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년 된 세계 요트대회에 국내 최초 출전하는 송호준 작가 & 최재화 번개장터 대표

입력
2024.02.29 05:00
수정
2024.02.29 14:53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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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로 향한 관심을 바다로 돌렸어요."

혼자 인공위성을 만들어 우주에 쏘아 올려 화제가 됐던 송호준(46) 미디어아트 작가가 신생기업(스타트업) 번개장터와 손잡고 62년 역사를 가진 세계적 요트대회 '롤렉스컵 중국해 경기'에 국내 최초로 출전한다. 이 대회를 위해 전문 요트선수가 아닌 아마추어 8명이 팀을 꾸린 것도 국내 최초여서 영국 방송사 BBC월드가 찾아와 다큐멘터리를 찍을 정도로 해외에서도 화제가 됐다.

홍콩요트클럽이 1962년 처음 개최해 격년제로 열리는 이 대회는 유명 시계업체 롤렉스가 후원한다. 우승팀에는 1,700만 원 상당의 '롤렉스 요트마스터' 시계를 준다. 이번 대회는 다음 달 24일 홍콩에서 출발해 4월 1일 필리핀 수비크만 도착을 목표로 5박 6일간 열린다. 이 기간에 참가자들은 배에서 숙식하면서 오로지 바람의 힘으로만 항해하며 남지나해의 거친 파도와 싸워야 한다.

국내 최초로 세계적인 요트대회 롤렉스컵 중국해 경기에 송호준(왼쪽) 미디어아트 작가와 이를 후원하는 최재화 번개장터 대표가 서울 세종대로 한국일보사에서 인터뷰를 하며 참가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국내 최초로 세계적인 요트대회 롤렉스컵 중국해 경기에 송호준(왼쪽) 미디어아트 작가와 이를 후원하는 최재화 번개장터 대표가 서울 세종대로 한국일보사에서 인터뷰를 하며 참가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요트대회 출전은 결혼식 같다. 대회보다 준비과정이 더 힘들다는 뜻이다. 특히 아마추어들이 대회에 나가기 힘든 이유는 수억 원대 배를 직접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송 작가는 2020년부터 8개월 동안 자동차를 비롯해 캠핑도구, 작업용품 등 각종 물품을 인터넷 중고장터인 번개장터에 팔았다. "240여 종의 중고 물품을 4,000만 원에 팔았고 지인들에게 빌린 돈을 더해 1억2,000만 원짜리 중고 요트를 샀어요."

이렇게 구입한 배를 선장인 송 작가가 3개월 동안 시합용으로 개조했다. '랜덤호'로 명명한 배는 미국 카탈리나사에서 1998년 건조한 '카탈리나 400 마크1'이다. 길이 12.3m, 돛대 높이 18m로 아파트 6층만 하다. 이 배를 정박지인 경남 통영에서부터 홍콩까지 몰고 간다. "시속 10노트로 달려 홍콩까지 15일 걸리기 때문에 29일 미리 출항해요. 대회 끝나고 귀국까지 총 한 달 반에 이르는 여정이죠. 그 바람에 팀원 중 한 명은 직장도 그만뒀어요"

이 과정에서 번개장터가 든든한 후원자가 됐다. 지인 소개로 송 작가를 알게 된 최재화(39) 번개장터 대표는 중고거래 생태계를 알리고 싶어 후원을 자처했다. "사용하던 물건이 다른 사람에게 건너가 새로운 가치를 얻는 소비의 선순환이 중고거래의 의미죠. 이번 후원으로 지속가능한 소비라는 회사의 모토를 알리고 싶어요."

최 대표는 위치추적이 가능한 130만 원 상당의 구명조끼와 여러 벌의 돛 등 대회 참가에 필요한 제반 비용을 지원했다. 그래서 송 작가는 선체와 돛에 번개장터 표식을 붙이고 출전한다. 최 대표도 지난해 부산 여수 통영에서 2박 3일간 열린 남해안컵 요트대회에 송 작가와 함께 선수로 출전해 요트를 체험했다.

송호준 작가와 팀원들이 다음 달 24일 홍콩에서 개막하는 '롤렉스컵 중국해 경기'에 출전하기 위해 '랜덤호' 요트(오른쪽)로 시험 항해를 하고 있다. 김울프 작가 제공

송호준 작가와 팀원들이 다음 달 24일 홍콩에서 개막하는 '롤렉스컵 중국해 경기'에 출전하기 위해 '랜덤호' 요트(오른쪽)로 시험 항해를 하고 있다. 김울프 작가 제공

고려대 전기전자전파공학부를 졸업한 송 작가는 카이스트 대학원에서 디지털미디어랩을 수료하고 미디어 아트 작가가 됐다. 그는 2013년 개인도 위성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통신용 소형 인공위성을 만들어 우주로 보냈다. 해당 위성은 2014년 궤도에서 소멸됐다.

그는 인공위성처럼 모든 작품에 항상 의미를 담으려고 노력한다. 2020년 개념을 제시한 항문 컴퓨터도 마찬가지다. 항문에 장착하면 생체신호를 이용해 질문을 전송하는 컴퓨터라는 개념의 작품은 기존 제도권 교육의 문제를 지적하기 위해 만들었다. "진도를 나아가려고 질문하는 학생을 야단치는 학교 얘기를 꼬집고 싶었죠."

그런데 왜 갑자기 요트에 관심을 가졌을까. 대답으로 그는 인생 키워드를 꺼냈다. "MBC TV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했다가 요트를 타보고 망망대해의 장엄한 매력에 빠졌어요. 저는 항상 도전과 탐험을 갈망해요. 도전과 탐험은 미지의 세계를 알려는 노력이죠. 그런 차원에서 도전적 질문을 던진 작품 활동을 바다로 옮긴 것이 요트죠. 요트를 타는 것도 작품 활동이에요."

당연히 송 작가와 최 대표의 목표는 우승이다. "큰 기업과 부호들의 후원을 받는 해외 프로팀들을 꺾고 우승하는 것은 힘들어요. 그렇지만 어떤 마음가짐으로 나가느냐가 중요해요. 이번 요트대회를 통해 사람들이 자전가 타기나 피아노 배우기처럼 일상에서 하고 싶었던 일에 도전해 보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싶어요."



최연진 IT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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