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 정권 심판론'에 무너진 에르도안… 튀르키예 집권당, 지방선거 참패

입력
2024.04.01 18:09
수정
2024.04.01 18:28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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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고향' 이스탄불에서도 패배
에르도안 "민심 듣겠다"… 패배 인정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맨 왼쪽) 튀르키예 대통령이 지난달 31일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지방선거 투표에 참여한 뒤 지지자들과 만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스탄불=로이터 연합뉴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맨 왼쪽) 튀르키예 대통령이 지난달 31일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지방선거 투표에 참여한 뒤 지지자들과 만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스탄불=로이터 연합뉴스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실시된 튀르키예 지방선거에서 집권당인 정의개발당(AKP)이 참패했다. 제1야당인 공화인민당(CHP)은 전체 득표율에서 AKP를 앞선 것은 물론, 최대 도시 이스탄불과 수도 앙카라 등 주요 도시 시장 선거에서 줄줄이 승리했다. 이번 선거 결과에는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등 경제난에 분노한 유권자의 '정권 심판론'이 크게 작용했다는 평가가 많다.

22년째 집권 중인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의 정치 입지는 크게 흔들리게 됐다. 에르도안 대통령의 집중 견제에도 재선에 성공한 CHP 소속 에크렘 이마모을루 현 이스탄불 시장이 대선 판도에서 '에르도안 대항마'로 확실히 자리매김했다.

지난달 31일 이스탄불 앙카라 시청 앞에 제1야당인 공화인민당(CHP) 지지자들이 모여 있다. 앙카라=AP 연합뉴스

지난달 31일 이스탄불 앙카라 시청 앞에 제1야당인 공화인민당(CHP) 지지자들이 모여 있다. 앙카라=AP 연합뉴스


경제 실책에 '정권 심판론' 우세

1일 튀르키예 포스타 등에 따르면 전날 실시된 지방선거 개표율 99.81% 상황에서 야당 CHP가 37.74% 득표율로 1위를 차지했다. 여당 AKP 득표율은 35.49%였다. 특히 CHP는 이스탄불, 앙카라, 이즈미르, 부르사, 안탈리아 등 이른바 '튀르키예 5대 도시'에서 모두 이겼다. 버크 에센 이스탄불 사반치대 교수는 "CHP로서는 1977년 총선 이후 최대 성과, 에르도안 대통령으로서는 정치 경력 중 최대 패배"라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말했다.

튀르키예의 오랜 경제난은 유권자들의 분노를 자극했다. 인플레이션이 유권자 표심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튀르키예 통계청에 따르면 2월 튀르키예 소비자물가는 전년 대비 67% 상승했다. 독립 연구기관들은 이마저도 '보수적인 숫자'라고 지적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인플레이션 속에서도 지난해까지 저금리 정책을 고수하고 최저임금 인상을 꾀하면서 경제 상황을 악화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최근 AKP에 대한 지지를 접었다는 샨리우르파 주민 라마잔 시멘은 "모든 것이 너무 비싸다. 우리는 지쳤다. 이 나라에는 변화가 필요하다"고 FT에 말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선거 패배를 인정했다. 그는 "불행히도 우리(AKP)는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 우리는 국민의 결정을 존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에크렘 이마모을루 튀르키예 이스탄불 시장이 지난달 31일 이스탄불에서 공화인민당 소속 이스탄불 시장 후보로서 지지자들에게 연설하고 있다. 개표 결과 이마모을루는 재선에 성공했다고 튀르키예 포스타 등은 보도했다. 이스탄불=AFP 연합뉴스

에크렘 이마모을루 튀르키예 이스탄불 시장이 지난달 31일 이스탄불에서 공화인민당 소속 이스탄불 시장 후보로서 지지자들에게 연설하고 있다. 개표 결과 이마모을루는 재선에 성공했다고 튀르키예 포스타 등은 보도했다. 이스탄불=AFP 연합뉴스


에르도안 입지 '흔들'… 강력한 대항마 탄생

전문가들은 이번 선거가 에르도안 대통령의 향후 정치 행보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2003년 내각제 총리를 시작으로 지난해 5월 대통령 3선에 성공한 에르도안(70)의 임기는 2028년까지이다. 그런데 인구 1,600만 명의 이스탄불을 2019년에 이어 또다시 야당에 넘겨준 것은 에르도안 대통령 입장에서 치명적이다. 1994년 이스탄불 시장에 당선되면서 정계에 입문한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번 선거 캠페인 내내 '이스탄불 탈환'에 사활을 걸었지만 역부족이었다.

CHP 소속 이마모을루(53) 현 이스탄불 시장은 재선에 성공하면서 자연스럽게 강력한 야권 대선 후보 반열에 올랐다. 개표가 99.98% 진행된 상황에서 이마모을루는 득표율 51.08%를 기록, 상대인 AKP 소속 무라트 쿠룸(39.59%)을 큰 차이로 따돌렸다. 사업가 출신인 그는 중도실용주의 노선을 앞세워 표심을 끌어모은 것으로 평가된다. 그는 승리 확정 직후 이스탄불 광장에서 "이스탄불에서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한 사람이 지도하는 시대는 끝났다"고 외쳤다.



베를린= 신은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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