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부작위(不作爲)

입력
2023.12.20 17:2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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쇄신도, 변화도 없는 민주당
대표 리더십 스타일 탓 크다
낡은 정치 기대선 길이 없다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이재명(왼쪽)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일 오전 서울 중구 한 식당에서 김부겸 전 총리와의 오찬 회동 전 취재진과 만나 입장을 밝히고 있다. 김예원 인턴기자

이재명(왼쪽)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일 오전 서울 중구 한 식당에서 김부겸 전 총리와의 오찬 회동 전 취재진과 만나 입장을 밝히고 있다. 김예원 인턴기자


국민의힘의 혁신은 삐걱거리면서도 어쨌든 나아간다. 혁신은 당의 당면과제가 됐고, 변화에 대한 부담을 느끼는 게 중요하다. 구청장 선거 패배 하나에 윤석열 대통령은 정치적 수사일지언정 “국민은 늘 옳다”고 했다. 국민의힘은 혁신위를 띄웠다. 인요한 혁신위의 친윤 중진 불출마 요구에 결국엔 친윤의 장제원 의원과 김기현 당대표가 손을 들었다. 이제 비대위 시간이다. 혁신위만큼이나 말도 많고, 탈도 많게 될 일이지만 무엇보다 민심을 향해 나아가는 게 중요하다. 여론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건 언제나 옳다. 정치가 마땅히 짊어져야 할 의무다. 선거의 성패는 얼마나 민심을 받드느냐, 민심을 움직이느냐 싸움에서 가름된다.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으로 유력시되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20일 국회 법사위 출석길에 신해혁명 전후의 농촌을 다룬 중국의 문호 루쉰의 ‘고향’을 인용했다. 루쉰의 단편소설 제목은 아는 이가 별로 없어도 ‘걸어다니는 사람이 많으면 길이 된다’는 한 번쯤 귀에 스쳤을 그 구절로 정치경험 부족을 일축했다. 눈에 들어오는 대목은 그다음이다. “진짜 위기는 경험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과도하게 계산하고 몸을 사릴 때 오는 경우가 더 많았다”는 말이다. 대비를 통해 상대를 ‘디스’하는 특유의 공격어법으로 보건대 '혁신 무풍'의 더불어민주당과 이재명 대표를 거론했다고 봐도 무방할 일이다.

같은 날 당대표를 지낸 송영길 전 의원이 2021년 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 혐의로 구속됐지만 민주당은 탈당 인사라는 이유로 아무 입장이 없었다. 대표를 뽑는 민주당 전당대회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고, 연루된 민주당 의원만 20명이 넘는데 남 일 대하듯 할 일은 아니다. 거대의석의 공당으로서 도덕성 회복 시늉이라도 하는 게 책임 있는 자세가 아닌가. 위성정당 폐해를 낳은 비례대표제 개편을 놓고는 오히려 과거 병립형 회귀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이 대표는 지난달 말 “멋지게 지면 무슨 소용이냐”고 언급한 뒤다. 선거제 개편방안을 논의한 14일 의원총회에서 어느 의원은 불출마를 내걸고 선거제 개혁을 호소하고, 당 원로는 “멋있게 여러 번 졌기에 노무현이 있었다”고 비판해도 불통이다. 양당에 유리한 병립형 회귀를 시사한 이 대표가 갑론을박을 경청하고 자신의 논지를 펴도 모자랄 일인데 의원총회엔 참석도 하지 않았다. 결론을 내렸으니 반대의견을 듣지 않겠다는 뜻인가. 이낙연 전 대표는 "민주당이 죽어간다"며 신당을 얘기하고 있다. 이 전 대표는 민주당 적통이다. 그가 새 깃발을 들겠다는 건 큰 타격이다. 아무리 대선 후보 경선 때 얼굴을 붉힌 라이벌이라도 만나서 붙들어야 명분이라도 설 일이지만 이 대표는 단합만 공허하게 외치고 있다. 김민석 의원은 '사쿠라' 논쟁을 일으키면서 이 대표 방어에 나섰지만 당 내분만 가열시켰다. 당 쇄신을 겨냥한 김은경 혁신위안도 이재명 사당화 논란을 키운 권리당원 입지강화만 이뤄진 채 이 대표 사법리스크에 형해화한 참이다.

민주당은 원래 시끄러운 정당이다. 그 소란을 통해 의견이 통합돼 왔다. 그 전통은 소멸되고 강성지지층의 목소리와 친명 기득권만 강화되고 있으니 다양성이 사라지고 혁신 무풍과 사당화 비판이 나오는 것이다. 길이 나기 위해선 누군가 먼저 걸어가야 한다. 사법리스크 때문이든 아니든, 뒷짐 진 대표 스타일은 우리 정치나 사회가 원하는 지도자상이라 할 수 없다. 루쉰은 "희망은 본래 있다고 할 수도 없고, 없다고 할 수도 없는 것"이라며 '길' 같은 것이라고 했다. 낡은 정치에 기대서는 사람들이 같은 희망을 꿈꿀 일도, 그 길에 같이 다닐 일도 없을 것이다.


정진황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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