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비 속 개구리’ 탈출 힘든 이유

입력
2023.12.18 17: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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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저성장으로 ‘끓는 냄비 속 개구리’
갈등 해결하고 혁신 이끌 정치 중요한데
양당제 구도 속 정치는 반대 증오 증폭만

게티이미지뱅크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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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2022년 기간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연간 6.4%였는데, 생산성이 지금보다 높아지지 않으면 2020년대 2.1%, 30년대 0.9%, 40년대 -0.1%로 떨어진다.”(한국은행 ‘한국경제 80년(1970-2050) 및 미래 성장전략’)

“서서히 가열되는 냄비 속 개구리 처지인 한국경제는 이제 냄비 온도가 내려가길 기다리지 말고 냄비 밖으로 탈출하는 과감한 시도가 필요하다.”(맥킨지 ‘한국의 다음 상승곡선: 2040년을 향한 새 성장 모델’)

최근 근본적 혁신 없이는 한국 경제에 미래가 없다는 경고를 담은 보고서 2개가 잇따라 나왔다. 두 보고서는 많은 사람이 경제 상황에 대해 느끼는 불안감이 틀리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실증적 근거들을 제시하고, 그 구체적 해결책을 담고 있다. 맥킨지는 10년 전 보고서에서 한국 경제 위기 요인으로 지적했던 중소기업과 서비스업의 낮은 생산성, 중산층 재무 위기, 노동인구 감소 등이 계속 이어지는 가운데 국가 기둥 산업의 글로벌 경쟁 심화 및 지정학적 환경 악화까지 더해져 위기가 더 심화했다고 지적한다. 한은은 1970년대 이후 한국 경제의 시기별 성장을 노동과 자본 그리고 총요소생산성(TFP)의 상대적 기여도로 구분해 측정했다. TFP란 노동과 자본 투입을 합한 것보다 더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요소, 즉 눈에 보이지 않는 효율성을 뜻한다. 한국은 1980년대 연간 9.5% 성장으로 정점을 찍은 후 10년마다 계속 성장률이 낮아지고 있다. 그 이유를 살펴보니, 1990년대는 노동투입 둔화, 2000년대는 자본투자 부진, 2010년대 이후는 TFP 정체가 주된 요인이었다. 2020년대 들어 TFP 정체는 더 심각해지고 있다.

그렇다면 ‘뜨거운 냄비’에서 어떻게 탈출할 것인가. 두 보고서 모두 같은 방법을 조언한다. 한계에 부닥친 주력 산업 경쟁력 강화와 신성장동력 발굴, 그리고 생산성이 낮은 분야를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변환하는 것이다. 그중 가장 큰 문제가 서비스업이다. 전체 노동의 70%를 고용하면서, GDP 비중은 60%에 그치는 서비스업의 생산성을 높이지 않고는 경제가 냄비 밖으로 나갈 수 없다.

서비스업 혁신의 가장 큰 장애물은 낡은 규제다. 그런데 규제 개혁을 위한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이 12년째 국회에 발목이 잡혀 있다. 의료 교육 보건 등에 요구되는 공공성 훼손 우려와 골목상권이나 중소기업적합업종 같은 기득권 보호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비슷한 제약 조건 속에서 공공성을 지키면서도 정보화 기술을 활용해 서비스 질을 높이고, 기득권과 조화 속에 일자리도 늘리며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자리 잡은 해외 성공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한국의 서비스 산업 낙후는 정부와 국회가 복잡한 문제를 풀어나갈 해결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선거 승리를 위해서는 타협보다는 반대가 더 유리한 현재 정치 제도가 해결 노력조차 막는다. 결선투표 없는 대통령 직선제나 소선구제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2위 후보보다 한 표만 더 얻으면 ‘승자독식’을 누릴 수 있어, 다수를 설득하기보다 상대를 공격 비난하는 선거전략이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그런 선거가 반복되면서 해결해야 할 과제에 대한 이견의 폭은 넓어지고 타협 가능성도 줄어든다. 2011년 처음 국회에 상정된 서비스기본법이 지금까지 원점에서 맴도는 이유다.

21대 국회 4년 내내 타협을 통한 합의 모색보다는 상대 당 정책을 반대하고 방해해 온 양대 정당이 내년 봄 총선에서 양당 구도를 더욱 공고하게 만드는 병립형 비례대표제 복귀에는 의견이 일치하는 모양이다. 현재 양당 구도가 길어질수록, 뜨거운 냄비 속 개구리 처지인 한국 경제는 위기 탈출이 점점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정영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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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오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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