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제주에 가면… 상처 보듬는 '평화의 바람' 속 힐링 소풍

입력
2024.03.26 17:00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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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관광공사 추천 4·3길 마을산책

제주의 아름다운 풍경 곳곳에 아픔의 역사가 서려 있다. 서귀포시 중문동의 4·3사건 희생자 위령비. 제주관광공사 제공

제주의 아름다운 풍경 곳곳에 아픔의 역사가 서려 있다. 서귀포시 중문동의 4·3사건 희생자 위령비. 제주관광공사 제공

제주의 4월엔 따사로운 봄볕만큼이나 가슴 쓰린 역사가 스며 있다. 제주4·3사건은 경찰의 발포에 항의해 1947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가 봉기한 이래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될 때까지 무장대와 토벌대 간의 무력충돌, 토벌대의 진압 과정에서 수많은 주민이 희생당한 사건이다. 제주4·3사건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가 지난해까지 확정한 희생자는 1만4,738명이다. 비공식적으로는 당시 도 인구의 10%가 넘는 최대 3만 명으로 추정된다. 7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제주4·3’은 이제 ‘평화’를 이야기한다. 2008년 설립된 공익법인의 명칭도 ‘제주4·3평화재단’이다. 제주관광공사가 제주시 조천읍과 서귀포시 중문동의 ‘4·3길’을 평화의 바람으로 아픈 마음을 보듬는 봄 여행지로 선정했다.

소설 ‘순이삼촌’ 실제 무대 북촌마을과 선흘곶자왈

조천읍은 에메랄드빛 바다, 현무암 돌담길과 낮은 지붕의 정겨운 마을이 어우러진 제주의 전형적인 풍경을 간직하고 있다. 겉보기에 소박하고 평화롭지만 4·3사건의 피해가 가장 컸던 지역이다.

북촌마을은 조천면 양민학살 사건을 바탕으로 한 현기영의 소설 ‘순이삼촌’의 실제 무대다. 물 맑은 포구와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팽나무가 자리 잡은 이 마을에서만 400여 명이 집단으로 학살당했다. 넓은 돌밭이라는 의미의 ‘너븐숭이 4·3기념관’은 ‘북촌리 4·3길 코스'(6㎞)의 출발점이자 도착지다. 위령탑과 희생자의 이름을 새긴 비석 등이 함께 있어 당시의 비극을 가장 가까이서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 사이(점심시간 제외) 방문하면 안내와 해설을 들을 수 있다.

유채꽃이 곱게 핀 제주 조천읍 풍경. 4·3 당시 가장 희생자가 많았던 지역이다. 제주관광공사 제공

유채꽃이 곱게 핀 제주 조천읍 풍경. 4·3 당시 가장 희생자가 많았던 지역이다. 제주관광공사 제공


조천읍 북촌마을 해변. 제주에서도 물빛이 유난히 곱다. 제주관광공사 제공

조천읍 북촌마을 해변. 제주에서도 물빛이 유난히 곱다. 제주관광공사 제공


조천읍 북촌마을 골목 풍경. 일대는 4·3사건 희생자가 가장 많은 곳이다.

조천읍 북촌마을 골목 풍경. 일대는 4·3사건 희생자가 가장 많은 곳이다.


조천읍 '너븐숭이 4·3기념관' 내부 벽면에 당시 희생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제주관광공사 제공

조천읍 '너븐숭이 4·3기념관' 내부 벽면에 당시 희생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제주관광공사 제공


가장 제주다운 자연을 두 눈에 담고 싶다면 인근 선흘곶자왈의 제주동백동산을 추천한다. 동백동산은 화산활동으로 분출된 용암이 만들어낸 부정형 현무암 지대에 난대성 나무와 덩굴식물이 원시림처럼 뿌리내린 곶자왈이다. 약 5.1㎞ 숲속 탐방로는 울창한 나무에 가려 햇빛이 거의 들지 않는다. 걷다 보면 안내판과 함께 아래로 뚫린 자연 동굴 ‘도틀굴’을 만난다. 4·3 당시 선흘리 주민이 몸을 숨긴 곳으로 자연의 위대함과 역사의 아픔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동백동산 습지센터(ramsar.co.kr)에서 탐방 예약(당일 불가)을 하면 마을해설사가 동행해 약 1시간 30분간 곶자왈의 생태와 역사에 대해 설명해 준다.

동백동산 선흘곶자왈 입구. 제주관광공사 제공

동백동산 선흘곶자왈 입구. 제주관광공사 제공


동백동산은 용암이 만든 바위에 원시림이 형성된 곶자왈 지형이다. 한국관광공사 제공

동백동산은 용암이 만든 바위에 원시림이 형성된 곶자왈 지형이다. 한국관광공사 제공


동백동산은 람사르습지에 등재돼 있다. 선흘곶자왈의 대표적 습지인 먼물깍. 제주시 제공

동백동산은 람사르습지에 등재돼 있다. 선흘곶자왈의 대표적 습지인 먼물깍. 제주시 제공


천제연폭포 비경에도 4·3의 아픔이

겉보기에 화려한 서귀포 중문관광단지에도 4·3사건의 아픔이 서려 있다. 당시 수차례에 걸쳐 중문면 주민 786명이 희생됐다. 중문성당에서 출발해 천제연폭포, 베릿내오름, 별내린전망대, 제주국제평화센터까지 중문동 평화로드(약 4.2㎞)를 걸으면 제주의 아름다움에 숨겨진 가슴 아픈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서귀포 중문성당의 4·3 기념 십자가. 당시 학살터에 세워진 중문성당은 4·3 기념성당으로 지정돼 있다. 제주관광공사 제공

서귀포 중문성당의 4·3 기념 십자가. 당시 학살터에 세워진 중문성당은 4·3 기념성당으로 지정돼 있다. 제주관광공사 제공


소담스러운 중문동 골목 풍경. 제주관광공사 제공

소담스러운 중문동 골목 풍경. 제주관광공사 제공

중문성당은 당시 학살터에 세워진 성당이다. 일제강점기에 신사가 있었던 곳으로 마을과 조금 떨어져 있다. 무장대로 오인된 중문리와 인근 마을 주민 71명이 이곳에서 참혹하게 총살당했는데, 희생자 중에는 3세 어린아이와 60대 노인까지 있었다. 현재의 중문성당은 당시의 비극을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평화롭다. 성당 입구에 4·3 기념 십자가가 있다.

천제연폭포 일대도 마찬가지다. 1948년 11월 5일 무장대가 중문지서를 피습해 민가 40여 채가 전소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토벌대는 주민들을 사상 불량과 예비검속 명목으로 학살했는데 천제연폭포 일대가 그 현장이다. 폭포와 선임교 사이에 2008년 봄에 세운 ‘4·3 희생자 위령비’가 있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마주하기 전 잠시 희생자의 넋을 위로하는 곳이다.

천지연폭포, 정방폭포와 함께 제주 3대 폭포로 꼽히는 천제연폭포는 높이 22m 주상절리 절벽에서 떨어지는 제1폭포, 아래로 흐르면서 형성된 제2·3폭포로 구성된다. 일대는 사계절 푸르른 난대림이다. 폭포 동쪽에 ‘베릿내오름’이 솟아 있다. 천제연 깊은 골짜기로 흐르는 물을 은하수에 빗대 ‘성천봉(星川峰)’, 즉 ‘별이 내린 내’로 부르던 것이 ‘베릿내’가 됐다. 계단으로 연결된 탐방로를 따라 정상에 오르면 앞뒤로 드넓은 바다와 한라산이 조망된다.

4·3의 아픔이 서려 있는 천제연폭포 일대는 울창한 난대림 숲이 형성돼 있다. 제주관광공사 제공

4·3의 아픔이 서려 있는 천제연폭포 일대는 울창한 난대림 숲이 형성돼 있다. 제주관광공사 제공


천제연폭포는 천지연폭포, 정방폭포와 함께 제주 3대 폭포로 꼽힌다. 제주관광공사 제공

천제연폭포는 천지연폭포, 정방폭포와 함께 제주 3대 폭포로 꼽힌다. 제주관광공사 제공


베릿내오름과 이어지는 별내린전망대 산책로. 제주관광공사 제공

베릿내오름과 이어지는 별내린전망대 산책로. 제주관광공사 제공

베릿내오름에서 이어지는 별내린전망대에는 덱 탐방로가 조성돼 있어 오붓하게 산책을 즐기기 좋다. 나무 의자에서 느긋하게 쉬어도 좋고, 화창한 봄밤 별을 감상하기에도 그만이다. 오름 바로 아래는 평화로드의 종착점 제주국제평화센터다. 2005년 제주특별자치도가 ‘세계 평화의 섬’으로 공식 지정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했다. 센터는 비극의 역사를 간직한 제주가 평화의 섬으로 거듭나기까지의 노력을 전시하고 있다. 매월 둘째, 넷째 월요일 휴관한다.



최흥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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