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꼴찌 된 한강의 기적

입력
2023.11.22 18:00
수정
2023.11.28 13:35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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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성장률 한 1.4% 중 5% 일 2%
북한에도 밀려 '피크코리아' 확산
제조·수출 주도 성장 방식 바꿔야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2010년 대전 동구 이사동에서 열린 천년의 풍류 매사냥 공개 시연회에서 송골매가 미끼 새를 낚아채고 있다. 대전=박서강기자(자료사진)

2010년 대전 동구 이사동에서 열린 천년의 풍류 매사냥 공개 시연회에서 송골매가 미끼 새를 낚아채고 있다. 대전=박서강기자(자료사진)

끝날 때까진 끝난 게 아니지만 올해 우리나라의 경제 성적표는 중국과 일본에 뒤처질 가능성이 높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023년 한국 성장률을 1.4%, 중국은 5.4%, 일본은 2.0%로 예상했다. 1인당 국민소득이 아직 1만 달러대인 중국의 성장률에 못 미치는 건 이상할 게 없다. 그러나 경제 규모는 물론 1인당 소득도 큰 일본에도 추월당한 건 심상찮다. 한일 성장률 역전은 25년 만의 ‘사건’이다.

다른 아시아 국가와 비교해도 초라하다. 인도네시아는 5.0%, 베트남은 4.9%, 호주는 3.4%, 대만은 1.6% 안팎이 될 것이란 게 각국 정부나 국제기구 추정이다. 모두 우리보다 높다.

심지어 북한에도 밀릴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북한은 코로나19 영향으로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 연속 역성장을 기록했다. 이런 기저효과에 올해엔 무역까지 재개된 만큼 플러스로 돌아섰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 관측이다. 상반기 북중 무역액도 10억 달러를 넘어, 전년 동기 대비 2배 이상 급증했다. 지난 9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상회담 이후 북한산 무기가 대거 ‘수출’된 점도 주목된다.

경제 몸집과 발전 단계가 제각각인 나라들을 성장률 수치로만 비교하는 건 무리가 있다. 그러나 눈부신 경제 성장과 한강의 기적으로 부러움을 사던 우리나라가 어느새 아시아 성장률 꼴찌로 추락한 건 유감이다. 더 심각한 건 향후 회복 가능성도 희박하다는 데 있다. 이미 잠재 성장률은 2% 안팎까지 내려앉았다. 이마저도 앞으론 더 떨어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30∼2060년 한국의 잠재 성장률을 연간 0.8%로 추정했다. 사실상 제자리걸음이다.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과 가장 빠른 고령화로 인해 한국 경제가 정점을 찍고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다는 ‘피크코리아’(Peak Korea)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활기를 잃은 저성장의 그림자는 주변서도 확인된다. ‘그냥 쉬는’ 인구가 1년 만에 8만 명 이상 늘어 232만 명을 넘어섰다. 증가분의 대부분은 2030이다. 그냥 쉬는 이유를 묻자 ‘원하는 일자리가 없다’는 답이 가장 많았다. 사실 고급 인력인데 아무 데서나 일할 순 없다. 눈높이가 높다고 젊은 세대만 탓할 게 아니라 이들이 원하는 새 일자리를 창출하지 못한 기성세대의 직무유기 책임을 더 물어야 한다. 그동안의 제조업과 수출을 중심으로 한 성장 모델이 계속 유효한지 진지하게 고민할 때다. 인공지능(AI) 시대와 4차 산업혁명에 맞는 새로운 성장 모델을 찾아야만 한다.

이제 한국 경제는 뼈를 깎는 구조조정과 환골탈태로 ‘성장 2막’을 열어야 한다. 답이 없는 것도 아니다. 저출산 고령화로 노동력을 늘리는 데엔 한계가 있지만 노동 생산성을 올리는 건 얼마든지 가능하다. 투자의 주체인 기업이 마음껏 뛸 수 있도록 시대에 안 맞는 족쇄는 풀어주는 것도 필요하다. 그럼에도 지금 정부와 야당 모두 이를 위한 노동 시장과 교육 개혁, 구조조정과 시장 혁신엔 뜸만 들이고 있다. 온 신경이 내년 총선에 가 있고 표 계산을 하느라 정작 해야 할 일은 미루면서 포퓰리즘 경쟁만 벌인다. 정치의 성패도 결국 경제 성적표가 좌우한다는 걸 모르는 듯하다. 성장이 모든 걸 해결해줄 순 없다. 그러나 성장 없인 생존도 힘든 게 냉혹한 현실이다. 변해야 산다.


박일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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