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동원 2차 사건'도 피해자 승소... 2018년 이전에 소송 못 할 객관적 사유 인정

입력
2023.12.21 17:30
수정
2023.12.21 20:56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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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미쓰비시 판결 의미와 파장]
위자료 1인당 1억~1억5000만 확정
일본 정부 반발... '재판 지연' 비판도

올해 3월 서울 용산역광장의 강제징용 노동자상 위로 빌딩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한국일보 자료 사진

올해 3월 서울 용산역광장의 강제징용 노동자상 위로 빌딩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한국일보 자료 사진

일제강점기인 태평양전쟁 기간 전범기업 미쓰비시중공업과 일본제철(옛 신일철주금)이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준 정신적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소송이 제기된 지 거의 10년 만에 나온 확정 판결이다. 이번에 대법원은 '2018년 전원합의체 판결 이전에는 피해자들이 손해배상을 청구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점을 처음으로 인정했다.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강제징용 피해자 고 양영수 할머니 등이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20일 확정했다.

양 할머니 등은 2014년 2월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1인당 1억5,000만 원 상당의 위자료(정신적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미쓰비시중공업이 일제강점기 충분한 임금을 주겠다며 근로정신대에 지원하도록 했지만, 실제로는 자유를 박탈하고 강제노동으로 혹사시켰다"고 주장했다. 근로정신대는 일본이 1940년대 초 태평양 전쟁 노동력 부족을 충당하기 위해 한국 등에서 미성년 여성들을 강제노역에 동원한 조직이다.

미쓰비시 측은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이 사라졌다고 항변했다. 미쓰비시 측은 "일본 법에 따르면 양 할머니 등의 손해배상 청구권은 강제동원 시점으로부터 20년 이상이 지나 소멸시효가 지났다"며 "(세월이 흐르는 동안) 원고들의 손해배상 청구를 가로막는 장애 사유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소멸시효는 손해배상 청구권을 무제한 보장할 경우 법적 안정성이 훼손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마련된 장치다.

하급심은 "손해배상 청구권이 사라지지 않았다"며 피해자들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2018년 10월 다른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제철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확정한 게 핵심 근거였다. 항소심은 "2018년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오기 전에는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의 적용 대상에 강제징용 피해자의 손해배상 청구권이 포함되는지에 상당한 논란이 있었다"며 "이를 고려하면 원고들이 손해배상을 청구하기 어려운 객관적인 사유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강제노동 종사 기간과 미쓰비시 측의 배상 책임 부인 등을 종합해, 위자료는 원고 1인당 1억~1억5,000만 원으로 정했다.

대법원도 원심 판단에 문제가 없다고 보고 판결을 확정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2018년 전원합의체 판결 이전에는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객관적인 장애사유가 있었다는 점을 최초로 명시한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같은 취지로 일본제철이 강제동원 피해를 당한 고 곽해경 할머니 등에게 1인당 1억 원을 배상하라는 원심 판결도 확정했다.

판결 직후 일본 정부는 수용 불가 입장을 밝혔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은 정례 기자회견에서 "(대법원 판결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 명백히 반하는 것"이라고 했다. 한국 외교부는 이번 판결에서 승소한 피해자들에게도 '제3자 변제안'을 적용하겠다고 했다. '제3자 변제'는 한국 정부가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을 통해 전범기업이 갚아야 할 배상금을 대신 법원에 공탁하는 것이다.

피해자 승소로 끝났지만 소송을 낸 당사자 대부분이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점에서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김정희 변호사)라는 비판도 나왔다.

박준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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