 후 외지에서 살다 귀향한 청년들은 이런 반목이 의사소통 부족 때문이라며 안타까워한다. 여기에는 충청도 특유의 우회적 표현 방식도 한몫을 한다. 예를 들어 원주민들은 이주민 자영업자에게 마을 공동체 행사에 참여하기를 권할 때, 행사 일자 정도만 알려줄 뿐 참여 여부를 직접 묻지는 않는다. 이주민이 이를 단순한 행사 안내로만 생각해 참여하지 않으면, 원주민은 이를 섭섭하게 받아들인다. 이런 오해들이 쌓이고 있지만, 나서서 중재하는 노력이 부족해 공주에서 시작된 혁신의 불씨가 얼마나 더 확산할지 불투명하다.

공주 원도심의 느긋함은 외지인들에게 안도감으로 다가가겠지만, 정작 공주는 인구 10만 명 유지도 아슬아슬할 정도로 빠르게 소멸하고 있다. 거주 인구는 1970년 이후 계속 감소하고 있으며, 합계 출생률도 충남도 최하위다. 특히 진학 취업 결혼을 계기로 충남 북부나 세종시로 떠나는 젊은 세대가 늘어나면서 최근 3년간 청년인구는 지속해서 감소하면서 60세 이상의 고령 인구 비중이 빠르게 늘고 있다.

공주의 청년 실종의 원인을 객관적으로 살펴보기 위해 공주(10만2,000명)와 인구가 비슷한 경기 의왕시(15만7,000명)의 안심영역과 만족영역 지수를 비교했다. 포스텍 사회문화데이터사이언스연구소(ISDS)가 여러 통계자료 및 기사와 댓글, 그리고 온라인상에서 주민들의 이야기와 국민민원데이터 등 다각적인 자료를 분석한 결과다.

안심영역은 기본적인 삶의 영위에서 꼭 필요한 조건으로 일자리, 안전, 자연환경, 의료 분야가 포함된다. 노동 인구와 일자리 개수의 비율로 측정한 일자리 지수에서 공주(0.71)는 의왕(0.63)보다 우수하다. 하지만 2021년 하반기를 기준으로 공주시의 청년 고용률은 57.9%로 서울시 69.1%에 비해 크게 뒤진다.

공주·의왕·서울의 안심 지수 비교

공주·의왕·서울의 안심 지수 비교

생활안전과 치안 등을 고려한 안전지수는 공주(0.3)가 의왕(0.8)과 서울(0.6)에 비해 크게 뒤처지는 게 눈에 띈다. 안전지수는 크게 범죄·생활안전과 관련한 5개 항목으로 구성되는데, 유독 구급차 출동 건수가 높았다. 최근 5년간 119 구급대가 병원으로 이송한 환자 수 평균이 공주시(6,414건)가 의왕시(4,828건)에 비해 30%가량 많았다. 병원 이송 원인은 절반 이상이 고혈압과 당뇨 등 노인성 질환으로 공주의 높은 노인 인구 비중이 그 원인이다. 사이렌을 울리며 거리를 질주하는 구급차 빈도가 전국 최고 수준에 이를 만큼 공주의 노령화는 심각한 수준이다.

환경지수는 공주(0.75)가 의왕(0.47)은 물론 서울(0.65)보다도 앞선다. 의료지수는 공주(0.81)가 조금 떨어지기는 하지만 수도권과 큰 차이가 없었다. 공주는 구급차가 자주 출동하는 것을 빼고는 안심영역에서 수도권과 비슷한 수준이다.

반면 일상생활과 긴밀한 요소들을 측정하는 만족영역에서는 접근 편의성 측면에서 서울은 물론 의왕에 뒤처진다. 인구 대비로 보면 문화시설은 오히려 의왕은 물론 서울보다도 많고, 대형 쇼핑몰을 제외하고는 의왕과 별 차이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서울보다 큰 면적을 생각하면 모든 생활편의시설 접근성이 크게 떨어진다. 청년들이 공주를 떠나는 이유다.

공주·의왕·서울의 면적 대비 만족지표 비교

공주·의왕·서울의 면적 대비 만족지표 비교

그렇다고 부족한 시설을 모두 늘려 수도권 도시를 따라가려는 발전 전략은 신중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모든 면에서 인근 세종시와 경쟁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공주만의 강점을 극대화해 생활은 불편해도 도시에서 지친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관광ㆍ휴양 도시로 특화하는 것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세종 대전 전주 등 주변 대도시와 충남 북부의 공업 도시에서 지친 사람들이 쉼과 치유의 공간을 찾으려 공주를 가장 먼저 떠올린다면, 공주는 전국 청년들이 살고 싶어 하는 핫플레이스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조사를 진행한 포스텍 배영 교수는 “여러 요소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공주의 혁신은 우선 관계에서 실마리를 찾았으면 한다. 오랜 익숙함 때문에 그 가치를 간과했던 역사문화적 자원을 외지 출신 이주 청년들과 함께 참신한 시각으로 활용하고, 지역 내 잠재된 이주ㆍ원주민 간 심리적 경계가 완화된다면 안온함 속에서도 지속가능한 활력과 생기가 계속 발현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료 정리 : 한규리, 류연수 (포스텍 소셜데이터사이언스 전공)

정영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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