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키즈, 피프티가 바꾼 'K팝 지도'... BTS 공백 후 변화 보니

입력
2023.11.30 04:30
수정
2023.11.30 11:08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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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진 K팝 세계 소비 흐름>
미국, 중국 제치고 K팝 음반 수입 2위로... 톱10에 독일 등 유럽 국가 네 곳
스트레이키즈 피프티피프티 북미·유럽이 '유행 1번지'
한국보다 K팝 많이 듣는 인도네시아... '한한령' 중국, '한국여행 금지' 태국 수출은 빨간불

그룹 스트레이키즈가 7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세계적 음악 축제 '2023 롤라팔루자 파리'에서 간판출연자(헤드라이너)로 무대에 올라 노래하고 있다. 이 공연엔 6만 관객이 몰렸다. JYP엔터테인먼트 제공

그룹 스트레이키즈가 7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세계적 음악 축제 '2023 롤라팔루자 파리'에서 간판출연자(헤드라이너)로 무대에 올라 노래하고 있다. 이 공연엔 6만 관객이 몰렸다. JYP엔터테인먼트 제공

퀴즈 하나. K팝을 가장 많이 듣는 나라는 어디일까. 한국? 당연할 것 같지만 아니다. 오히려 미국과 인도네시아 등에서 K팝 음원 소비가 한국보다 더 많이 이뤄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미국은 일본과 함께 아시아 최대 K팝 소비국 중 하나로 손꼽혔던 중국을 제치고 올해 처음으로 K팝 음반 수입 세계 2위 국가로 떠올랐다.

미국을 중심으로 K팝 음반 수출 지형도 확 바뀌었다. 독일 등 일부 유럽 국가의 K팝 음반 수입량은 홍콩과 태국 등 전통 아시아 한류 국가를 추월하기 시작했다. 방탄소년단과 블랙핑크의 뒤를 이어 2018년 이후 데뷔한 4세대 K팝 아이돌그룹 중에선 아시아보다 북미와 유럽 음원 시장에서 더 주목받는 팀도 등장했다. 북미와 유럽이 K팝 세계 소비 시장 판도를 뒤흔들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K팝 시장이 개편되면서 유행 방정식도 달라졌다. 아시아에서 반향이 생긴 뒤 북미와 유럽으로 그 인기가 확산하는 흐름에서 이젠 그 반대 사례가 속속 생기고 있다. 세계 음악시장 분석 회사 루미네이트(옛 닐슨뮤직)가 최근 발표한 'K팝 글로벌 지배력' 보고서와 1~10월 CD 등 음반 수출 현황 등으로 확인한 결과 'K팝 세계화 풍경'은 달라지고 있다.

그래픽=김문중 기자

그래픽=김문중 기자


그룹 피프티피프티의 '큐피드' 신드롬은 미국에서 지난 3월 처음으로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어트랙트 제공

그룹 피프티피프티의 '큐피드' 신드롬은 미국에서 지난 3월 처음으로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어트랙트 제공


그룹 뉴진스가 지난달 미국에서 열린 빌보드뮤직어워즈에서 톱 글로벌 K팝 아티스트 부문 수상자로 선정돼 트로피를 들고 기뻐하고 있다. 어도어 제공

그룹 뉴진스가 지난달 미국에서 열린 빌보드뮤직어워즈에서 톱 글로벌 K팝 아티스트 부문 수상자로 선정돼 트로피를 들고 기뻐하고 있다. 어도어 제공


BTS 공백? K팝 음반·음원 소비 '역대급'

K팝은 올해 특수를 누렸다. 관세청 수출입 무역통계에 따르면 1~10월 음반 수출은 2억4,381만 달러로 전년 동기(2억260만 달러) 대비 약 21% 증가했다. 지난해 총 음반 수출액(2억3,138만 달러)을 이미 뛰어넘은 수치로 역대 연간 최대 규모다. 음원 소비도 부쩍 늘었다. 'K팝 글로벌 지배력' 보고서에 따르면, 1월부터 10월 첫째 주까지 스포티파이와 틱톡 등에서 K팝 음원 및 관련 영상 재생 건수(상위 100팀 기준)는 904억 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42.2% 증가했다. 일본(97억 건)과 미국(92억 건), 인도네시아(74억건)는 한국(73억건)보다 K팝을 더 많이 들은 것으로 집계됐다. 멤버들의 잇따른 입대로 단체 활동을 잠정 중단한 방탄소년단의 공백으로 K팝 수출 시장이 주춤할 것이라는 우려와 달리 음반, 음원 소비 모두 동반 성장했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와 뉴진스 등 데뷔 1~3년 차 된 신인 그룹들이 해외에서 새로 K팝 팬덤을 끌어모으고, 방탄소년단 멤버 지민과 정국 등이 각각 솔로로 나서 K팝 시장에 불을 지핀 결과다.

K팝의 역대급 호황은 북미와 유럽 시장의 고속 성장에서 비롯됐다. 미국에선 1~10월 K팝 음반 수입액이 5,432만 달러로 전년 동기(3,246만 달러) 대비 60% 늘었고, 음원 소비도 같은 기간 66억 건에서 92억 건으로 145% 증가했다. 일본에 이어 음반, 음원 모두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K팝 소비 규모다. 대미 K팝 음반 수출액은 대중 수출액(2,333만 달러)의 두 배를 웃돌았다. 미국의 K팝 소비가 올해 그만큼 뜨거웠단 뜻이다.

그룹 투모로우바이투게더가 28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K팝 음악 시상식 '2023 MAMA 어워즈'에서 월드와이드 팬 초이스 부문 수상자로 선정된 뒤 공연하고 있다. CJ ENM 제공

그룹 투모로우바이투게더가 28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K팝 음악 시상식 '2023 MAMA 어워즈'에서 월드와이드 팬 초이스 부문 수상자로 선정된 뒤 공연하고 있다. CJ ENM 제공


북미·유럽 'K팝 유행 1번지'... 피프티, 스키즈 흥행 주도

유럽의 K팝 소비 성장세도 무섭다. 독일은 K팝 음반을 755만 달러치 사들여 홍콩(681만 달러·6위)을 제치고 K팝 수입국 톱5로 부상했다. K팝 수출 시장 톱10 중 독일을 비롯해 네덜란드(417만 달러·7위), 프랑스(357만 달러·9위), 영국(303만 달러·10위) 등 네 곳은 유럽 국가였다. 태국(229만 달러)과 싱가포르(132만 달러), 베트남(124만 달러) 등 한류의 전통 주요 소비시장이었던 동남아에서보다 유럽에서 K팝 음반이 더 불티나게 팔리고 있는 셈이다. 미국과 유럽에서 K팝의 영향력이 1~2년 전과 비교해 두드러지게 커지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미국과 유럽에서 더욱 강력해지고 있는 K팝 팬덤은 K팝 유행까지 견인하고 있다. 4세대 K팝 아이돌그룹 간판인 스트레이키즈의 음원 재생은 60% 이상이 아시아 밖에서 이뤄진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과 캐나다 등 북미(20.9%)와 유럽(20.7%)에서의 음원 재생이 아시아(39.4%)를 넘어섰다. 3세대 K팝 아이돌그룹의 세 축인 방탄소년단(52.3%)과 블랙핑크(58.7%), 트와이스(59.6%)의 음원 재생 절반 이상 모두 아시아에서 이뤄진 것을 고려하면 눈에 띄는 변화다. 김도헌 음악평론가는 "스트레이키즈의 북미와 유럽에서의 도드라지는 인기는 강렬한 군무와 자작곡을 통해 소수자를 아우르는 노래의 메시지('매니악' 등)를 특징으로 하는 K팝에 대해 서구의 관심이 높고 그 전통적 K팝에 대한 팬덤이 그만큼 더 두터워진 데 따른 변화"라고 짚었다.


'강력한 군무+자작곡 소수자 포용 서사' 찾는 서구

'K팝 글로벌 지배력' 보고서에 따르면 작은 기획사 출신으로 기적을 일군 그룹 피프티피프티의 '큐피드' 신드롬도 3월 미국에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가장 먼저 그리고 활발하게 이뤄졌다. 미국에서 불붙은 인기는 석 달이 지나 6월 인도와 인도네시아로 확산해 곡의 재생이 폭증했다. 이런 양상들은 미국과 유럽이 K팝 유행의 '1번지'로 떠오르며 K팝의 소비 방식을 바꾸고 있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김성환 음악평론가는 "K팝이 미국 빌보드 글로벌 차트 등을 통해 조명받고 그렇게 입소문을 통해 비영미권 국가들로 퍼지는 식의 소비 루트가 새로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라며 "아시아 시장을 집중 공략했던 5~6년 전과 달리 K팝 기획사들이 요즘 미국과 유럽 시장 공략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는 이유"라고 분석했다. SM엔터테인먼트가 영국 유명 TV 프로그램 제작사인 문앤백과 손잡고 'K팝 DNA'를 갖춘 영국 보이그룹 제작 계획을 최근 발표하고, 하이브가 정국의 첫 솔로 앨범 '골든'을 미국 시장 공략을 위해 전곡을 영어로 만들며 승부수를 띄운 배경이다.

그룹 방탄소년단 멤버 정국이 지난달 미국 뉴욕의 록펠러 플라자에서 열린 NBC '투데이 쇼'를 촬영하며 현지 팬들과 만나고 있다. 뉴욕=AP·뉴시스

그룹 방탄소년단 멤버 정국이 지난달 미국 뉴욕의 록펠러 플라자에서 열린 NBC '투데이 쇼'를 촬영하며 현지 팬들과 만나고 있다. 뉴욕=AP·뉴시스


그룹 블랙핑크가 지난달 영국 런던 버킹엄궁에서 열린 문화 예술인 격려 행사에서 찰스 3세 국왕에게 받은 대영제국훈장을 들어 보이고 있다. 스탠스테드 AFP=연합뉴스

그룹 블랙핑크가 지난달 영국 런던 버킹엄궁에서 열린 문화 예술인 격려 행사에서 찰스 3세 국왕에게 받은 대영제국훈장을 들어 보이고 있다. 스탠스테드 AFP=연합뉴스


낮아진 '차이나머니' 의존

미국과 유럽으로 수출 전선을 넓힌 K팝의 '차이나머니' 의존도는 낮아졌다. 대중 K팝 음반 수출액은 2,333만 달러로 전년 동기(4,774만 달러) 대비 반 토막이 났다. 중국 정부의 한류제한령과 강화된 팬덤 규제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입국 심사 논란으로 현지에서 한국 여행 금지 움직임이 있었던 태국의 K팝 음반 수입액도 390만 달러에서 올해 229만 달러로 감소했다. 아시아 국가에서 K팝 수출에 빨간불이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미국과 함께 한국보다 K팝을 더 많이 듣는 나라로 조사된 인도네시아는 잠재력 있는 신흥 시장으로 주목받고 있다. 김영수 한국콘텐츠진흥원 인도네시아 비즈니스센터장은 "세계 4위의 인구대국인 인도네시아는 중위 연령(29.7세)이 낮은 데다 K팝의 '흥'에 관심이 많다"며 "대졸 신입 사원 월급이 60만 원 전후인데 최소 8만 원 이상인 K팝 공연 티켓 소비에 주저 없고 적극적"이라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양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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