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1년 같은데" 또 미뤄진 이태원특별법... 허탈한 유족들

입력
2023.12.28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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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본회의 상정 무산... 결국 해 넘겨
정쟁에 유족 50명 쓸쓸히 발걸음 돌려

28일 오전 서울광장 분향소 앞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특별법 제정 다짐 기자회견에서 유족들이 숨진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를 낭독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뉴스1

28일 오전 서울광장 분향소 앞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특별법 제정 다짐 기자회견에서 유족들이 숨진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를 낭독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뉴스1

'이태원 참사 특별법'이 또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연내 통과를 간절히 바랐던 유족들은 여야 갈등에 특별법 통과가 무산되면서 허탈감과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여야는 28일 열린 올해 마지막 임시 본회의에 이태원특별법을 상정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국민의힘은 '피해보상'에, 더불어민주당은 '진상규명'에 중점을 둔 법안을 각각 상정해 그동안 줄다리기를 해왔는데, 결국 절충점을 찾지 못하고 해를 넘기게 된 것이다. 양측은 다음 본회의가 열리는 내달 9일까지 논의를 계속하겠다는 입장이다. 합의가 불발되면 과반 의석을 점유한 민주당 단독으로 법안을 처리할 가능성이 있다.

민원실에서 방청석 입장을 기다리던 참사 유족 50여 명은 상정이 연기됐다는 소식에 격한 실망감을 드러냈다. 보라색 점퍼에 목도리까지 맞춰 입고 나온 이들은 눈을 질끈 감거나 얼굴을 감싸는 등 곳곳에서 한숨과 탄식이 터져 나왔다.

박주민 민주당 의원이 직접 유족들을 만나 자초지종을 설명했지만, 참사 발생 1년 2개월이 지났는데 "다시 열흘을 기다려달라"는 말로는 이들을 설득할 수 없었다. 유형우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 부위원장은 "하루가 1년 같고, 1년이 100년 같은데 다시 기다려야 한다니 너무 속상하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유족은 "(특별법이) 통과될 거란 희망을 품고 청주에서 올라왔는데 허탈하다"면서 "야당이 단단히 약속했으니 기다리며 버텨볼 것"이라고 말했다.

28일은 유족들에게 최후의 '디데이'였다. 20일 본회의 통과를 바라며 18일부터 눈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오체투지를 감행했지만, 여당의 반대로 일정이 연기된 이날마저 상정이 무산된 것이다. 48시간 비상행동에 돌입해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과 이어말하기 행사를 하는 등 갖은 압박 전략도 소용없었다.

참사 책임자들이 줄줄이 보석으로 풀려나는 상황에서 유족들이 기댈 건 특별법밖에 없다. 박희영 용산구청장,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 등은 구속기소됐지만 석방 상태로 재판을 받고 있다. 참사 대응 최고책임자인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의 기소 여부도 검찰이 올해 안에 결론을 낼 가능성은 낮다. 이정민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국회가) 원망스러운 건 사실"이라며 "추스르며 다독일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별법 통과는 여당이 김진표 국회의장의 중재안을 어디까지 받아들이느냐에 달려 있다. 김 의장은 21일 여야 합의 처리 원칙을 강조하며, 특별법으로 발족되는 특별조사위원회의 특별검사(특검) 요구 권한을 포기하는 내용의 중재안을 제시했다. 민주당은 중재안 수용 의사를 밝혔지만, 국민의힘은 여전히 특조위 구성 자체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유족과 이태원참사 시민대책위원회는 공식 입장문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난 8개월 동안 특별법 논의 과정에서 전혀 협의에 나서지 않았다"며 "남은 시간이 유족과 시민들이 허락한 마지막 기회임을 명심하고 진정성 있는 태도로 협의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승엽 기자
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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