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돌이·집순이여, 집에서 여행을 떠나자"...'안락의자 여행자' 반 데 벨데의 상상

입력
2024.03.12 19:00
수정
2024.03.12 22:41
22면
구독

[리너스 반 데 벨데: 나는 욕조에서 망고를 먹고 싶다]
아트선재센터, 스페이스 이수 동명 전시 동시 진행

리너스 반 데 벨데 개인전 '나는 욕조에서 망고를 먹고 싶다'가 열리고 있는 서울 종로구 아트선재센터 전경. 벽면에는 그의 대표 작품인 오일 파스텔화가 전시되어 있고, 나무 형태의 설치 작품은 그의 영화에 소품으로 사용된 것이다. 아트선재센터 제공

리너스 반 데 벨데 개인전 '나는 욕조에서 망고를 먹고 싶다'가 열리고 있는 서울 종로구 아트선재센터 전경. 벽면에는 그의 대표 작품인 오일 파스텔화가 전시되어 있고, 나무 형태의 설치 작품은 그의 영화에 소품으로 사용된 것이다. 아트선재센터 제공

넓은 견문과 다양한 경험은 탁월한 예술의 재료로 여겨진다. 스스로를 '안락의자 여행자'라 소개하며 상상의 여행을 펼치는 벨기에 작가 리너스 반 데 벨데(41)에겐 이러한 통념이 적용되지 않는다. 뼛속까지 '집돌이'인 그가 서울의 두 전시공간을 가득 메우는 데 필요했던 건 그저 작업실과 방 한 칸뿐이었다.

유럽 현대미술계가 사랑하는 작가 반 데 벨데의 한국 첫 개인전이 서울 종로구 아트선재센터와 서초구 스페이스 이수에서 열리고 있다. '나는 욕조에서 망고를 먹고 싶다'라는 제목으로 동시 진행되는 두 전시엔 반 데 벨데의 대표 작업인 대형 목탄화, 오일 파스텔화를 비롯해 영상, 조각, 설치 50여 점이 나왔다.

상상력은 우리를 어디까지 데려갈 수 있을까

벨기에 출신 작가 리너스 반 데 벨데와 그가 상상력을 동원해 그린 오일 파스텔화. 아트선재센터 제공

벨기에 출신 작가 리너스 반 데 벨데와 그가 상상력을 동원해 그린 오일 파스텔화. 아트선재센터 제공

전시 제목은 프랑스 화가 앙리 마티스(1869~1954)의 말을 인용한 것이다. 마티스는 그림 그리기에 가장 좋은 빛을 찾으려 프랑스 남부로 여행을 떠났는데, 반 데 벨데는 실제로 여행을 떠나지 않고도 '상상 여행'을 통해 어디든 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커다란 야자수가 드리운 석양 깔린 해변, 생명력 강한 침엽수림이 빽빽한 한적한 숲길, 구름 한 점 없는 창공을 가르는 새의 날갯짓. 여행지에서나 볼법한 풍경이 펼쳐진다. 하늘, 바다, 호수, 숲 등을 선명하게 그린 오일 파스텔화는 그의 대표적인 스타일이다. 직사광선 내리쬐는 자연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을 주지만 실존하지 않는 허구적 순간들이다.

직사광선 내리쬐는 자연을 그리고자 야외로 나간 20세기 외광파 작가들은 반 데 벨데와 대척점에 있다. 그는 상상력을 동원해 외광파 작가가 되어 그린 그림도 선보인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무언가를 현실에서 직접 경험하는 것보다 상상하는 것이 더 흥미로운 경우가 많다. 공상은 강력한 도구이며 우리가 현실을 성찰하는 데 사용할 수 있다."

리너스 반 데 벨데, '나는 욕조에서 해와 달, 구름이 지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망고를 먹고 싶다...', 2023, 종이 위에 오일 파스텔, 140x116cm. ⓒ 리너스 반 데 벨데 제공

리너스 반 데 벨데, '나는 욕조에서 해와 달, 구름이 지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망고를 먹고 싶다...', 2023, 종이 위에 오일 파스텔, 140x116cm. ⓒ 리너스 반 데 벨데 제공


골판지와 합판으로 창조해낸 새로운 세계

리너스 반 데 벨데, '소품, 자동차', 2018. 반 데 벨데가 영화를 실내에서 제작하기 위해 골판지로 제작한 소품이다. 아트선재센터 제공

리너스 반 데 벨데, '소품, 자동차', 2018. 반 데 벨데가 영화를 실내에서 제작하기 위해 골판지로 제작한 소품이다. 아트선재센터 제공

반 데 벨데의 상상은 2차원에 머무르지 않는다. 전시에선 각기 다른 두 편의 영화, '라 루타 내추럴'과 '하루의 삶'이 상영된다. 주인공들은 자동차를 타고 종횡무진하고, 터널 계단을 내려가 평행우주로 이동한다. 모든 장면은 실내 스튜디오에서 촬영됐다. 세트장은 반 데 벨데가 나무 합판과 골판지 등으로 만들었다. 전시장에 비치된 실물 크기의 자동차, 터널, 과일가판대, 선인장 등 소품과 상영되는 영화를 번갈아 보다 보면 현실과 허구, 실제와 상상의 희미한 경계에 놓인 듯한 몽환적인 경험을 하게 된다.

이혜미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