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지원한다더니...정부, 총선 앞두고 대기업 전기료만 올렸다

입력
2023.11.09 09:00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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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료 인상 효과 연 2조8,300억원
법인세 깎고 전기료 돌려받아

조 바이든(왼쪽부터) 미국 대통령이 윤석열 대통령과 5월 20일 오후 경기도 평택시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을 방문, 이재용 부회장의 안내를 받으며 공장을 시찰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 바이든(왼쪽부터) 미국 대통령이 윤석열 대통령과 5월 20일 오후 경기도 평택시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을 방문, 이재용 부회장의 안내를 받으며 공장을 시찰하고 있다. 연합뉴스


8일 정부가 내놓은 전기요금 조정안의 핵심은 고압의 대용량 전력을 쓰는 사업장만을 대상으로 한 '핀셋 인상'이란 점이다. 전력소비 상위 0.2%에만 요금을 더 거둬서 한국전력의 재정난을 해소하고 99.8%의 민심도 잡겠다는 의도다. 하지만 정부 대신 전력을 많이 쓰는 기업들이 부담을 지게 하는 식으로는 근본 해법을 찾을 수 없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번 조정안에서 6만6,000볼트(V)이하의 고압A 요금제 사업장은 kWh당 6.7원을, 154킬로볼트(kV) 이상을 쓰는 고압B‧C 요금제 사업장은 두 배인 13.5원을 더 걷는다. 고압B 요금제의 전기료가 킬로와트시(kWh)당 114.4~144.4원(중부하 기준)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초고압 전력을 쓰는 사업장의 요금 인상폭은 9~10%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한 달 평균으로 ①고압A는 200만 원 ②고압B는 2억5,000만 원 ③고압C는 3억 원 정도가 늘 것이라 내다본다. 한국전력은 이를 통해 연간 2조8,300억 원을 더 확보할 것으로 보인다.




대기업이 낼 추가 전기료 수천억원...한전 재정난 나눠 지는 셈


전기요금 인상 추이

전기요금 인상 추이




이 중 대부분은 대기업 몫이다. 전기료 인상 대상이 된 기업들이 2022년 쓴 전력량은 26만7,619기가와트시(GWh), 이 중 RE100(2050년까지 사용 전력 100%를 재생에너지로 마련한다는 민간 국제 캠페인)에 가입한 국내 32개사의 전력 사용량이 21%(5만6,338GWh)다.

따라서 주요 대기업들에는 천문학적 액수가 늘어난 청구서가 날아들 것으로 보인다. 한국전력이 더불어민주당 김경만·홍정민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가장 많은 전력을 쓴 회사는 삼성전자(2만1,731GWh)였다. 이어 SK하이닉스(1만41GWh), 삼성디스플레이(6,146GWh), 현대차(2,204GWh) 순이었다. 만약 이 기업들이 고압B‧C 요금제를 쓴다면 추가로 내야 할 전기료는 연간 2,940억 원, 1,360억 원, 830억 원, 300억 원이다. 4개 기업에서 한전이 더 걷는 전기료만 연간 5,400억 원 수준으로 한전의 재정난을 대기업들이 나눠 지는 셈이다. 대기업 부담이 너무 커진 것 아니냐는 질문에 강경성 산업통상자원부 2차관은 이날 기자 간담회에서 "이 기업들은 그동안 값싼 전기를 대량으로 사용한 혜택을 누려왔다"고 잘라 말했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그러나 "산업용 전력은 고압 전력망을 써서 공급 원가가 싸고 최근 산업용 전기료를 주택용보다 상대적으로 많이 올려 전기의 원가회수율이 가장 높다"며 "그런데 또 산업용만 올리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요금 인상의 유탄을 비켜 간 중소기업들도 정부의 핀셋 인상을 우려한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이날 논평을 내고 "산업용 전기의 원가회수율은 10여 년 전에 주택용을 넘어섰고 9월에도 산업용에 최대 11.7원에 달하는 추가 부담을 지웠다"고 지적했다. 최근에도 기업들이 주로 쓰는 산업용 전기요금이 상대적으로 많이 올랐는데 또다시 이것만 올리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비판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포함해 생산 시설만 지으면 적극적으로 뒷받참하겠다던 정부가 산업용 전기 요금만 계속 올리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하나"라며 "시시때때로 바뀌는 정부의 모습이 기업들의 정책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리지 않겠느냐"고 답답해 했다.



금융통화위원회처럼 전기위원회도 독립성 가져야

강경성(오른쪽) 산업통상자원부 2차관과 김동철 한국전력공사 사장이 8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경영위기 극복을 위한 자구책과 전기요금 조정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강경성(오른쪽) 산업통상자원부 2차관과 김동철 한국전력공사 사장이 8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경영위기 극복을 위한 자구책과 전기요금 조정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전기료 인상이 산업과 물가에 미치는 영향도 꼼꼼히 따져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기료 1%가 오르면 소비자 물가는 0.015%포인트 오르지만 생산자 물가는 두 배인 0.029%포인트 오른다. 산업연구원의 '에너지 전환정책의 파급효과와 제조업에 미치는 영향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전기료가 1% 오르면 국내 제조업 생산은 0.12%, 전력 다소비 업종의 생산은 0.15% 감소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 보고서에서는 반도체 산업의 평균 영업이익률이 11.67%인데 전기 요금이 12.5% 오르면 영업이익률이 0.36%포인트, 그중 대기업은 0.38%포인트 줄 것으로 추정했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동향분석실장은 "정부는 새만금 국가산업단지 등 해외로부터 첨단 산업 관련 기업의 생산 시설을 국내에 유치하려고 공들이고 있다"며 "산업용 전기 요금만 올린다면 국내에 들어오려는 기업들에는 하나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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