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모하비 사막 속 구덩이에 빠지고 모래 바람 덮치면 차가 더 반가워 하죠"

입력
2024.01.16 04:30
수정
2024.01.16 14:32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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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모하비 현대차·기아 자동차 주행 성능장
서울시 서대문구 면적의 대형 주행 성능 시험장
극한 상황 마주하는 미국 도로 상황 테스트
무겁고, 열 많이 나는 전기차 테스트도 최적


11일(현지시간) 미국 현대차·기아의 캘리포니아 주행시험장 TCS 시험로(일명 '말발굽로')에서 테스트 드라이버가 제네시스 GV80 쿠페 차량을 타고 언덕 위에서 U자형으로 차량이 내려와 다시 급격하게 꺾인 경사로를 올라가는 코스를 테스트하고 있다. 현대차·기아 제공

11일(현지시간) 미국 현대차·기아의 캘리포니아 주행시험장 TCS 시험로(일명 '말발굽로')에서 테스트 드라이버가 제네시스 GV80 쿠페 차량을 타고 언덕 위에서 U자형으로 차량이 내려와 다시 급격하게 꺾인 경사로를 올라가는 코스를 테스트하고 있다. 현대차·기아 제공


어이쿠


픽업 트럭의 왼쪽 앞바퀴가 움푹 패인 깊이 20㎝ 모래 구덩이에 빠지자 몸이 앞으로 쏠리며 헉하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천천히 액셀러레이터를 밟자 자동차는 좌우·위 아래로 요동치듯 했지만 운전자에게까지 그 흔들림을 전달하지 않고도 힘있게 치고 나왔다.

11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모하비 사막 한가운데 해발 고도는 800m에 자리한 현대차·기아의 캘리포니아 주행시험장(모하비 주행시험장)을 찾았다. 2005년 완공된 이 시험장의 크기(1,770만㎡)는 서대문구 면적과 비슷하다. 원래 사막거북 30마리와 조슈아 나무가 살았는데 시험장을 지으면서 큰 비용을 들여 서식지를 따로 마련하는 등 정성을 들였다 한다.

해 마다 연구개발(R&D) 중인 자동차 300여 대가 이 곳을 거쳐간다. 특히 무덥고 건조한 사막이라 연중 평균 기온은 39도에 달하고 지면 온도는 최고 54도를 넘나든다. 한국에선 일부러 만들래야 만들기 힘든 '나쁜' 조건이 자연스레 펼쳐지는 셈. 그러나 현대차·기아는 이런 상황이 도리어 반갑다. 이 날도 위장막이 씌어진 신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전기차들이 보기 안쓰러울 정도로 고생하고 있었다. 특히 시험장 관계자들은 차량들이 측면에서 불어오는 시속 30㎞ 모래 바람에 얼마나 견디는지 꼼꼼히 살피고 있었다.


캘리포니아 주행시험장 개요

구분
정보
설명
개설
2005년 완공
미국 판매 모든 차량 대상 테스트와 연구·개발(R&D)
면적
약 1,770만㎡
여의도 면적의 2배, 서대문구와 비슷(1,760만㎡)
위치
Hyundai Motor Group California Proving Ground
로스앤젤레스 북쪽 방향 170㎞
주요시설
고속주회로, 장등판로, 오프로드·TCS시험로, 쏠림시험로 등
고속주행 안정성, 오르막 등판 성능, 주행성능 등 테스트

최악 조건 속 오프로드 테스트로 최고 성능 개발


11일(현지시간) 미국 현대차·기아의 캘리포니아 주행시험장 오프로드 시험로에서 2021년 출시돼 미국 전용으로 판매되는 픽업트럭 싼타크루즈를 운전해봤다. 사진은 이날 테스트 드라이버가 싼타크루즈를 몰고 오프로드 테스트를 진행하는 장면. 현대차·기아 제공

11일(현지시간) 미국 현대차·기아의 캘리포니아 주행시험장 오프로드 시험로에서 2021년 출시돼 미국 전용으로 판매되는 픽업트럭 싼타크루즈를 운전해봤다. 사진은 이날 테스트 드라이버가 싼타크루즈를 몰고 오프로드 테스트를 진행하는 장면. 현대차·기아 제공


이날 기자는 현대차가 2021년 미국 시장 전용으로 출시해 인기를 모은 픽업트럭 '싼타크루즈'를 타고 오프로드 4㎞를 직접 달려봤다. 그 도중에 바퀴가 헛도는 자갈 섞인 모래 바닥과 뿌연 모래 바람이 앞을 가리고 부러진 나뭇가지가 튀어 올랐다.

이경재 현대차 책임연구원은 "국내에서는 대부분 차량이 오프로드를 달릴 일이 거의 없고 주로 포장 도로를 이용하지만 미국에서는 얘기치 않게 오프로드를 마주치곤 한다"며 "미국에서 팔 차량이 오프로드에서도 성능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지는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날 가장 눈길을 끈 것은 제네시스 GV80 쿠페 차량을 타고 언덕 위에서 U자 모양으로 차량이 내려와 다시 갑자기 꺾인 경사로를 올라가는 코스('말발굽로') 테스트였다. 이를 구동력 제어 시스템(TCS·Traction Control System) 시험로라고도 하는데 약 1.2㎞의 길이에 다양한 경사의 모래길을 갖추고 오프로드 주행·탈출 성능을 따져보고 있었다.



무겁고 열 나는 전기차 테스트에도 사막환경은 제격

11일(현지시간) 미국 현대차·기아의 캘리포니아 주행시험장(모하비 주행시험장) 고속 주행시험장에서 테스트 드라이버가 전기차 아이오닉 5N을 고속으로 달리며 테스트하고 있다. 현대차·기아 제공

11일(현지시간) 미국 현대차·기아의 캘리포니아 주행시험장(모하비 주행시험장) 고속 주행시험장에서 테스트 드라이버가 전기차 아이오닉 5N을 고속으로 달리며 테스트하고 있다. 현대차·기아 제공


전기차는 기존과는 다른 테스트가 추가된다. 고밀도의 배터리를 실은 전기차는 내연기관차와 비교해 300㎏ 이상 무겁다. 이 때문에 전기차는 서스펜션과 타이어, 차체 등에 가해지는 하중을 잘 버틸 수 있는지가 중요한 평가 요소다. 게다가 고전압 전류가 흐르는 배터리와 분 당 1만 회 이상 회전하는 모터 등에서 발생하는 열을 어떻게 관리하는지도 관건이다. 특히 숨이 턱턱 막히는 여름에도 성능을 정상적으로 유지하는 지가 중요해 7,8월에는 지표면 온도가 54도까지 올라가는 사막 주행 시험장에서 전기차의 열관리·냉각 성능 테스트가 집중적으로 이뤄진다.

현대차 관계자는 "아이오닉 5N는 가혹한 주행 환경에서도 배터리 온도가 60도를 넘지 않게 조절하는 것이 큰 숙제였다"며 "이 곳에서 고속 충전과 주행을 수없이 반복한 끝에 최적의 답을 찾았다"고 소개했다.

현대차·기아 미국기술연구소 이승엽 부소장(상무)은 "모하비 주행 시험장은 북미에서 규모와 성능 면에서 두 번째 정도"라며 "로스앤젤레스(LA)에서 약 두 시간 정도면 올 수 있어 필요할 땐 언제든 시험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반면 미국 자동차 회사 '빅3'(제너럴모터스(GM), 포드, 스텔란티스)는 대부분 디트로이트 주변에 있기 때문에 (이런 사막 환경에서 테스트 하려면) 비행기로 차량을 싣고 와서 시험을 해야 한다"며 "이들과 비교해 차별화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에서 연구·개발(R&D)한 자동차로 글로벌 점유율↑

지난 11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모하비 주행시험장에서 매튜 알 시어(Matthew R. Seare) 모하비주행시험장 운영 파트장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현대차·기아 제공

지난 11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모하비 주행시험장에서 매튜 알 시어(Matthew R. Seare) 모하비주행시험장 운영 파트장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현대차·기아 제공


이러한 노력으로 미국 시장에서 현대차·기아는 고속 질주하고 있다. 2023년 두 회사의 미국 연간 판매량은 165만대를 돌파했다. 현대차·기아의 연간 미국 판매량이 150만대를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현대차·기아는 2020년대 들어 미국 신차 점유율도 10% 내외를 유지하고 있다. 글로벌에서도 현대차·기아는 지난 2022년 세계 판매 3위로 올라섰다. 2023년 역시 3위 자리를 지킬 것으로 보여 2년 연속 글로벌 3위 자동차 회사로 자리를 확고히 할 것으로 보인다.

매튜 알 시어(Matthew R. Seare) 모하비주행시험장 운영 파트장은 "제 주변에도 현대차·기아가 그간 이룬 발전에 놀랐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아졌다"면서 "과거 우리 현대차·기아는 자동차 산업의 패스트 팔로워라 불렸지만 지금은 더 이상 팔로워가 아닌 마켓 리더로서 자리매김한 것을 보게 된 것이 꿈만 같다"고 감격해 했다.



캘리포니아시티= 강희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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