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자 구도 총선에는 '과반' 정당 없다?… 더 격해지는 수도권

입력
2024.02.20 10:00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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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0대 총선 자민련 50석·국민의당 38석 '약진'
제3당 후보 나오면 수도권 5%P 접전 지역 늘어

2001년 1월 29일 오후 김포공항에서 귀국한 김종필 자민련 명예총재가 환영 나온 당원들과 인사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2001년 1월 29일 오후 김포공항에서 귀국한 김종필 자민련 명예총재가 환영 나온 당원들과 인사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과거 총선에서 거대 양당이 의석을 나눠 가진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제3당이 약진할 경우 여야 구도는 혼돈에 빠졌다. 대체적으로 여당이 손해를 보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수도권에서 5%포인트 차이로 당락이 갈리는 접전 지역이 부쩍 늘어 경쟁이 더 격해졌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제3당이 20석을 넘겨 교섭단체를 구성한 경우는 네 차례다. △정치적 혼란기에 치러진 1988년 13대 총선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통일국민당을 창당한 1992년 14대 총선 △김종필 전 총리의 자유민주연합(자민련)이 부각된 1996년 15대 총선과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이 국민의당을 창당한 2016년 20대 총선이다. 이들 선거 모두 여당은 과반 의석 달성에 실패했다.

가장 두드러진 사례는 2016년 총선이다. 국민의당은 호남(23석)과 수도권(2석) 지역구에서 25석, 비례대표는 13석을 얻어 총 38석을 차지했다. 야권 분열로 인해 여당이던 새누리당이 180석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왔지만 결과는 122석에 그쳤다. 오히려 민주당(123석)에 제1당 자리를 넘겨줬다. 공천 파동을 비롯한 여당의 자중지란이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1996년 총선에서는 자민련이 50석을 얻는 기염을 토한 반면 여당 신한국당은 139석으로 과반에 못 미쳤다.

2016년 20대 총선 당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총선 다음 날인 4월 14일 국민의당 마포구 당사에서 선거상황판에 당선된 후보의 이름표를 붙이고 있다. 당시 국민의당은 제3당으로서 돌풍을 일으키며 38석을 얻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2016년 20대 총선 당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총선 다음 날인 4월 14일 국민의당 마포구 당사에서 선거상황판에 당선된 후보의 이름표를 붙이고 있다. 당시 국민의당은 제3당으로서 돌풍을 일으키며 38석을 얻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제3당이 수도권에 적극적으로 후보를 내면서 접전 지역은 크게 늘었다. 제3당 후보가 거대 양당 가운데 한쪽의 표만 잠식했다면 나타나기 어려운 현상이다. 전국 선거구의 절반에 해당하는 서울·경기·인천 지역구 가운데 1, 2위 득표율 차이가 5%포인트보다 적은 곳을 살펴봤더니 2020년 총선의 경우 18개에 그쳤다.

반면 3자 구도로 치러진 2016년 총선에서는 33개에 달했다. 문병호 국민의당 후보가 34.19%를 득표했던 인천 부평갑에선 1위 후보인 정유섭 새누리당 후보와의 차이가 26표에 불과했다. 국민의당 후보가 20% 가까운 득표로 3위에 오른 인천 연수갑에서는 1위 박찬대 민주당 후보가 2위 정승연 새누리당 후보에 비해 고작 214표 더 얻었다. 그보다 앞선 1996년 총선에서도 수도권 96개 지역구 가운데 34곳이 5%포인트 이하 박빙 지역이었다.

다만 이번 총선에서 이 같은 상황이 재연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과거 자민련과 국민의당은 각각 충청과 호남을 대표하는 상징성이 강했다. 그래서 지역 기반 외에 수도권 거주 충청·호남인들의 지지를 받았다. 또 개혁신당과 달리 총선 전에 이미 교섭단체를 구성할 정도로 당세가 강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19일 "수도권에 충청이나 호남 원적자들이 상당히 있어 해당 정당의 지지 기반을 갖췄다고 봐야 한다"며 "현재의 개혁신당과는 비교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도형 기자
박세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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