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성학대해도 처벌규정 없어"… 법적장치 마련 시급

입력
2023.12.15 09:00
수정
2023.12.15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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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보호법상 성학대 처벌 규정 없어
독일 미국 등 해외에선 이미 입법 활발


2019년 경기 이천시에서 벌어진 성학대 사건 당시(왼쪽)와 피해를 입은 강아지. 동물학대방지연합 인스타그램 캡처

2019년 경기 이천시에서 벌어진 성학대 사건 당시(왼쪽)와 피해를 입은 강아지. 동물학대방지연합 인스타그램 캡처

#1. 2019년 경기 이천시에서 수족관에 묶여 있던 생후 3개월 강아지에게 성적 학대를 저지른 남성은 범행 한 달 전 외국인 피해자를 강제추행한 것으로도 확인돼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 등을 선고받았다.

#2. 2015년 자신을 따라오는 를 주거지로 유인해 성적 학대를 저질렀던 남성. 뇌병변 2급 장애인을 강제추행한 사실도 확인된 이 남성에게 내려진 처벌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었다.

동물 성학대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지만 국내에는 이를 금지하는 법적 장치가 없다는 점이 문제로 제기됐다. 현행 동물보호법에는 해외와 달리 동물 성학대를 동물학대의 유형으로 규정하거나 동물을 성적 대상으로 이용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별도의 조항이 없다. 그렇다 보니 기존 판례를 보면 동물보호법상 동물학대 조항 중 물리적∙화학적 방법을 사용해 상해를 입히는 행위, 정당한 사유 없이 신체적 고통을 주거나 상해를 입히는 행위 등을 적용해 처벌이 이뤄졌다.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는 14일 서울 중구에서 '동물 성(性)학대 외국 입법례와 정책 과제' 보고서 발표 기자간담회를 열고 "동물보호법에 동물을 성적으로 이용하는 행위, 즉 동물 대상 성범죄 자체를 금지하는 조항을 마련해 동물의 피해를 예방하고 사회적 경각심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동물 성학대, 사람 대상 범죄로 이어질 수 있어

2019년 경기 이천시에서 벌어진 동물 성학대자에 대한 엄벌과 재발 방치 대책을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 청원에 20만 명 이상이 참여했다. 국민청원 홈페이지 캡처

2019년 경기 이천시에서 벌어진 동물 성학대자에 대한 엄벌과 재발 방치 대책을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 청원에 20만 명 이상이 참여했다. 국민청원 홈페이지 캡처

동물 성학대(animal sex abuse)는 과거에 '수간'(beastiality)으로 불렸다. 하지만 이 단어가 동물을 정서적 애착 없이 성적 대상으로만 이용하는 행위로 정의가 좁혀지면서, 최근에는 보다 포괄적인 범위의 동물 성학대라는 표현을 많이 쓴다. 동물 성학대는 동물과 사람 사이 모든 형태의 성적 접촉을 뜻한다.

앞서 언급한 사건들은 공공장소에서 발생했거나 학대당한 동물이 타인의 소유였기 때문에 적발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어웨어 측의 설명이다. 사람이 없는 장소에서, 자신이 기르는 동물을 학대 대상으로 삼는 경우는 발견하기 어려워서다. 처벌 수위 역시 동물보호법 위반에 국한된 게 아니라 다른 사건과 병합해 정해진 점도 지적됐다.

동물 성학대는 사람, 특히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한 성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 앞서 언급한 사건 이외에도 2018년 경북 봉화군의 동물 성학대자 역시 여성을 성추행한 혐의를 더해 징역 10개월과 벌금 30만 원, 40시간의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 처분을 받았다.

이런 경향성은 해외 연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미국에서 1973~2015년 동물 성학대와 관련해 범인이 검거된 456건을 분석한 결과, 52.9%는 인간 대상 성폭력, 동물학대, 대인 폭력 등의 전과를 갖고 있었고, 33.2%는 아동 및 성인을 대상으로 성범죄를 한 이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2년 미국에서 청소년 범죄자 381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도 동물과의 성관계 경험이 대인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을 시사했다. 응답자의 6%가 동물을 대상으로 성행위를 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는데, 이 중 95%는 사람에 대한 성범죄를 저지른 이력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동물 성학대 입증 어려워... 영상 유포 사각지대도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게티이미지뱅크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게티이미지뱅크

보고서는 동물을 사용한 성행위에 여러 유형이 존재하며 동물에게 신체적 손상이나 물리적 상해를 입히지 않고도 가능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동물이 신체적 상해를 입지 않더라도 정신적 고통을 경험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또한 학대 행위가 발생한 시점에 즉각적인 수의학적 검진 없이는 성행위와 동물이 입은 상해 사이의 인과관계를 입증하기가 어려울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동물 성학대에 대한 규정이 전무하다 보니 사건이 발생하더라도 목격자의 신고와 사법당국의 조사가 원활히 이뤄지기가 쉽지 않다.

보고서는 동물 대상 성행위 촬영물 유포에 대한 관리 사각지대의 문제도 언급했다. 동물보호법 10조 5항은 동물학대 장면을 촬영한 사진 또는 영상물을 인터넷에 게재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지만, 물리적 학대를 수반하지 않거나 영상에 담긴 장면만으로 동물의 신체적 고통 발생 여부를 확인하기 어려운 경우 처벌 대상에 포함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독일, 미국 등 해외에선 이미 금지 입법 활발

동물권행동단체 카라는 2019년 9월 어린 고양이 얼굴에 화장하고 자신의 속옷 안에 넣는 등 고양이를 학대한 유튜버를 경찰에 고발했다. 카라 제공

동물권행동단체 카라는 2019년 9월 어린 고양이 얼굴에 화장하고 자신의 속옷 안에 넣는 등 고양이를 학대한 유튜버를 경찰에 고발했다. 카라 제공

해외에서는 동물 성학대를 금지하는 입법이 최근까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독일은 2012년 동물복지법 개정을 통해 동물 성학대를 금지하고 위반 시 최대 2만5,000유로(약 3,500만 원)의 벌금에 처하는 조항을 신설했다. 미국연방수사국(FBI)은 2016년부터 동물학대 범죄를 중대범죄로 보고 방치, 고문, 조직된 학대와 함께 분류해 국가사건보고시스템으로 관리한다. 미국 49개 주는 동물 대상 성범죄를 규제하는 법령을 마련했다. 스위스, 영국, 캐나다, 호주 등에서도 동물 성학대를 범죄로 규정해 처벌하고 있다.

어웨어는 ①동물 대상 성범죄 자체를 금지하는 조항 마련 ②상해 발생 여부를 불문하고 동물을 대상으로 한 성행위를 사진, 영상물 등으로 촬영하거나 유포하는 행위 금지 ③동물 성학대자에 대한 치료 프로그램 이수 의무화 ④동물 몰수 및 동물사육금지명령제도 도입 ⑤고통, 공포,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행위를 동물학대 범위에 포함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이형주 어웨어 대표는 "반려동물을 기르는 인구가 급증한 반면 동물을 기르는 사람의 자질을 확인할 수 있는 제도는 마련되지 않았다"며 "그만큼 소유자에 의한 학대에 무방비로 노출될 위험이 있는 동물도 늘었다고 봐야 하는 만큼 동물 성학대를 금지하기 위한 법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고은경 동물복지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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