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병장수의 특급 비결, 투표였다

입력
2023.10.09 04:3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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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과가 확실하고 장기적이면서도 몸을 덜 괴롭히는 건강관리법이 있다. 투표다. 투표의 보건의학적 효능을 오랜 취재 끝에 숫자로 실증한 기사가 얼마 전 미국 워싱턴포스트(WP)에 실렸다. “선거가 삶을 바꾼다”는 진부한 슬로건은 날카로운 팩트였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선거는 당신의 건강과 수명을 바꾼다.

WP는 선출된 정치권력이 주민들을 단명시킨 사례를 미국 오하이오주 애시터뷸라 카운티에서 찾았다. 이곳 주민의 20%는 65세가 되기 전에 죽는다. 흡연 합병증과 교통사고로 죽는 주민이 같은 이유로 죽는 전체 미국인 평균치보다 각각 55%와 30%씩 많다. 감염병, 만성질환, 중독, 자살로 인한 조기 사망률도 상대적으로 높다. 아까운 죽음이 빈번한 나머지 장의사들이 트라우마를 호소할 정도다.

주 경계를 맞대고 이웃한 뉴욕주 셔터쿼 카운티와 펜실베이니아주 이리 카운티의 주민들은 현격하게 더 오래 산다. 왜일까. 애시터뷸라, 셔터쿼, 이리 모두 오대호 중 하나인 이리호수를 끼고 있다는 건 환경 영향이 미미하다는 뜻이다. 최근 들어 수명 격차가 커진 것을 보면 주민들의 유전자 때문도 아니다. 지역 경제 사정도 비슷하다.

침묵의 살인자는 오하이오의 보건 정책이다. 연방제를 도입한 미국에선 대부분의 정책 권한을 주의회와 주정부가 행사한다. 최근 약 30년간 공화당이 장악한 오하이오의 정책 방향은 확고하다. “주민보다 기업, 생명보다 돈이 소중하다.”

기업 로비에 휘둘린 결과 오하이오의 담뱃값은 뉴욕, 펜실베이니아보다 싸다. 행정 비용을 아끼느라 자동차 안전벨트 규제는 가장 느슨하다. 흡연율과 안전벨트 미착용률 1위 모두 3개 주 가운데 오하이오다. 보건 예산 집행에도 오하이오가 제일 인색하다. “미국은 자유 국가이며 정부는 유모가 아니다.” 공화당의 당당한 논리다. 알아서 건강하고 알아서 살아남으란 의미다.

결국 문자 그대로 죽고 사는 문제가 선거 결과에 달려 있다는 게 WP 기사의 요지다. 죽고 나면 다시 투표할 수 없다. 집값 오르고 지하철 깔려 봐야 죽은 뒤라면 무슨 소용인가. 그러니 시름시름 앓다 죽거나 억울하게 비명횡사하지 않으려면 당신이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똑똑하게 투표하는 것이다.

보수우파 정당과 진보좌파 정당 사이의 정책 차이가 별로 없는 한국에선 유권자가 각별하게 똑똑해야 한다. 건강권과 생명권 보장에 조금이라도 더 적극적인 후보와 정당, 어떤 목숨도 도구나 자본 취급하지 않는 후보와 정당을 매의 눈으로 가려내야 한다. 유권자들이 더 건강해지고 더 오래 살게 하는 정책은 당장 티가 나지 않는다. 그래서 게을러지는 정치인들을 부지런히 채근해야 한다. 자기들끼리 수박 당도나 감별하고 윤심 놓고 경쟁하는 허튼짓을 하면 심판하겠다고 경고해야 한다.

얼마 전 별세한 배우 변희봉씨가 출연한 1980년대 감기약 광고엔 이런 대사가 나온다. “감기몸살쯤은 바로 이 손 안에 있소이다!” 무병과 장수의 확률을 높일 특급 비결 역시 틀림없이 당신 손 안에 있다. 손 안의 참정권을 한 표로 제대로 바꿀 기회, 다음 총선까지 185일 남았다.



최문선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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