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김멜라의 시간'…"내 소설에서 단 한 단어만 남긴다면"

입력
2024.04.01 04:30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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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작가상 4년 연속 수상한 ‘대세’ 작가 김멜라
자신에 대한 글 “흐린 눈으로 보는” 데뷔 10년차
“소설서 단 한 단어를 끊임없이 찾다 보면 사랑”

제15회 젊은작가상 대상을 수상한 김멜라 소설가가 지난달 26일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임은재 인턴기자

제15회 젊은작가상 대상을 수상한 김멜라 소설가가 지난달 26일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임은재 인턴기자

'신인 시절부터 지켜본 작가가 어느덧 문학계를 휩쓰는 모습을 목도했을 때의 쾌감'(문학동네)을 주는 소설가, 바로 김멜라(41)다. 4년 연속 젊은작가상 수상에 이어 2024년 단편소설 '이응 이응'으로 마침내 대상을 거머쥐었다. 바야흐로 '김멜라의 시간'이라 칭해도 과하지 않은 날들이다.

한때는 "나는 대기만성형"이라고 스스로를 달래며 비정규직 일자리를 전전했다. 2014년 작품활동을 시작한 김 작가가 6년 동안 받은 원고 청탁은 단 3건. 겨우 첫 소설집을 발표하고도 "내 돈 주고 내가 산 내 책이 택배 포장 그대로 원룸 한쪽에 쌓여 가던" 시간을 건너온 김 작가를 최근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김 작가는 한국일보에 "나에 대한 게시글이나 리뷰, 평론을 볼 때 '흐린 눈'을 뜬다"면서 "감사한 마음이지만 어느 정도는 거리를 두려고 한다"고 말했다. "칭찬이든 비난이든 개인이 아닌 김멜라가 쓴 소설에 대한 것이기 때문에 좋아하거나 상심하기보다는 이런 다양한 이야기들이 오고 가는 작품을 써서 다행이라는 감정이 큽니다."

"'이응'은 누군가와 닿고 싶은 마음"

김멜라 소설가의 첫 소설집 ‘적어도 두 번’(왼쪽 사진)과 두 번째 소설집 ‘제 꿈 꾸세요’의 표지. 자음과모음·문학동네 제공

김멜라 소설가의 첫 소설집 ‘적어도 두 번’(왼쪽 사진)과 두 번째 소설집 ‘제 꿈 꾸세요’의 표지. 자음과모음·문학동네 제공

제15회 젊은작가상 대상 수상작 '이응 이응'은 성욕을 해소하는 기계('이응')가 보급된 가상의 세계를 그린다. 공공장소는 물론 학교 기숙사에도 설치된 '이응'으로 매춘이나 원치 않는 임신, 성범죄는 줄고, 출생률은 늘어나 사회에는 평화가 찾아온다. 그러나 소설의 주인공인 '나'는 함께 살던 할머니와 강아지 보리차차가 떠난 후 기계가 아닌 "뺨을 맞대거나 포옹"하기를 원한다.

"파래를 무치다가 (젊은작가상 수상 소식을 전하는) 전화를 받았다"는 김 작가는 "놀라운 한편으로는 이제 많은 독자가 '이응 이응'을 보실 텐데 어떠실지 궁금하기도 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응'이라는 도구에 대해서는 "성욕뿐 아니라 접촉, 연결 등을 두루두루 상정한 것"이라며 "할머니와 강아지를 만졌을 때처럼 누군가와 닿고 싶은, 연결되고 싶은 마음이자 다시 느끼고 싶은 감정,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이응 이응'은 아직 '김멜라의 소설'을 읽어보지 않은 독자에게 작가가 권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는 "'이응'이라는 가상 체험의 공간이 독자에게 또 하나의 상상이 되기를 바란다"면서 "세상은 그런 식으로 누군가의 상상으로 이어지기에 이 소설을 읽으면서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치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소설 쓰며 균형점 찾으려 노력"

김멜라 소설가가 지난달 26일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면서 미소 짓고 있다. 임은재 인턴기자

김멜라 소설가가 지난달 26일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면서 미소 짓고 있다. 임은재 인턴기자

데뷔 이후 인터섹스(간성)와 레즈비언, 특히 레즈비언 모녀·장애인·귀신 등 소수자성에 소수자성이 겹겹이 쌓인 "없다고 여겨지는 존재들"에 대한 글을 쓴 김 작가다. 이들을 통해 기존 질서를 대담하게 전복하는 내용을 담으면서도 감정이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과격해지지 않는 것이 김멜라 소설의 특징이기도 하다. "나는 울고 있었지만, 비옷을 입고 빗속을 걷는 것처럼 두 뺨은 눈물 자국 없이 보송했다"는 '이응 이응'의 마지막 문장처럼.

김 작가는 "극단적이고 자극적인 소재가 많은 만큼 소설을 쓰면서 균형점을 찾으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그의 소설에서 균형 감각이 돋보이는 건 결국 '사랑'으로 썼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현실에서 사랑 표현을 잘하는 타입은 아니"라는 김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소설을 쓸 때만큼은 그런 생각을 해요. 이 소설에서 한 단어만 남겨야 한다면, 모든 단어와 문장을 버리고 한 단어만 붙들고 갈 수 있다면 무엇일지 끊임없이 찾다 보면 사랑이고 또 사랑의 힘이고 그것을 믿는다는 것이구나."

소설가로서의 필명인 멜라부터가 애인이 '찌그러지게 한다'는 뜻의 제주 사투리인 '멜르다'로부터 따와 지어 준, 사랑이 넘치는 시작이었다. "내가 살아가는 모습을 자세히 살펴보니 사랑의 힘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의심할 수가 없었고, 그래서 이제 자연스럽게 소설을 쓸 때도 그런 것에 대해서 쓰게 됐다"는 그의 말이 실감 나는 대목이다.

"세상에 필요한 말과 글 쓰고파"

김멜라 소설가. ⓒ 온점

김멜라 소설가. ⓒ 온점

2020년에 나온 첫 소설집 '적어도 두 번'을 쓸 당시 "보이지 않는 메아리를 치는 느낌"을 느꼈던 그다. 자신의 글을 읽을 독자라는 존재를 몰랐기에 "내가 쓰고 싶은 것과 써야 하는 것들로 밀도 있게 채웠다"는 설명이었다. 반면 그로부터 2년 후에 나온 '제 꿈 꾸세요'는 "사람들이 오가는 한복판에서 쓰는 기분"으로 썼다.

지금은 '젊은작가상 수상 작품집'에 실릴 원고를 비롯해 장편소설을 준비하며 "거울 앞에서 쓰는 기분"이라고 김 작가는 말했다. 집에 있는 그의 작은 작업실에 있는 거울을 통해 "내 시선으로 내 글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나를 독자로 여기며 좀 더 읽고 싶은 소설의 리듬, 또 보기에 편안하고 재미있고 즐겁고 설레는 시점을 생각하면서 글을 쓰고 있어요."

어느새 데뷔 10년을 맞은 그에게 다시 '10년 후의 김멜라'를 물었다. "어디서 좋은 사람이 되어야 좋은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는데, 마치 제가 좋은 사람처럼 보이더라"며 김 작가는 웃었다. 그는 "그때쯤에는 좀 더 타인과 세상에 필요한 말과 글을 썼으면 좋겠다"며 "김멜라라는 이름이 적힌 글이 아니더라도 필요한, 좋은 글을 썼으면 좋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김 작가가 인터뷰에서 가장 자주 입에 담은 말도 '좋겠다'다. 그가 말한 '좋겠다'의 숫자만큼, 세상에 사랑이 채워졌으면 '좋겠다'.

전혼잎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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