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보조금 다행"이지만 대중국 공조는 아직… 대미국 반도체 실리 외교

입력
2024.03.17 08:00
수정
2024.03.17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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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고위당국자 주미특파원 간담회
기업 불이익 막아라, 적극·신중 병행
정인교 통상본부장 “민관 협력 절실”

삼성전자가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에 짓고 있는 파운드리 공장 부지. 삼성전자 제공

삼성전자가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에 짓고 있는 파운드리 공장 부지. 삼성전자 제공


정부가 대(對)미국 반도체 외교에서 실리를 챙기려 부심하고 있다. 미국에 공장을 짓는 국내 기업이 투자 보조금을 최대한 많이 받도록 측면 지원하며, 중국을 자극할 수 있는 미국과의 대중국 수출 통제 공조는 가급적 조용하게 추진하는 식이다.

“투자액 대비 기대에 부응”

15일(현지시간) 수도 워싱턴에서 한국 특파원들과 만난 정부 고위당국자는 미국의 반도체 지원법(일명 ‘칩스법’)에 따라 국내 반도체 기업 삼성전자가 받을 것이라 보도된 보조금 규모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블룸버그통신은 14일 “170억 달러(약 22조6,000억 원) 규모의 대미 투자 계획을 발표한 삼성전자가 미국 정부로부터 60억 달러(약 8조 원) 이상의 칩스법 보조금을 받을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이와 관련, 이 당국자는 “적다, 많다를 판단하기에는 한계가 있지만 (대만 반도체 기업인) TSMC의 (대미) 투자액이 (삼성전자보다)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난 만큼 기대에 부응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미국 시설에 400억 달러(약 53조3,000억 원)를 투자할 계획인 TSMC는 50억 달러(약 6조7,000억 원) 이상을 보조금으로 받을 것이라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다만 공개된 투자액만으로 득실을 단순 평가할 수는 없다고 이 당국자는 지적했다. 그는 “기업들이 제출한 신청서상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분야별, 항목별 기준을 얼마나 충족했는지 미국이 판단해 금액을 정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반도체 보조금은 10년간 중국에서 생산 능력을 5% 이상 확대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지급된다. 반도체 수율(무결함 제품 비율) 등 영업 비밀 제출 요구 및 초과 이익 환수 방침 등도 세부 지침에 담겨 있다. 삼성전자는 추가 투자도 계획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구체적인 조건은 개별 기업과 협상해 확정하겠다는 게 미국 상무부 얘기였다.

정부 당국자는 “기본적으로 이것은 우리 기업과 미국 상무부 간 대외비를 전제로 협상을 해 온 내용이기 때문에 정부가 여기에 대해 코멘트를 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며 “다만 정부는 한국 기업들이 그런 기준대로 제대로 평가받고 그 기준을 적용할 때 다른 나라 기업에 비해 불이익이 없어야 한다는 것을 미국 정부에 강조했다”고 말했다.

공급망 미국 편입은 ‘로키’로

보조금을 지렛대로 자국 반도체 생산 투자를 유도하는 미국 정부는 국가 안보가 명분인 공급망의 자국 중심 재편도 추진 중이다. 기업을 적극 거들면 되는 보조금 확보 경쟁과 대조적으로 미국 공급망 편입 논의는 ‘로키(저강도)’로 할 수밖에 없는 게 정부 형편이다. 대중 수출 통제가 핵심인데, 중국이 한국 기업의 주요 시장이기 때문이다.

실제 미국이 주도하는 대중 반도체 장비 수출 통제에 한국이 참여할지는 정부 입장에서 아직 신중하게 다뤄야 할 문제다. 양국이 논의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조차 아직 부담스러운 눈치다. 이미 일본과 네덜란드가 미국에 보조를 맞추고 있지만 한국과 사정이 같지 않다. 정부 고위당국자는 “한국과 미국뿐 아니라 많은 나라가 바세나르 체제 등에서 정기적으로 혹은 계기가 있을 때마다 미팅을 한다”며 “(다자) 국제 체제 내에서의 협의가 기본이고 그것이 지금까지 이뤄진 것의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꾸준히 해 오던 관례대로 협의를 한다고 보면 되고 그와 관련해서는 정부가 방향성 등을 확인해 주기 어렵다”며 추가 언급을 자제했다. 바세나르는 군사용으로 쓰일 수 있는 이중 용도 품목과 재래식 무기의 확산을 막기 위해 1996년 국제사회가 설립한 다자 수출 통제 체제다.

정인교(왼쪽)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13일 미국 워싱턴 상무부에서 돈 그레이브스 미 상무부 부장관과 만나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제공

정인교(왼쪽)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13일 미국 워싱턴 상무부에서 돈 그레이브스 미 상무부 부장관과 만나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제공

이런 복잡한 상황에서 주력해야 할 일은 대미 접촉면 확대와 심화라는 게 정부 생각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공동위원회 참석을 위해 취임 뒤 처음 미국을 찾은 정인교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15일 워싱턴 인근 식당에서 특파원 간담회를 열어 방미 기간(12~15일) 자신이 한 일을 소개했다. 그는 통상·외교 고위급 인사와 상·하원 의원 등 미국 오피니언 리더들과 면담하고 미국에 투자 중인 한국 기업을 차별 없이 신속하게 지원해 줄 것을 당부했다고 밝혔다.

올해는 미국 대선 때문에 대미 통상 환경의 불확실성이 어느 때보다 강하리라는 게 정 본부장 관측이다. 그는 “우리 기업의 대미 투자가 합당하게 대우받고 우리 관심과 이해가 미국 정책 형성과 집행 과정에 반영되려면 미국 조야 다양한 인사와 우호적 관계를 형성하는 게 중요하다”며 “올해 민관 역량을 총결집해 전방위적으로 미국 내 아웃리치(대외접촉)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 권경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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