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고양이의 수염을 다 뜯어 놓은 어미 고양이의 사정

입력
2024.02.22 09:00

대신 물어봐 드립니다

Q. 안녕하세요, 3세 어미 고양이와 3개월 된 아기 고양이 모녀를 기르고 있습니다. 어미 고양이는 아기 냥이를 극진히 보살피며 둘 사이도 좋은데요. 최근 아기 고양이가 잘 때, 어미 고양이가 아깽이의 수염을 다 뜯어놓는 일이 생겼습니다.

알아보니 고양이의 수염은 균형과 공간 감각을 느끼는 역할이라, 너무 정신없이 돌아다니는 새끼 냥이의 수염을 어미가 끊어 얌전하게 만들어놓기도 한다는데 정말인가요? 아니면 도대체 어떤 이유 때문에 아깽이의 수염을 다 뜯어 놓은 건지 의문입니다. 집사인 저는 이대로 지켜봐도 될까요?

A. 안녕하세요. [24시 센트럴 동물메디컬센터] 원장이자 [24시간 고양이 육아대백과]의 저자인 김효진 수의사입니다. 이번 사연은 어미 고양이가 아기 고양이의 수염을 모두 끊어놓아서 걱정되신 보호자분이 보내주셨어요. 어미 고양이는 원래 자식 사랑이 극진하다고 하는데요. 과연 어떤 이유 때문에 어미 고양이가 이런 행동을 하는 걸까요?

왜 어미 고양이가 새끼의 수염을 뜯을까?

사실 이번 사연 속 고양이뿐만 아니라, 가끔 이런 행동을 하는 어미 고양이들이 관찰되곤 하는데요. 이에 대해서는 조금 오래되긴 했지만 관련한 연구 논문이 있습니다. (어미 고양이의 수염 다듬기, Whisker trimming by mother cats, S. Ehrenlechner) 이 논문에는 아기 고양이의 수염을 끊은 어미 고양이 다섯 마리에 대한 분석이 나와 있는데요. 재미있는 점은 이 고양이들 모두 처음으로 새끼를 기르게 된 초보 엄마였다고 합니다. 또 다섯 마리 중 두 마리의 어미 고양이는 수염뿐 아니라 새끼의 발톱을 물어뜯기도 했다네요.

논문에서도 고양이의 이런 행동이 정확히 어떤 이유 때문인지 알기 어려워합니다. 고양이 마음을 사람이 알기란 어려운 일이니까요. 하지만 여러 가지 유력한 추론이 가능합니다.

첫 번째는 서열(dominance)이나 지배 행동과 관련된 것입니다.

특히 어미가 새끼의 수염을 뜯는 행동은 쥐에 대한 연구에서 관찰된 바 있는데요. 높은 서열의 쥐가 낮은 서열의 쥐의 수염을 정리하는 것이 관찰되었다고 합니다. 만약 이런 유사한 특성이 어미 고양이에게도 적용된다면, 아기 고양이가 잘못된 행동을 하거나 지나치게 돌아다닐 때, 어미 고양이가 아기의 수염을 그루밍할 수 있을 겁니다. 특히 수염은 고양이가 탐색하는 데에 도움을 주기 때문에, 수염을 그루밍해두면 아기 고양이의 과도한 움직임을 줄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두 번째는 이유(젖떼기, weaning)와 관련성을 꼽을 수 있습니다.

앞서 고양이의 수염이 탐색 기능을 가진다고 했는데요. 특히 아기 고양이는 수염을 이용해서 눈 뜨기 전이나 야간에도 어미 고양이의 위치를 찾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2~3개월이 지나면 아기 고양이는 어미 고양이를 벗어나 젖을 끊고 스스로 독립해야만 하는데요. 아기 입장에선 이런 과정이 힘들고 계속 엄마를 찾게 마련입니다. 이럴 때 어미 고양이들은 매몰차게 아기 고양이를 피해서 다른 곳으로 가거나, 때로는 공격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합니다. 이런 행동들이 다 아기 고양이의 독립을 위한 것이죠. 따라서 이 시기에 어미가 아기 고양이의 수염을 끊어놓는다면, 젖떼기나 독립을 위한 어미 고양이의 행동이라는 분석도 가능합니다.

세 번째로는 과도한 그루밍 때문에 아기 고양이의 수염이 끊어지는 경우입니다.

어미 고양이는 아기 고양이를 살뜰히 보살피기 위해서 그루밍을 자주 해주는데요. 그루밍을 통해 아기 고양이를 깨끗하게 해 줄 뿐 아니라, 어미의 페로몬을 묻혀서 아기와 교감할 수 있습니다. 특히 페로몬은 얼굴 부분에서 주로 분비되기 때문에 얼굴 쪽을 그루밍 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이게 지나치면 성묘가 자신을 스스로 핥아서 탈모가 생기는 경우(오버 그루밍)와 비슷하게 수염이 모근 근처 뿌리 부분에서 끊어질 수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과도한 스트레스나 잘못된 습관으로 인해 수염을 물어뜯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사람들도 더러 손톱을 물어뜯는 분들이 있는데요. 이와 비슷하게 스트레스 상황에서 수염을 물어뜯는 행동을 보일 수 있고, 이런 행동이 잘못 정착되면 습관이 될 수 있습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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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수염의 역할

고양이에게 수염은 굉장히 중요한 감각기관입니다. 고양이의 수염 끝부분에는 신경이 위치하고 있어서 예민하게 감각을 느낄 수 있는데요. 장애물 인지나 공간 탐색 수준뿐 아니라, 공기의 압력이나 흐름도 느낄 수 있습니다. 특히 고양이는 육식동물의 시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냥을 위한 먼 물체는 잘 보지만, 아주 가까운 눈앞의 사물을 되려 잘 보지 못할 수 있어요. 이때 수염을 이용해서 정확한 위치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쥐를 사냥한 이후 숨통을 끊어놓기 위해 마지막으로 깨무는 위치는 눈이 아니라 수염을 통해 파악하는 겁니다. 이런 이유로 앞선 논문에서는 눈이 먼 고양이는 사냥할 수 있어도 수염이 없는 고양이는 사냥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실제로 촛불 같은 것에 그을려 한 번에 수염이 한 번에 몽땅 짧아진 고양이는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다가 착지 실패로 얼굴을 부딪치는 등의 모습도 종종 목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행인 점은 이렇게 수염이 짧아진 경우에도 며칠 지나면 짧아진 수염에 익숙해져서, 나름의 균형과 공간 감각을 되찾는다는 것입니다. 또 수염은 한 번 뽑히더라도 모낭이 심각하게 손상된 경우가 아니라면 다시 자라게 됩니다. 특히 지금처럼 수염이 뽑힌 것이 아니라 짧게 끊어진 경우라면 좀 더 빠르게 자랄 수 있습니다. 저도 초보 집사 시절에 바닥에 떨어진 고양이 수염을 주워 들고 안절부절 못했던 때가 있는데요. 고양이의 수염은 시간이 지나면 다시 멋지게 자라나기 때문에 너무 걱정하실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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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미 고양이가 다시 아기 고양이의 수염을 계속 끊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도 되실 텐데요. 앞선 논문에 따르면 어미 고양이의 행동은 대부분 이유기(젖을 떼는 시기)를 지나면 사라진다고 하니 그 역시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어미 고양이의 이러한 행동이 스트레스에서 유발된 것이라면 어미가 어떤 이유로 스트레스를 받는지 살펴보고, 해소하기 위해 도움을 줘야 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는 아기 고양이의 수염을 잘라놓은 어미 고양이의 사연을 함께 다루어 보았는데요. 고양이들의 행동은 참으로 알쏭달쏭합니다. 하지만 사연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이런 행동은 어미 고양이가 아기 고양이를 어엿하게 잘 키우려는 노력의 일환이 아닐까 생각되네요. 어미의 노력만큼이나 아기 고양이가 멋지게 성장하길 기대하면서 이번 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고양이 모녀와 행복한 가정 누리세요! 감사합니다.



24시 센트럴 동물메디컬센터 김효진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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