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C, 허영인 회장 수사 앞두고 검찰수사관과 '도상훈련'까지 했다

입력
2024.03.29 17:25
수정
2024.03.29 18:19
구독

SPC 전무가 '사전훈련' 제안하자
수사관은 수사계획 등 정보 유출
황재복 대표는 향응 제공 지시해

수사정보를 대가로 금품을 주고 받은 혐의를 받는 백모(가운데) SPC 전무가 지난달 6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에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수사정보를 대가로 금품을 주고 받은 혐의를 받는 백모(가운데) SPC 전무가 지난달 6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에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SPC그룹이 허영인 회장의 배임 사건 수사를 대비하기 위해, 검찰 수사팀 소속 수사관과 사전 훈련까지 했던 사실이 드러났다. 황재복 SPC 대표가 수사관의 협조 대가로 향응 제공을 지시하는 등, SPC가 회장 수사를 막기 위해 조직적으로 움직인 정황이 검찰 수사에서 확인된 것이다.

29일 한국일보가 확보한 백모 SPC 전무와 검찰 수사관 김모씨의 공소장에 따르면, 두 사람은 동향 모임에서 만나 허 회장 수사 이전에도 1년에 두세 번씩 교류하는 사이였다. 허 회장의 배임·공정거래법 위반 혐의 수사가 진행되던 2022년 1월, 마침 김씨는 해당 수사 담당부서인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에 근무했다고 한다.

이에 백 전무가 김씨에게 연락해 "SPC그룹 사옥에서 직접 황 대표에게 수사상황 등을 설명하고 검찰조사 등에 대비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도상훈련'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백 전무는 황 대표에게 먼저 이런 훈련을 제안해 "그러면 감사하지, 은혜를 잊지 않겠다"며 내락을 받은 후였다.

도상훈련을 해주겠다고 허락한 김씨는 같은 달 22일 약속장소에 나갔지만, 막상 황 대표가 부담스러워해 백 전무와 둘이서 도상훈련을 했고 해당 내용을 황 대표에게 전달하기로 했다. 앞서 황 대표는 백 전무에게 "김씨에게 맛있는 것도 사주고 술도 사 먹어라"고 지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후 백 전무가 허 회장 관련 수사 자료를 전달받는 대가로 김씨에게 금품을 건넨 것으로 검찰은 파악했다. 그는 서울 서초구의 한 식당에서 김씨로부터 사건 수사경과 등에 대한 설명을 듣고, 수사보고서의 '향후 계획'까지 휴대폰으로 촬영했다. 이 문건은 수사팀 검사가 직접 작성한 사건 중간 수사보고서 출력본이었다. 보고서에는 △공정거래위원회와 SPC 간 행정소송 결과를 확인하고 허 회장 사건을 일괄 처리하는 안 △배임 사건만 우선 기소하고 공정거래법 위반 사건은 행정소송 결과 확인 후 처리하는 안 등이 포함돼 있었다. 백 전무는 정보의 대가로 50만 원 상당의 SPC 상품권, 7만8,000원짜리 쿠키세트, 2만8,000원 상당의 점심식사를 제공했다.

검찰은 두 사람이 개인정보도 주고받은 것으로 봤다. 김씨는 2021년 7월과 2022년 3월 황 대표의 출국금지 여부, 공정거래조사부 내부 배치표 등을 백 전무에게 전달했다. 백 전무는 2020년 9~10월 허 회장 사건 수사에 연루된 SPC 자회사 대표의 개인정보 등을 김씨에게 알려줬다.

서울중앙지검 인권보호관실(부장 김형주)는 지난달 23일 김씨를 공무상비밀누설,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및 부정처사후 수뢰 혐의로, 백 전무를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뇌물공여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황 대표도 같은 혐의로 22일 구속기소됐다.

검찰은 의혹의 정점인 허 회장을 다음달 1일 소환조사한 후 사법처리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박준규 기자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