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이 삶을 헤쳐 나갈 유일한 방법은 아닙니다”

입력
2024.03.24 17:00
수정
2024.03.24 23:10
21면

[인터뷰] 제프리 플레이어 세계사회학회장 인터뷰
개인과 사회적 삶을 일치하려는
‘대안 활동가’가 늘어나고 있다
2027년 광주 개최 세계사회학회
사회과학의 탈 서구화 계기 기대

제프리 플레이어 세계사회학회장이 20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연희관에서 '글로벌 대화로서의 글로벌 사회학'을 주제로 강연한 후 본보 기자와 인터뷰하고 있다. 임은재 인턴기자

제프리 플레이어 세계사회학회장이 20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연희관에서 '글로벌 대화로서의 글로벌 사회학'을 주제로 강연한 후 본보 기자와 인터뷰하고 있다. 임은재 인턴기자

방한한 제프리 플레이어(Geoffrey Pleyers) 세계사회학회 회장을 지난 21일 인터뷰했다. 벨기에 루뱅대학 사회학과 교수인 그는 프랑스 고등사회과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글로벌 시대 사회 운동 등을 연구하고 있다.

_2023년도 세계 사회학회장 취임 연설에서 당신은 인터넷과 소셜미디어 등 새로운 소통 수단의 등장과 권위주의 부활 등을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2010년 ‘아랍의 봄‘이 시작할 때만 해도 SNS 같은 소셜미디어가 민주주의에 도움이 될 거라는 전망이 많았는데, 지금은 오히려 권위주의를 강화하고 사회 갈등을 부추기는 도구가 된 것 같다.

“권위주의 정부가 소셜 미디어를 이렇게 빨리 그리고 강력하게 장악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인터넷은 지난 15~20년간 민주화 운동의 공간이자 불의와 인권 유린을 고발하는 수단이었다. 소셜 미디어도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런데 이런 사례는 과거 신기술이 등장할 때도 종종 일어났다. 15세기 유럽에서 인쇄기가 발명된 직후 성경을 인쇄했지만, 대중이 직접 성경을 읽기까지는 300~400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오늘날 소셜 미디어 역시 통제, 가짜 뉴스, 증오를 퍼뜨리고 있지만, 정보 유통이 활발해질수록 점점 더 민주화와 연대 협력을 강화하는 데 더 많은 도움을 줄 것으로 생각한다. 소셜미디어가 긍정적 수단으로 발전하려면 가짜 뉴스를 생산 전파하는 것에 대한 규제가 중요하다. 가짜 뉴스를 걸러내는 데 사회과학과 저널리즘의 역할도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_1990년대 이후 거스를 수 없는 조류로 여겨지던 세계화에 대한 저항이 점점 거세지고 있다. 서구화 도시화 시장화로 요약되는 세계화는 결국 과거 식민주의의 변형된 모습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세계화와 탈서구화가 공존할 수 있을까.

“세계화가 서구 중심적으로 시작됐지만, 점점 약화하고 있다. 한류, 발리우드 영화, 중국의 부상 등이 그 증거다. 사회과학 역시 서구적 시각의 해석에서 벗어나려 노력하고 있다. 세계사회학회를 모로코에 이어 2027년 한국 광주에서 개최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세계 각지의 다양한 생각에 대한 상호 이해를 높이는 것은 각자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_당신은 세계화 시대에 등장한 새로운 사회운동의 특징 중 ‘대안-활동가’(Alter-Activists)의 등장에 주목한다. 환경운동과 사회운동에서 개인적 윤리와 사회적 대의를 일치시키려는 청년세대의 힘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젊은 세대는 더 보수화 개인화하고 능력주의를 공정의 척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경쟁을 통해 성과를 분배하는 것이 가장 공정하다는 능력주의는 그 경쟁의 출발선이 불공정하다는 사실을 숨기고 있다는 점에서 전혀 공정하지 않은 거짓 신화이다. 능력주의와 경쟁을 강조하는 사회일수록 부의 세습과 빈부격차가 크다. 또 경쟁에 뒤지거나, 부자가 되지 못하면, 그것이 개인의 잘못이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자유시장과 경쟁을 우선시해 온 칠레에서 2019년 벌어진 광범위한 반정부 시위는 능력주의의 잘못된 신화에 대한 저항이었다. 능력주의에 저항하는 운동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미국의 낙태 불법화 반대 운동이나 기후변화 저지 운동 등에서 개인의 삶과 사회 정치적 삶이 일치하는 것을 추구하는 대안 활동가들의 등장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경쟁만이 우리가 같이 살아가는 유일한 방법이 아니기 때문에 더 귀중한 걸 찾는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것이다.”



정영오 논설위원
정리 변한나 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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