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마약과의 전쟁' 이미 실패했다... 전염병처럼 치료해야"

입력
2024.01.21 07:00
수정
2024.01.22 16:14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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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 '마약과의 전쟁' 선포 1년]
'소망을 나누는 사람들' 신용원 목사 인터뷰
인천서 마약 치료·재활 공동체 23년간 운영
"투약 의심 이선균 공격·매장 방식은 실패"
"교정시설부터 병원·공동체까지 연계 필요"
"마약 피해자는 개인 아닌 가족, 사회, 국가"

국내 최초 마약 치료·재활 공동체 '소망을 나누는 사람들'의 신용원 대표가 17일 인천 남동구 '보다피플' 사무실에서 "국가는 마약이라는 전염병을 치료한다는 생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천=최주연 기자

국내 최초 마약 치료·재활 공동체 '소망을 나누는 사람들'의 신용원 대표가 17일 인천 남동구 '보다피플' 사무실에서 "국가는 마약이라는 전염병을 치료한다는 생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천=최주연 기자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1월 '마약과의 전쟁' 원년을 선포했다. 국내 마약류 사범은 1만8,395명(2022년 마약류 범죄백서), 마약류 투약 경험자는 100만 명으로 추산된다. 30대 이하 마약류 사범 비중도 59.8%로 저연령화가 심각하다. 1년을 맞은 정부의 '마약 소탕 작전'은 성공했을까.

국내 1호 마약 치료·재활 공동체인 '소망을 나누는 사람들(이하 소나사)' 대표인 신용원(59) 목사는 17일 한국일보와 만나 "범죄와의 전쟁은 강한 처벌로 막을 수 있을지 몰라도 마약은 같은 방식으로 막을 수 없다"며 "정부의 마약과의 전쟁은 이미 실패했다"고 진단했다. 고등학생 때부터 34세까지 17년간 마약에 중독됐던 신 대표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국가는 마약이라는 전염병을 치료한다는 생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 대표는 단약 후 교도소, 병원, 공동체 등에서 마약류 투약자들을 대상으로 재활교육에 힘써왔다. 2001년 소나사를 꾸려 투약자의 치료와 직업 재활 등을 돕고 있다. 20년간 그의 도움을 받은 투약자는 수백 명이다. 이 중 절반이 재활에 성공해 자립했다. 현재 인천 소재 소나사 숙소에서 치료를 받는 이는 10명. 매주 투약자와 그의 가족 등 60여 명이 한자리에 모여 멘토링에 참여한다. 그는 체계적인 마약 치료를 위해 지난해 8월 각 분야 전문가와 사단법인 '보다피플'을 꾸렸다. 법무부는 '보다피플'을 마약 관련 1호 민간갱생보호법인으로 지정했다.

17일 인천 남동구 보다피플 사무실에 '소망을 나누는 사람들'에 모인 사람들 사진이 붙어있다. 인천=최주연 기자

17일 인천 남동구 보다피플 사무실에 '소망을 나누는 사람들'에 모인 사람들 사진이 붙어있다. 인천=최주연 기자

-정부가 '마약과의 전쟁'에서 실패한 이유는.

"조폭, 범죄와의 전쟁은 처벌을 강화하고 물리적으로 막을 수 있을지 몰라도 마약은 같은 방식의 통제를 통해 막을 수 있는 범죄가 아니다. 경찰의 마약 수사를 받다가 숨진 고(故) 이선균 배우처럼 마약류 투약 의심자를 공격하고 사회에서 매장시키는 방식으로 접근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어떻게 접근해야 하나.

"외국은 마약을 '전염병'으로 보고 '우리가 누구나 노출될 수 있으며, 노출되면 힘을 합쳐 치료해야만 바이러스가 퍼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치료가 근본적인 예방이라고 본다. 마약은 분명 근절돼야 하지만, 근절해야 할 범죄로 보면 마약에 노출된 이들이 숨을 수밖에 없어 오히려 더 퍼지게 된다. 마약 중독의 피해자는 개인이 아니라 가족, 사회, 그리고 국가로 보고 치료해야 할 대상으로 접근해야 한다."

-정부도 투약자에 대한 치료와 재활을 하고 있다.

"그렇다. 전국에 중독통합관리센터 50여 곳이 있고, 관련 시설도 존재한다. 하지만 정부의 정책 기조가 투약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데 맞춰져 있고, 여당은 마약수사청 신설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을 것처럼 이야기한다. 이런 분위기에서 치료와 재활을 병행하겠다고 내세우는 건 논리적 모순이다.

외국처럼 투약자를 환자로 봐야 한다. 회복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단순히 예산을 쏟아부어 새로운 중독재활센터를 만들기보다 각 지역 사회에 있는 기관들을 지원하는 쪽이 효율적이다. 마약 중독에 대한 이해 없이, 현장에 대한 고려 없이 새 기관만 만드는 게 능사가 아니다."

국내 최초 마약 치료·재활 공동체 '소망을 나누는 사람들'의 신용원(맨 오른쪽) 대표가 과거 백두산 기타리스트 출신인 공동체 구성원 임정수씨와 17일 담소를 나누고 있다. 인천=최주연 기자

국내 최초 마약 치료·재활 공동체 '소망을 나누는 사람들'의 신용원(맨 오른쪽) 대표가 과거 백두산 기타리스트 출신인 공동체 구성원 임정수씨와 17일 담소를 나누고 있다. 인천=최주연 기자

-투약자 회복·재활 성공이 어려운 이유는.

"회복의 끝은 재사회화다. 마약을 끊었다고 생각해도 경제적인 회복이 되지 않으면 재발(2019~2022년 마약류 사범 재범률 35%)하기 쉽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중독에서 회복된 사람에게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투약자들이 실형을 3번 정도 살고 나면 마약을 기호가 아닌 생계 수단의 문제로 접근할 수밖에 없다. 약을 팔거나, 알선을 하는 등 악순환이 이어진다. 만약 회복하려는 중독자 20명에게 일자리가 제공되면 4인 가족 기준으로 최소 80명이 중독이라는 고통에서 자유로워진다. 직업 자활이 중요하다."

-투약자 회복·재활이 성공하려면.

"공동체에 있다가 각자 지역으로 돌아가 가정을 꾸리고 사업을 운영하며 자립에 성공하는 회복자들도 많다. 회복자 가운데 제가 결혼식 주례를 본 부부만 해도 18쌍이다. 공동체에 있다가 5번이나 구속됐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회복자는 10년 넘게 안정적으로 살며, 매달 일정 금액을 헌금으로 보내 운영을 돕고 있다. 때로는 재발할 수도 있지만 다시 일어날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지지해주는 것이 공동체가 할 일이다. 여기서 생활하다가 구속돼도 면회를 통해 공동체와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인식시키려는 노력도 하고 있다."

국내 최초 마약 치료·재활 공동체 '소망을 나누는 사람들'의 신용원 대표가 17일 인천 남동구 '보다피플' 사무실에서 마약류 투약자의 치료와 회복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인천=최주연 기자

국내 최초 마약 치료·재활 공동체 '소망을 나누는 사람들'의 신용원 대표가 17일 인천 남동구 '보다피플' 사무실에서 마약류 투약자의 치료와 회복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인천=최주연 기자

-마약류 사범 연령층이 낮아지는 문제도 심각하다.

"과거에는 찾아오는 사람 대부분이 30대 이상 중장년층이었다. 20년 전에는 공급자를 모르면 마약을 할 수 없는 구조였지만 지금은 다르지 않나. 마약에 대한 접근이 쉬워지면서 공동체에도 10대와 20대 젊은층이 늘어났다. 어린 나이에 마약에 노출된 이들은 꿈을 잃어버리기 쉽다. 그러나 여전히 살아갈 날이 훨씬 많지 않나. 다행히 나이가 어려 가족의 지지 기반이 상대적으로 두텁다. 무언가 해낼 수 있다는 희망을 품을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체계적인 마약 치료 방법은 무엇인가.

"'보다피플'을 만든 이유도 연속성이 있는 일종의 '치료 벨트'를 구축하기 위해서다. 미국의 약물치료법원처럼 회복·치료적 사법 제도는 없지만, 수용기관에서 단약 의지가 있는 투약자를 선별하고, 이들을 병원 및 치료 공동체로 연결해 생활하는 체계를 마련하는 방식을 시도해야 한다. 예를 들어 '보다피플' 연계 병원(인천 참사랑병원)은 퇴원 후 환자들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한다. 의료적인 치료에 더해 투약자들이 사회인으로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다. 퇴원 후 치료 공동체인 소나사로 옮겨와 재활을 이어가고, 실제로 여기서 창업을 준비하는 이들이 있는 것처럼 스스로 회복 기회를 만들 수 있게 지속적인 연계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회복을 위해 노력하는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저도 중독자로 살 때는 중독이 저주의 병이자 천형(天刑)이라고 여겼다. 내 인생은 재앙을 만났다고 생각했지만, 회복되고 나니 인생이 새로운 기회이자 축복으로 느껴지더라. 치료 공동체 구성원들도 처절한 자기 절망과 절박함을 겪었다는 점을 잘 안다. 회복하면 오히려 일상에서 감사한 일들이 너무나 많아진다. 축복의 시간이다. 사회도 중독자가 아닌 회복자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

김소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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