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불화, 염원을 담아낸 '다이내믹 코리아'의 아름다움

고려 불화, 염원을 담아낸 '다이내믹 코리아'의 아름다움

입력
2023.12.07 04:30
수정
2023.12.07 09:34
21면

<35> ‘대보적경권32변상도’, 서구방의 '수월관음도' 등

편집자주

아무리 유명한 예술작품도 나에게 의미가 없다면 텅 빈 감상에 그칩니다. 한 장의 그림이 한 사람의 삶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맛있게 그림보기는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그림 이야기입니다. 미술교육자 송주영이 안내합니다.


드라마 '고려거란전쟁'에 등장하는 고려 7대 목종, 천추태후, 김치양 분(왼쪽부터)의 모습. KBS 화면 캡처

드라마 '고려거란전쟁'에 등장하는 고려 7대 목종, 천추태후, 김치양 분(왼쪽부터)의 모습. KBS 화면 캡처

할아버지, 남편, 친오빠, 그리고 아들까지 모두 황제였던 여인이 있었다. 최근 시작한 KBS 드라마 ‘고려거란전쟁’에 등장하는 천추태후 황보씨(헌애왕후·964~1029)다. 고려 왕실의 복잡한 근친혼이 낯설고 이질적이겠지만, 세계 역사에서 왕족의 근친혼은 흔했다.

고려를 방문했던 북송 사신, 서긍의 ‘고려도경’에 “고려인들은 시냇가에서 남녀가 함께 목욕하더라”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고려는 조선에 없던 자유분방함이 있었다. 고려의 딸들은 아들과 똑같이 재산을 물려받았고, 이혼과 재혼이 어렵지 않았으며, 무엇보다 여성의 성이 억압받지 않았다. 고려의 수도 개성은 많은 해외 상인이 머물던 국제도시였다.

고려 5대 왕 경종(955~981)과 혼인한 천추태후는 아들(7대 목종·997~1009)을 낳은 지 1년 만에 경종과 사별했고, 이후 궁을 떠나 사가에 머물던 중 외척인 김치양(?~1009)과 연인이 됐다. 이런 애정행각을 문제 삼을 사회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친오빠인 6대 왕 성종(960~997)이 중국 송나라의 유학 마니아였던 것이 문제였다. 성종의 눈에 여동생의 행동은 “유교적으로 틀린 행동”이었기에 김치양을 귀양 보냈다. 그런데 그즈음, 성종의 둘째 여동생 헌정왕후 황보씨(?~992)에게도 새 연인이 생겼다. 헌정왕후는 천추태후의 여동생이다. 자매가 함께 사촌오빠 경종과 혼인했고 동시에 남편과 사별한 것이다.

헌정왕후는 왕욱(?~996·태조 왕건의 여덟 번째 아들)과 사랑에 빠졌다. 성종은 여동생의 연인이자 자신의 숙부였던 왕욱 역시 귀양을 보냈고, 헌정왕후가 아들을 낳고 사망했으니 그 아들이 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의 주인공 8대 왕 현종(992~1031·대량원군)이다. 4대 광종(925 ~ 975)이 많은 이복형제들을 숙청한 결과, 7대 목종대에 왕실에 남은 혈통은 태조 왕건(877~943)의 아들과 손녀가 낳은 현종뿐이었다. 이 복잡한 가계도를 설명한 이유는 천추태후와 김치양 덕분에 남겨진 그림을 설명하기 위해서다. 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의 1~3화에 등장하는 천추태후와 김치양, 그들의 이름이 적힌 천년 전의 그림 한 점에서부터 고려 미술사가 시작한다.

중국 최고의 미술평론가가 감탄했던 고려 초기 회화

우리나라 미술의 역사를 떠올릴 때 고구려 고분벽화, 백제 향로, 신라 금관, 통일신라 석굴암, 고려청자 등이 열거된다. 주로 오랜 세월을 견딜 수 있는 단단한 조형물이다. ‘그림’이라 부를 수 있는 유물은 찾아보기 힘들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한 시대의 세계관, 가치를 시각화한 것이 고대 유물이다. 유물의 역사가 미술의 역사다. 이는 현재 우리 문화의 정체성을 만들어준다. 비교적 많은 유물과 자료가 있는 조선을 한국의 정체성으로 좀 더 쉽게 느끼는 이유다. 그러나 최근 새롭게 확인되고 있는 고려 유물이 있다. 고려 불화다.

고려 불화는 이미 유명하지 않나 싶겠지만, 공식적으로는 1970년대 후반에 와서야 이 아름다운 그림들이 고려의 것임이 밝혀졌다. 이전에는 중국이나 일본의 것으로 추정됐다. 이토록 뒤늦게 알게 된 이유는 대부분이 우리 곁에 없기 때문이다. ‘코리아’를 세계에 알린 고려청자 외에도 놀라운 수준의 고려 회화가 있었음을 문헌을 통해 추측할 뿐이었다.

중국 송나라의 미술평론가 곽약허가 저술한 ‘도화견문지’(1080)에는 “고려 그림은 기교의 정교함이 다른 나라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나다”면서 당시 북송 사람들에게 고려 그림이 그려진 화접선(부채)이 크게 유행했다고 기록돼 있다. 현재 전해지는 고려 화접선은 없지만, 그나마 일본으로 건너간 ‘대보적경권32변상도’(1006)와 ‘보협인다라니경변상도’(10목판화)를 통해 고려 초기 회화 역량을 가늠해 볼 수 있다.

‘고려거란전쟁’의 천추태후와 김치양 때문에 남겨진 천년 전 그림

천추태후와 김치양이 발원한 '대보적경권32변상도', 감지에 은니, 1006. 일본 문화청. '1388년 일본에 기부됐다'는 붉은 글씨로 고려 말 일본에 유입된 것으로 확인된다.

천추태후와 김치양이 발원한 '대보적경권32변상도', 감지에 은니, 1006. 일본 문화청. '1388년 일본에 기부됐다'는 붉은 글씨로 고려 말 일본에 유입된 것으로 확인된다.

‘대보적경권32변상도’는 현재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고려 그림이다. 변상도는 불교경전을 필사한 두루마리에 있는 그림을 뜻한다. 여기에는 1006년, 천추태후와 김치양이 함께 발원(부처에게 소원을 빔)했다는 명문이 남아 있다. 천추태후와 김치양의 아들이 3세였고, 대량원군(992~1031)이 사찰로 쫓겨난 지 3년 되던 해였다.

당시 천추태후가 어떤 마음으로 이 시절을 살았는지 추측할 뿐, 정확한 진위는 확언하기 어렵다. 그러나 엄청난 자금을 들여 재료를 구입해 제작을 주문했을 만큼 절박하고 간절했던 것으로 보인다. 평생 이복형제들의 권력다툼을 지켜보며 성장했고, 본인 또한 그 소용돌이에 섰을 때 어떤 심정이었을까. 안타깝게도 3년 후인 1009년, ‘강조의 정변’으로 천추태후의 염원은 물거품이 됐다. 연인 김치양, 늦둥이 아들, 그리고 아들 목종까지 모두 죽임을 당했다. 금과 은으로 그려낸 푸른 꿈은 결국 이뤄지지 못했다.

‘대보적경권32변상도’는 총 9m의 감색 두루마리에 금과 은으로 누가 쓰고 그렸는지는 알 수 없지만 동시대 중국 변상도에 견줄 때 그 기술력이 상당했음을 알 수 있다. 홍선표 이화여대 미술사학과 명예교수는 “1006년과 1007년에 만들어진 두 점의 변상도는 통일신라와 중국의 화풍을 이으면서도 고려 특유의 섬세하고 독특성이 돋보인다”며 당시 중국 최고의 감평가들이 서로 고려의 그림을 소장, 감상하려 했던 수준이었다고 밝혔다. (미술사논단 48호, 2019)

이처럼 고려 회화는 초기부터 섬세하고 정교했으며 중기, 후기에 이르러 화려함을 더해갔다. 고려 중기 이후 중국과의 활발한 교류를 통해 산수화, 문인화가 본격화되었고 왕실에는 ‘화국’을 뒀다. 19대 명종대의 화원 이녕(李寧)은 전설적이다. 북송 황제 휘종(1082~1135)이 극찬하며 곁에서 그림을 가르쳐달라고 매달렸을 정도였다.

이녕, 이광필, 고유방 등 화국에서 활동한 화원들 외에도 정득공, 이제현(1287~1367) 등 문인 화가들도 명성이 높았다. 그러나 후대까지 전해진 이들의 작품은 없다. 이처럼 기록으로만 알려진 뛰어난 고려의 화원과 문인화가들이 많았지만, 고려 회화사 전반에 큰 부분을 차지하는 이들은 수많았던 작자미상 화가들이다. 그들이 고려 회화의 꽃이라 불리는 고려불화의 창작자들이다.

고단했던 고려의 민중을 달래고 위로했던 고려 불화

고려는 474년 동안 ‘다이내믹 코리아’였다. 다사다난했던 고려는 거란의 침입에서부터 여진, 몽고, 홍건적, 왜구에 이르기는 이민족의 침략에 시달렸다. 안으로는 권력다툼으로 소란했고, 밖으로는 격변하는 국제정세를 살펴야 했다. 국가와 왕실의 번영을 염원하는 ‘호국불교’는 세계적으로 찾아보기 힘든 한국 불교의 특징이다. 끊임없는 전쟁과 정치다툼을 감내해야 했던 고려 민중을 달래고 위로했던 것이 고려 불화였다.

현재 남아 있는 고려 채색 불화는 전 세계에 약 160점이 있는데, 그중 약 130점이 일본에 있고 국내 소장은 13점뿐이다. 몽고에 저항했던 13세기 이후부터 주로 제작되었다. 여말선초의 임진왜란, 일제강점기 등을 거치며 많은 고려 불화가 유출된 것은 맞지만, 모두 약탈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일부는 주문 또는 선물도 있었으며, 애초에 중국의 것으로 여기고 받아온 것들도 있다.

불화를 하나의 성물로 간주해 마모, 훼손되면 불에 태우며 폐기하는 관습이 고려와 조선 시대에 있었다는 점도 살펴볼 부분이다. 일본은 이러한 관습이 없었고 대륙에서 온 물건을 보물로 여기는 관습이 컸기에 보존율이 높았다. 연유가 어찌 됐든 현재 우리 곁에 고려 유물이 부족하고, 개경(개성) 중심의 고려 유적이 북한에 있다는 점은 큰 아쉬움이다. 전체 160점 중에서 제작연도와 제작자가 파악된 것은 20여 점뿐이다. 그중에서 화가의 이름이 확인된 고려 불화는 4점만 남아 있다.

노영, 혜허, 김우, 서구방의 고려 불화

노영, ‘태조금강산예불도’, 목판금니화, 22.5×13㎝, 1307,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노영, ‘태조금강산예불도’, 목판금니화, 22.5×13㎝, 1307,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노영의 ‘태조금강산예불도’ 좌측 상단 부분. 절하는 인물 옆에 '태조'라고 적혀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노영의 ‘태조금강산예불도’ 좌측 상단 부분. 절하는 인물 옆에 '태조'라고 적혀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태조금강산예불도'(1307년)는 14세기 초에 활동했던 노영(魯英)이 그린 것으로 태조 왕건과 화가의 자화상이 포함되어 있는 독특한 불화다. 자의식의 상징으로서 자기 모습을 그림 속에 그려 넣는 일은 유럽 르네상스 시대 화가들만은 아니었다. 화가 이름이 확인된 또 다른 독특한 불화로 혜허(慧虛)의 ‘수월관음도’가 있다. 물방울 모양 또는 버들잎 형태의 광배가 있는 독특한 양식으로 1300년대 초 작품으로 추정된다.

비슷한 시기 1310년에 제작된 일본 가가미신사 소장 ‘수월관음도’는 무려 4m에 달하는 압도적인 규모로 제작 시기와 발원자, 그린 사람을 모두 알 수 있는 유일한 고려 불화다. 지난 9월 일본 규슈국립박물관에서 개최된 불화전에 오래간만에 모습을 보여 화제를 모았다. 이 수월관음도는 제작연도, 발원자, 화가의 세 가지 정보가 확인된 유일한 고려 불화다. 1310년 충렬왕비였으나, 1308년 충렬왕(1236 ~1308) 사후 충선왕(1275~1325)의 부인이 돼 숙비(淑妃)가 된 김씨가 발원하고 김우, 이계, 임순, 최승 등 궁정화가들이 함께 그렸다는 후대 일본인의 기록이 있다.

마지막으로, 발원자는 알 수 없지만 고려 27대 충숙왕(1294~1339)대에 화가 서구방이 그렸다는 일본 교토 센오쿠 하쿠코칸 소장 ‘수월관음도’(1323년)는 고려 후기의 최고 걸작으로 꼽힌다.

혜허, '관음보살도(양류보살도)', 144x62.6cm, 고려 1300년대 초. 일본 센소지 소장

혜허, '관음보살도(양류보살도)', 144x62.6cm, 고려 1300년대 초. 일본 센소지 소장


김우 외 고려 궁정화가들, '수월관음도', 419.5x252.2cm, 1310. 일본 가가미신사 소장

김우 외 고려 궁정화가들, '수월관음도', 419.5x252.2cm, 1310. 일본 가가미신사 소장


김우 외 고려 궁정화가들, '수월관음도' 일부, 1310. 일본 가가미신사 소장

김우 외 고려 궁정화가들, '수월관음도' 일부, 1310. 일본 가가미신사 소장


대한민국을 닮은 미시세계와 거시세계의 혼돈과 질서

서구방이 그린 ‘수월관음도’의 전체적인 조형성도 놀랍지만, 돋보기를 들고 부분을 들여다보거나 비율을 축소해 보면 그 안에 경이로운 또 하나의 우주가 있다. 르네상스 시기 성모 마리아 그림도 같은 종교화이지만 그 그림들은 아무리 확대해 살펴본들 작은 부분은 ‘전체의 부분’에 그친다. 그러나 ‘수월관음도’는 그 어떤 부분을 정밀하게 잘라 확대해 봐도 그 자체로 하나의 추상화가 된다.

고려 불화를 양자역학과 카오스 이론에 빗대 사유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부분이 모여 전체가 되고, 각 부분은 그 자체로 또 다른 전체가 된다. 고려 불화가 탁월한 이유다. 소박함이 아닌 화려함, 정체가 아닌 역동성, 폐쇄성이 아닌 개방성으로 설명되는 고려 예술은 혼란한 국내외 정세 속에서 꽃을 피웠다. 순간, 떠오르는 것이 있지 않은가. ‘K컬처’와 어딘가 닮아 있다. 국내 정치는 여전히 혼란하고 국제정세가 더욱 불안한 지금, 우리가 고려 예술을 좀 더 깊게 살펴봐야 할 이유다.

서구방, '수월관음도' 166.5x101.5cm, 1323. 일본 센오쿠 하쿠코칸 소장

서구방, '수월관음도' 166.5x101.5cm, 1323. 일본 센오쿠 하쿠코칸 소장


서구방, '수월관음도' 일부.,1323. 일본 센오쿠 하쿠코칸 소장

서구방, '수월관음도' 일부.,1323. 일본 센오쿠 하쿠코칸 소장


미술교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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