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강도 아닙니다” 금융지주 회장들의 ‘조금은’ 이유있는 항변

“우리 강도 아닙니다” 금융지주 회장들의 ‘조금은’ 이유있는 항변

입력
2023.11.22 16:00
24면
구독

전현직 금융지주 CEO 7명 얘기 들어보니
"돈을 많이 버니까 약탈적 영업이라고?"
"그저 당국이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인데?"
"돈잔치 줄이고 싶어도 딱히 방법이..."
"대구은행이 메기? 코미디 같은 정책"
"은행은 최후의 보루... 총선 후가 걱정"


20일 오후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에서 열린 금융당국과 금융지주회장 간담회에서 이석준(맨 왼쪽) 농협금융 회장 등 금융지주 회장단이 김주현 금융위원장의 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이날 금융당국은 5대 금융지주(KB·신한·하나·우리·NH농협금융지주) 및 3대 지방금융지주(BNK·DGB·JB금융지주) 회장들을 불러 취약계층을 위한 상생금융 방안을 논의했다. 뉴스1

지난 20일 금융당국 수장들이 주요 금융지주 회장들을 불러 모았다. 이달 초 윤석열 대통령이 ‘종노릇’ ‘갑질’ 등 은행을 향해 매서운 공세를 퍼부은 뒤 나온 후속조치였다. 관심은 은행들에게 이익 중 얼마를 토해내라고 할 것이냐였다.

구체적인 수치 언급은 없었다. "자발적 사회공헌"이라고 포장도 했다. 하지만 가이드라인이 너무 선명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횡재세 관련 법안을 보면 국회에서 요구하는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알 거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최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서명한 횡재세 법안(금융소비자보호법 개정안)은 초과이익의 최대 40%를 부담금 형태로 징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법을 적용하면 올해 은행들이 내야 하는 부담금이 1조9,000억 원 정도다. 적어도 이 금액만큼을 '은행 종노릇을 하고 있는' 소상공인·자영업자 금리를 깎아주는 등의 방식으로 내놓으라고 압박한 것이다.

요즘 은행은 ‘공공의 적’이다. 사방을 둘러봐도 우군은 없어 보인다. 당정과 야당이 '받고 더'를 외치며 누가 더 아프게 때리는지 경쟁한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서민 ‘표심’이 달려있다고 여겨서일 것이다.

대놓고 말할 수가 없어서 그렇지, 이들에게도 하고 싶은 말은 많다. 그저 변명에 불과한 것도 있지만, 귀담아 들어볼 만한 것들도 적지 않다. 스스로 반성하는 부분도 물론 있다. 모든 걸 싸잡아 악질기업으로 매도하니 억울할 법하다. 전현직 은행 최고경영자(CEO)들의 속내를 들어봤다. 현직 금융지주 회장 3명, 전직 금융지주 회장 3명, 전직 은행장 1명 등 7명 CEO의 얘기를 들었는데, 예민한 주제와 시기인 만큼 모두 익명을 원했다.


은행은 돈을 많이 벌면 안 된다?


연도별 은행 이자순수익 추이


지금 모든 논란의 시작은 은행들이 돈을 많이 벌어서다. 국내 은행들은 올 들어 9월까지 이자수익, 그러니까 예금금리와 대출금리 차액으로만 44조2,000억 원을 거둬들였다. 작년보다 9% 가까이 늘었다. 연간으로는 60조 원에 육박할 거라고 한다.

그런데 은행도 기업이다. 땅 짚고 헤엄치기이든 뭐든 정상적 영업 활동을 통해 돈을 버는 것 자체를 죄악시하는 건 옳지 않다. 수익성 지표들을 보면 다른 나라에 비해 정말 과도한 수익을 내고 있다고 딱 잘라 말하기도 어렵다. 이익 창출 자체를 부도덕하게 여기는 ‘반 시장국가’라는 나쁜 이미지를 해외투자자들에게 줄 수 있다.


- 손쉽게 돈을 많이 번 것은 부인하기 어렵지 않나.

A 전 회장 = “돈을 많이 번다 적게 번다의 가장 중요한 잣대는 총자산이익률(ROA)이다. 자산이 많으면 돈도 많이 벌겠지. 그 자산에 대해 수익을 얼마나 내느냐가 중요한 거다. 다른 선진국과 비교를 해보면 마냥 높다고만 할 수는 없다. 세계 어느 나라나 은행은 시장에 돈을 공급하고 일정 수익을 올려야 지속 성장이 가능하다. 그걸 인정하지 않으니 문제인 거다."

B 회장 = “단순히 예대금리차보다 자산 단위당 수익률을 보여주는 순이자마진(NIM)을 봐라. 대부분 은행에서 하락세다. 주가가 낮은 데는 다 이유가 있다.”

- 금리상승기에 은행이 혜택을 보는 건 분명하지 않나.

C 전 행장 = “금리가 오르면 대출금리만 오르는 게 아니고 예금금리도 같이 오른다. 다만 은행이 낮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저원가성 예금, 그러니까 핵심예금 금리는 거의 오르지 않으니 어느 정도 이익이 늘어나는 건 맞다. 금리가 연 0.1% 수준인 수시입출금식예금이 그렇지 않나. 하지만 나중에 금리 하강기에는 그만큼 이익이 줄어든다는 걸 감안해야 한다.”

D 회장 = “핵심예금 같은 자금 원천을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나쁜 놈이라고 몰아세우니까 답답한 거다. 돈을 번다고 착취적이고 약탈적인 영업을 하는 건 아니다.


실제 다른 나라와 비교해보자. 지난 10년간 연평균 총자산이익률(ROA)은 0.4%로 미국, 캐나다, 영국 등 영미권 은행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그러니 주가도 높지 않다. 한국 은행업종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은 0.3배 수준이다. 영국이나 일본은 0.5배에 달한다.


주요국 은행권 총자산이익률


금융당국은 책임 없나?

5대 은행 원화대출(가계+기업) 잔액


지금 채찍을 드는 건 금융당국이지만, 은행들의 이자장사에 혁혁하게 공을 세운 것 또한 금융당국이다. 집값을 띄우겠다며 규제까지 무력화시키며 대출을 독려했다. 대출이 늘어나니 이자수익이 늘어나는 건 당연하다. 가계부채 경고음이 커지자 부랴부랴 대출금리 인상을 주문하더니 이번엔 소상공인 어렵다고 이자를 내리라고 한다. 반면 예금 과당 경쟁을 막겠다며 예금금리 인상에는 제동을 건다. 오락가락 주문에 시장은 왜곡되고, 은행들은 때론 예대마진을 내고 싶지 않아도 낼 수밖에 없다. 그러니 “정부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인데 악질기업으로 매도한다”는 푸념이 쏟아진다.


- 금융당국 개입이 시장 왜곡을 낳는다는 비판이 많다.

E 전 회장 = “은행이 금리를 함부로 올린 것도, 내린 것도 아니고 그저 당국이 시키는 대로 했는데 결과가 이렇게 됐다. 자유시장경제에서 이게 말이 되나. 이렇게 금리 간섭을 하니 신용도가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보다 대출금리를 더 높게 부담하는 기형적인 구조까지 만들어지지 않나.”

D 회장 = “50년짜리 주택담보대출 누가 만들어 놓았나. 자금조달이 안 되니 금리가 올라가는 악순환이다. 조금 인내심을 가지고 시장에 맡겨두면 가격조절 기능에 의해 차츰 안정이 될 텐데, 불쑥불쑥 들어오니 당장은 효과가 있는 것 같다가도 역작용이 생긴다.” (당국은 50년 대출은 은행들이 스스로 한 거라고 주장하지만, D 회장은 당국이 시켜서 한 게 맞다고 했다.)

- 향후 후폭풍이 우려되는 부분도 많지 않겠나.

F 전 회장 = “금리가 시장에서 제대로 작동되면 한계기업 구조조정으로 시장이 안정을 찾는다. 그런데 선거를 앞두고 기업들 모두 망하지 않게 하라고 은행을 압박한다. 선거 끝나면 어떤 일이 생기겠나.

G 회장 = “지금 은행 이익이 많은 것처럼 보이는 건 허상이다. 차주들의 신용등급이 갈수록 악화하는데 연명하도록 돕고 있는 것 아닌가. 나중에 그 리스크는 은행이 모두 떠안아야 한다.”


돈잔치 과도한 건 인정하지만…

1일 은행연합회가 발표한 2022 은행 경영현황 공개 보고서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의 직원 1인당 근로소득은 약 1억933만 원이다. 평균 상여금은 3,080만 원 수준으로 나타났다. 이는 임원을 제외한 직원만의 근로소득이다. 뉴스1


CEO들이 문제를 인정하는 것도 물론 있다. 윤 대통령이 지적한 '돈잔치'다. 지난해 5대 시중은행 임직원 평균 연봉은 1억1,006만 원이었다. 은행원들이 1년간 받아간 성과급이 1조3,800억 원이다. 그뿐 아니다. 5대 은행에서 지난해 희망퇴직 인원은 2,357명이다. 1인당 평균 희망퇴직금이 3억5,548만 원이다. 여기에 기본퇴직금까지 얹어 10억 원 가까이 퇴직금을 챙기는 이들도 적지 않다.

전현직 CEO 대부분 국민 눈높이에 분명 맞지 않다고 본다. 하지만 경영진이 손쓸 수 없는 부분이라고 하소연한다. 산별노조인 금융노조와의 단체협약에서 정해지기 때문에 운신의 폭이 좁다는 것이다.


- 돈잔치 비판에 동의하나.

D 회장 = “희망퇴직금이나 성과급 등은 과도한 측면이 있다고 본다. 하지만 노조 설득이 어렵다. 연공서열에 따른 호봉제 급여는 무조건 오르게 돼 있다. 성과급 등은 금융노조에서 정하면 개별 은행은 자율권이 사실상 거의 없다. 이 구조적 문제 해소 없이 은행 때리기만 해서는 답이 없다.”

- 그런데 당국은 채용을 독려하고 있지 않나.

F 전 회장 = “은행원 1명을 뽑으면 60억 원짜리 빌딩을 사는 것과 똑같다고들 한다. 정년까지 고연봉을 주면서 데리고 있어야 하니 그렇다. 36개월 명예퇴직금 문제를 해소하려면 임금피크제를 없애야 하는데 그러면 신입행원을 뽑을 수 없다. 그런데 정부가 은행들에게 채용은 늘려 일자리 책임지라고 하니 악순환이 지속되지 않겠나.”


대구은행을 메기로 만든다고?

이달 6일 오전 대구 수성구 대구은행 본점 콘퍼런스홀에서 황병우 대구은행장이 참석한 가운데 'DGB 대구은행 시중은행 전환 인가 추진 결정'과 관련한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사진은 이날 대구은행 본관 전경. 연합뉴스


금융당국은 2월 은행권 경영과 제도를 모두 뜯어고치겠다며 태스크포스(TF)를 가동했다. 독과점에 근본 원인이 있다는 판단이었다. 하지만 7월 내놓은 결과물은 초라했다. 그나마 눈에 띄는 게 지방은행인 대구은행의 시중은행 전환이었다. 신규 경쟁자를 투입시켜 은행 독과점을 허물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전현직 CEO들의 반응은 매우 냉담하다. 지금도 은행 수가 부족해서 경쟁이 없는 것도 아니고, 시중은행 1곳이 늘어난다고 경쟁이 촉진될 리 만무하다고 코웃음을 친다. 탁상행정의 전형이라는 것이다.


- 대구은행이 경쟁 촉진자, 그러니까 메기가 될 수 있겠나.

E 전 회장 = “메기 효과를 노린다고 메기들 노는 데다가 미꾸라지 한 마리를 투입하겠다는 것으로밖엔 보이지 않는다. 그것도 시중은행 하나를 새로 만드는 것도 아니고, 지방은행에서 시중은행으로 바꾸는 걸로 은행업 경쟁을 촉진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A 전 회장 = “정말 코미디다. 그걸 너무 엄숙하게 진행하고 있는 것 자체가 너무 웃기다.”

- 경쟁이 충분하지 않다는 데는 동의를 하나.

G 회장 = “인터넷은행을 만들어서 경쟁이 늘어났는데 그래서 이자마진이 줄어들었나. 경쟁이 없어서 생기는 문제가 아니란 얘기다.”

E 전 회장 = “만약에 정말 경쟁을 키우겠다면 경쟁력 있는 외국은행을 유치해야지 않나. 그들이 뛰어놀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하는 거 아닌가. 경쟁이 불가능할 정도로 모든 걸 간섭하면서 경쟁이 불충분하다고 은행 1곳을 늘리겠다니 한심한 거다.”


사회공헌 의향 있지만 더 중요한 건?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한국형 횡재세 도입, 세금인가 부담금인가?'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시스


열심히 공부하는 참에 부모가 다그치면 공부할 마음이 싹 달아나는 법이다. 요즘 은행 심정이 딱 그런 모양이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지난해 은행권 사회공헌활동 총금액은 1조2,380억 원 수준이다. 전년보다 16.6% 늘었다. 지난 2월 윤 대통령의 ‘돈잔치’ 발언 이후 3년간 5,800억 원 규모의 자금을 출연해 상생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다. 그런데 마치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마냥 몰아세우니 부글부글 끓는다.


- 은행들이 상생금융에 나서야 한다는 데는 공감하나.

B 회장 = “경제 상황이 어렵고 나라 재정 상황이 여의치 않다.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은행들이 역할을 해야 한다는 데에는 적극 공감한다.”

G 회장 = “모든 기업들이 잘 되는 게 아니라 은행만 잘 되고 있긴 하니까 일정 수준까지는 사회적 기여를 해야 하지 않겠나. 이런 생각들은 다들 하고 있을 것으로 본다.”

- 도와달라는 게 아니고, 떠밀기만 하니까 문제라는 말인가.

F 전 회장 = “그렇다. 우리가 사회공헌이나 상생프로그램을 하다가 중간에 멈췄다면 뭐라 할 수 있겠지. 지금도 해나가고 있고 더 할 생각도 있는데 이렇게 가차 없이 매도하면 되겠나.

- 야당이 도입하겠다는 횡재세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B 회장 = “횡재라는 개념이 뭔지를 규명하기도 어렵지만 횡재세가 도입되면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엄청난 충격일 것이다.”

D 회장 = “이익이 예년보다 좋아진 것을 횡재로 볼 건 아니지 않나. 앞으로 비구름이 몰려오는데 그래도 좀 우산을 준비할 여력이 생겼다는 걸로 봐야 하지 않겠나. 관점이 전혀 다른 것이다.”

F 전 회장 = “어려운 사람이 있으니까 잘나가는 사람 때리는 맛은 있겠지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횡재세 하고 있는 나라는 법인세율이 단일 세율인 나라다. 법인세가 우리나라처럼 이익이 많아질수록 세율이 높아지는 누진세라는 건 이미 법인세에 횡재세 개념이 포함돼 있다는 얘기다.”

- 은행은 최후의 보루 역할을 해야 하는 곳인데.

D 회장 = “당국은 국민들이 당장 힘들어하니까 돈 많이 버는 은행을 혼내줘야 국민들을 달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이해를 하지만 이건 마약과 같은 것이다. 내년 총선 뒤로 다 미뤄두는 것이다. 금리 조금 깎아주는 것보다 상처를 치유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다. 어려울 때를 대비해 충분히 충당금을 쌓고 구조조정이나 채무조정을 서둘러 위험을 분산시켜야 하지 않겠나.”


전현직 CEO들의 주장에 100% 공감은 어려울 수 있다. 들인 노력에 비해 절대적인 이자수익이 큰 것은 사실이다. 한국 금융이 우물 안 개구리에 머물고 있는 것을 원화가 글로벌 통화가 아니어서라고 강변하는 것도 군색하긴 하다. 어떤 혁신 노력을 했는지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다. 돈잔치를 전적으로 노조 탓으로만 돌리는 것 또한 적절치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귀담아들어야 할 부분은 적지 않다. 이익을 많이 내도 다 빼앗길 거라면 가뜩이나 타성에 젖은 은행들이 안정적인 영업만 하며 더 납작 엎드리지 않겠는가. 지금 돈을 내놓으라고 닦달하는 당국이 나중에 경제가 어려워졌을 때 왜 기초체력을 다지지 않았느냐고 적반하장격으로 다그칠 일은 없겠는가. 은행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아야지 무턱대고 이익을 내놓으라고 하면 되겠는가. 금융당국 수장이 해외 기업설명회(IR)를 직접 다니며 은행 투자를 독려한 것이 다 헛말이 되지 않겠는가.

많은 CEO들은 총선 이후를 걱정했다. 지금의 포퓰리즘 정책들이 어떤 형태로든 후폭풍을 몰고 올 수밖에 없다는 점을 정말 모르는 건지, 아니면 알고서도 모르는 척하는 건지 묻고 있는 것이다.




이영태 논설위원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