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반복된 게임 '사상검증'… 남성 매출만 보고 논란 방치하면 되레 독

입력
2023.12.09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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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게손가락 논란의 원인과 해법]
2030 남성이 매출에 큰 기여하는 업계 특성
게임 회사들이 '반페미' 요구에 민감한 반응
전문가 "대형 게임사들의 책임 강화가 필요"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온라인 집게 손가락 억지 논란, 더이상 용납할 수 없다'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뉴시스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온라인 집게 손가락 억지 논란, 더이상 용납할 수 없다'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뉴시스


"남자가 그렸으면 뭐 어쩌라고? 남페미(남성 페미니스트)도 역겹기는 마찬가지다."

남성 혐오(남혐)적 표현으로 받아들여지는 '집게손가락'. 인기 게임 '메이플스토리' 홍보영상에 등장한 집게손가락 장면의 원작자가 40대 남성이라는 사실이 알려진 뒤에도 게임업계 평지풍파는 가라앉을 줄 모른다.

'남혐하는 페미가 집게손가락을 그렸다'는 잘못된 정보가 삽시간에 퍼진 이번 사태는, 사실 과거 게임업계에서 반복된 각종 '페미 논란'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왜 이런 일이 유독 게임업계에서 반복되는 것일까. 논란을 타개할 대안은 없는 것일까.

사태의 근원적·구조적 배경과 그 심각성을 정리하기 위해 시민사회단체들이 나섰다. 게임 업계의 성차별 요소를 점검하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불필요한 사회적 낭비를 막는 게 목표다. 정부도 게임 업계 종사자들이 경험한 '사상검증' 피해 실태를 파악하는 조사에 착수했다.

8일 한국여성민우회 등이 참여한 국회 토론회에서 이민주 페미니스트연구 웹진 Fwd 연구자는 "2016년 넥슨이 배급한 게임의 캐릭터 성우가 페미니스트라는 이유로 교체된 사건을 발단으로 '페미 색출'이 시작됐다”면서 "페미를 몰아내자는 주장이 기업에 의해 수용되면서 '반페미' 소비자의 효능감이 증대된 것"이라고 그 시작을 분석했다.

넥슨의 게임 메이플스토리 홍보 영상에 등장한 집게 손가락 모양.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넥슨의 게임 메이플스토리 홍보 영상에 등장한 집게 손가락 모양.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여성 게임업계 종사자를 겨냥한 억지 사상검증은 역으로 남성의 피해로 이어진다는 분석도 나왔다. 관련 직원들이 밤샘 수정에 시달리게 되고, 남성 창작자 역시 스스로를 검열할 것이란 지적이다.

'사상검증→색출→또 다른 검증'이라는 악순환을 끊기 위해선 게임 회사들의 책임 강화가 필요하다고 봤다. 특히 이번 논란에서 정확한 사실관계가 파악되기 전 영상을 비공개한 넥슨의 대처가 지탄을 받았다. 김민성 한국게임소비자협회 대표는 "여성 유저들을 이탈시키고 이들이 과소평가되는 결과로 이어졌다"면서 "관련 법 개정, 사업자 교육 등이 필수적"이라고 짚었다.

정부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 우선 이달 말까지 서울 소재 게임업체 10곳을 점검한다. 이용자들의 폭력적 언행으로부터 근로자를 보호하는 조치가 충분히 갖춰져 있는지 확인하겠다는 취지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콘텐츠진흥원은 '게임 이용자 실태조사'에서 '성인지 감수성 인식' 문항을 내년에 다시 포함하기로 했다.

그래픽=김문중 기자

그래픽=김문중 기자


관건은 젊은 남성 소비자가 매출의 대부분에 기여하는 게임 업계에서 이런 '자성 요구'를 얼마나 받아들이느냐다. 과거 자료이긴 하지만 모바일인덱스가 2016년 구글플레이 게임 카테고리를 분석한 보고서를 보면, 남성의 매출 기여도는 92%에 이른다. 한국게임학회장인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시장 구조상 남성 목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이라면서 "업체 입장에선 이슈에 휘말리는 것 자체를 피하려 한다"고 말했다.

다만 업계 상황이 이렇다고 문제를 방치하면 결국 게임업계의 외연 확장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콘텐츠진흥원의 2023 게임 이용자 실태조사를 보면, 10대 여성의 게임 이용률은 72.3%로 10대 남성(90.5%)에 근접하는 수준이다. 이렇게 저변이 넓어지는 상황에서 성별 혐오 논란을 매번 방치하면, 여성 이용자들의 신규 진입이 지연될 수 있다는 얘기다. 위정현 교수는 "실생활의 젠더 갈등이 게임에 투영되면서 점점 과격해지고 있다"면서도 "자유로운 창작활동과 노동자 보호를 위해선 어렵지만 반드시 고민해야 할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최다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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