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의대 나와야 지방서 일한다" 의대 증원 82% 몰아주고 '지역의료 강화' 승부수

입력
2024.03.20 19:30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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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명 중 1639명 지방에 배정
지역인재선발 60% 확대도 추진
정부 "서울-지방 의료격차 완화"
서울 역차별·졸속 결정 우려도

한덕수(앞줄 가운데) 국무총리와 이주호(오른쪽)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등이 2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의대 정원 대학별 배분 결과에 대해 발표하기 위해 브리핑실로 향하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한덕수(앞줄 가운데) 국무총리와 이주호(오른쪽)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등이 2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의대 정원 대학별 배분 결과에 대해 발표하기 위해 브리핑실로 향하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정부가 내년부터 의대 입학정원을 2,000명 늘려 이 가운데 82%를 비(非)수도권 의대에 배분하겠다고 20일 밝혔다. 1998년 제주대 의대 설립 이래 한 번도 늘어난 적 없던 의대 총정원을 의사 사회의 격렬한 반발을 무릅쓰고 대폭 늘렸다는 점, '상경 진료' '응급실 뺑뺑이'로 상징되는 지역 간 의료격차와 필수의료 붕괴 문제에 맞서 정책적 수단을 총동원했다는 점에서 정권의 명운을 건 승부수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 의대 증원 및 배정 조치의 바탕에는 지방 의대에서 의사를 대거 양성하고 이들에게 지역의료 인프라 강화의 임무를 맡기겠다는 구상이 깔려 있다. 그간 의료체계 난맥상 타개책으로 유력하게 논의됐지만 의사단체 반발에 기약 없이 미뤄졌던 대책이 가동된다는 점에서 기대가 크다. 다만 그간의 추진 과정이나 향후 실행 여건을 두고 우려도 따른다. 의대 정원 배분을 결정한 배정위원회가 구성원도 공개하지 않은 채 가동 5일 만에 결정을 내린 점, 인구 최대 밀집 지역인 서울권 의대는 정원이 동결된 점, 지역 의대 신입생이 당장 내년부터 최대 4배까지 늘어나 교육이 부실해질 수 있다는 점 등이 지적되고 있다.

"지방 의대 나오면 지방에서 일할 확률 2배"

그래픽=박구원 기자

그래픽=박구원 기자

교육부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2025학년도 의대 정원 대학별 배정 결과를 발표하면서 정원 배정에는 세 가지 핵심 원칙이 있었다고 밝혔다. ①의료격차 해소를 위해 수도권-비수도권 의대에 2대 8 비율로 배정 ②50명 미만 소규모 의대 정원을 100명 이상으로 확대 ③거점 국립대의 '권역 책임 의료기관' 역할 수행을 위한 정원 200명 확대다. 소규모 의대 다수가 지역에 있다는 점까지 감안하면 모두 지역의료 역량 강화와 연계된 기준이다. 한덕수 국무총리도 이날 대국민 담화에서 "지역의료 강화는 의료개혁의 축 가운데 하나이자 가장 절박한 분야"라고 했다. 정부는 의대 증원과 별도로, 의대가 없는 전남 지역에 의대 신설을 추진할 방침이다.

아울러 정부는 지방 의대 입학정원의 60%를 의대 소재 권역 학교를 나온 학생으로 채우도록 지역인재선발 비율을 확대할 방침이다. 현재 40%인 지역인재선발 비율의 법정 하한을 강제로 올리진 않겠지만, 대학들이 자발적으로 60% 이상을 선발하도록 독려할 계획이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대학들의) 상향식 추진을 통하면 충분히 60% 선발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정부의 이런 방침은 지방 의대 증원이 해당 지역 의료 인프라 확충으로 이어진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정부는 그 근거로 2022년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가 발표한 '의사 지역근무 현황 및 유인·유지 방안 연구' 보고서를 든다. 이 연구에 따르면 출신지가 비수도권인 의사가 비수도권에서 근무할 가능성이 수도권 출신 의사보다 최대 2.43배 높다. 의대 졸업 지역이 비수도권이라면 비수도권 근무 확률이 최대 2.12배가 높아지고, 특히 전문의 수련 지역이 비수도권이면 그 비율이 최대 12.41배 높다.

"서울은 의료여건 최상" 8개 의대엔 무배정

그래픽=박구원 기자

그래픽=박구원 기자

정부는 비수도권 27개 의대에 1,639명을 배정하고 남은 증원 인원 361명은 경기·인천 5개 의대에 줬다. 이에 따라 서울 소재 8개 의대 정원은 현행 826명으로 동결됐고, 전체 의대 정원에서 서울권 의대가 차지하는 비중은 27%에서 16%로 떨어졌다. 이를 두고 서울권 의대에 대한 역차별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앞서 서울권 8개 의대는 정부에 입학정원을 365명 증원하겠다고 신청했다. 이 가운데 의대 정원이 135명으로 가장 많은 서울대는 의대 정원을 150명으로 늘리는 한편 의사과학자 양성을 위해 50명 정원의 의과학과를 신설하겠다고 밝혔지만 실현이 어렵게 됐다.

정부는 서울의 의료 인프라는 세계적 수준이라 굳이 의대 정원을 늘릴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지역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3.61명으로 OECD 평균(3.7명)에 가깝고, 빅5 병원 등 국제 경쟁력을 갖춘 대형 상급종합병원이 여럿 포진해 있다는 것이다. 같은 수도권이라도 경기와 인천은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1.8~1.9명으로 전국 평균(2.23명)에도 미치지 못한다고도 부연했다.

한편에선 서울권 의대 정원은 늘어나지 않았어도 서울권 병원에서 수련을 받을 의대생은 늘어났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는 거점 국립의대 정원을 200명으로 늘린 이유로 "일부 (지역)사립대는 학생들이 수도권에서 실습하기 때문에 지역의료 여건 개선 기여도가 높지 않다"고 설명했지만, 빅5 병원 일원인 서울아산병원에서 의대생 임상실습이 주로 이뤄지는 울산대 의대는 정원이 40명에서 120명으로 3배나 늘었다.

배정위 본격 가동 5일 만에 발표... '깜깜이' 지적

의대 정원 배정 과정이 불투명한 데다 졸속으로 결정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배정 작업은 정부 관계자와 의료계 전문가로 이뤄진 배정위원회가 맡았으나, 위원회에 누가 참여했는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더구나 정부는 지난 15일 배정위원회를 본격 가동한다고 밝혔는데 그로부터 불과 5일 만에 배정 결과가 발표된 셈이다.

내년부터 의대 신입생 수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교육이 부실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여전하다. 신입생은 50명 미만으로 받던 소규모 의대들은 일제히 내년 입학정원이 2배 이상 늘었고, 소규모 의대이자 거점 국립대인 충북대는 입학정원이 49명에서 200명으로 4배 이상 늘었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40개 의대를 상대로 1차 증원 수요조사를 하면서 교육 여건을 실사한 결과 증원에도 문제가 없다는 걸 확인했다는 입장이다.

홍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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