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이태원 참사 447일 만에 서울경찰청장 기소... 유족 "만시지탄"

입력
2024.01.19 17:29
수정
2024.01.19 17:48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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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 알고도 경찰력 배치 안 한 혐의
유가족 "정권 눈치 보다가 결정 늦어"

서울서부지검이 이태원 참사와 관련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을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19일 불구속 기소했다. 지난해 9월 서울시청에서 열린 스토킹 피해자 원스톱 지원을 위한 업무협약식에서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서부지검이 이태원 참사와 관련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을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19일 불구속 기소했다. 지난해 9월 서울시청에서 열린 스토킹 피해자 원스톱 지원을 위한 업무협약식에서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검찰이 이태원 핼러윈 참사(2022년 10월 29일) 부실 대응의 책임을 물어, 당시 경찰의 인파 관리 최고 책임자였던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을 재판에 넘겼다. 우여곡절 끝에 수사심의위원회(검찰의 수사·기소 적정성을 심의하는 외부기구)까지 거치면서 참사 발생 447일 만에 이뤄진 기소다.

서울서부지검은 19일 김 청장을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김 청장을 수사해 지난해 1월 검찰로 불구속 송치했고, 이를 받은 검찰이 1년 만에 결론을 낸 것이다. 검찰은 김 청장이 위험을 미리 인지하고도 경찰력 배치 및 지휘 감독 등 필요한 조치를 다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외부 전문가들로 이뤄진 대검찰청 수사심의위원회의 15일 권고를 수용했다.

검찰이 기소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두고, 가장 쟁점이 됐던 것은 '김 청장이 당일 이태원 사고 위험을 예견했느냐'였다. 김 청장은 참사 전날과 당일 특별한 문제가 없다는 보고를 받았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그러나 김 청장이 참사 전 화상회의를 열고 "이태원, 홍대, 강남에서 핼러윈데이에 많은 인파 운집이 예상되므로 특별 점검과 필요한 대비를 하라"고 지시하는 등 사전에 인지했을 수 있다는 단서도 발견됐다.

당시 서울경찰청은 사고 전후로 적절한 대응을 하지 않은 의혹을 받는다. 당일 서울경찰청 경비과는 경비기동대 투입을 요청받았으나, 같은 날 집회에 동원하느라 예년과 달리 핼러윈 대비 경력을 배치하지 않았다. 김 청장은 경력 배치를 결정하고, 이를 지휘·감독할 권한이 있다.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검. 한국일보 자료사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검. 한국일보 자료사진

아울러 류미진 전 서울경찰청 112상황관리관과 당시 112상황3팀장(경정) 역시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함께 기소됐다. 사건 당일 계속 112신고가 접수됐음에도 적시에 위험에 대응하지 않았고, 당직 상황을 관리하는 담당자로서 사고를 신속히 상급자에게 보고하지 않은 혐의를 받는다.

검찰은 이날 이미 재판을 받고 있는 박성민 전 서울경찰청 공공안녕정보외사부장,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에 대해 다른 혐의까지 적용해 추가로 기소했다. 박 정보부장은 이미 용산경찰서 정보관들에게 이태원 핼러윈 관련 자료를 삭제 지시한 혐의(증거인멸교사·공용전자기록등손상교사)로 재판에 넘겨졌는데, 수사과정에서 관련 자료를 한 건 더 삭제토록 한 것이 드러났다. 이 전 서장은 작년 1월 국정조사에서 상황 인지 시각을 허위로 답한 혐의(국회증언감정법 위반)가 적용됐다.

이정민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이 15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서 김광호 서울경찰청장과 최성범 용산소방서장에 대한 기소를 촉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정다빈 기자

이정민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이 15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서 김광호 서울경찰청장과 최성범 용산소방서장에 대한 기소를 촉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정다빈 기자

이태원 유족들은 '만시지탄'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는 입장문을 내 "경찰은 물론 검찰까지 권력의 눈치를 보며 기소를 미루다가 수사심의위원회 결정 이후 비로소 기소를 한 것"이라며 "참사가 발생한 지 1년이 지나고 나서야, 검찰이 책임자들을 기소한 것은 매우 아쉬운 점"이라고 지적했다. 또 "검찰은 막중한 책임감을 갖고 재판에 임해, 159명의 희생자를 낸 참사의 책임자가 법망을 피해 책임을 회피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고 주문했다.

서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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