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외교관도 '갑질 의혹' 한국 대사 외면할 것"... '영' 안 서는 정재호

입력
2024.04.03 04:30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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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권 언론 "정 대사 논란, 한국 국익에 피해"
외교 망신살에 "대사 역할 수행 어렵게 됐다"
언론 브리핑 일방 취소...일부 대사관 업무 차질

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7월 용산 대통령실에서 정재호 주중대사에게 신임장을 수여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7월 용산 대통령실에서 정재호 주중대사에게 신임장을 수여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사진기자단

정재호 주(駐)중국 한국대사를 둘러싼 '갑질 의혹'이 가뜩이나 난항을 거듭하고 있는 한중관계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중화권 언론의 분석이 나왔다. 재외공관 부하 직원의 고발로 이미 리더십에 타격을 입은 데 이어 외신까지 그의 행적을 낱낱이 보도하는 상황에 이르면서 대사로서 더 이상 '영(令)'이 서지 않게 됐다는 평가도 분분하다.

홍콩 유력 일간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1일(현지시간) 전문가들을 인용, "한반도를 둘러싼 지정학적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정 대사 사건'이 한국 국익에 심각한 피해를 줬다"고 보도했다. 이번 논란이 정 대사의 입지를 더욱 위축시키며 한중 간 소통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는 뜻이다.

앞서 주중대사관의 한 주재관은 지난달 초 외교부에 정 대사의 '갑질' 비위를 신고했다. 미국·일본· 러시아 대사와 함께 4강 대사로 불리는 중국 대사의 갑질 의혹이 불거진 것은 이례적이다. 외교부는 "원칙에 따라 철저히 사실 관계를 확인할 것"이라며 조사에 착수한 상태다.

위성락 전 주러시아 대사는 SCMP에 "(싱하이밍 대사 사태를 고려하면) 중국 외교관들이 더 이상 정 대사를 대화 상대로 인정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싱하이밍 주한국 중국대사는 지난해 6월 "미국에 베팅하면 후회할 것"이라는 발언으로 외교적 물의를 빚었다. 한국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고, 이후 싱 대사는 한국 정부 인사들과 이전만큼 소통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중국 측 역시 정 대사의 힘이 약해졌다고 판단, 그를 홀대하기 시작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중국 관영 환구망이 지난달 28일 한국 언론들을 인용, "정재호 주중국 한국대사가 부하 직원들을 힘들게 했다는 이유로 고발됐다"고 보도했다. 환구망 화면 캡처

중국 관영 환구망이 지난달 28일 한국 언론들을 인용, "정재호 주중국 한국대사가 부하 직원들을 힘들게 했다는 이유로 고발됐다"고 보도했다. 환구망 화면 캡처


이에 앞서 중국 정부 입장을 대변해 온 관영 환구망 등 중국 매체들도 "정 대사가 부하 직원들을 힘들게 했다는 이유로 신고를 당한 사실이 폭로됐다"고 보도했다. 정 대사의 갑질 의혹이 이미 베이징 외교가의 화제로 떠오른 셈이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번 사건이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의 호주대사 임명 논란' 직후 터진 데 주목하며 "대사들을 둘러싼 연이은 잡음이 한국의 대외 이미지에 타격을 준 것은 물론 외교관들의 사기를 떨어뜨렸다"고 SCMP에서 비판했다.

주중대사관 안팎에선 "정 대사의 공관장 역할 수행이 어려워졌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베이징의 한 교민은 "언론 접촉도 피한다는데 교민들과의 만남은 제대로 할 수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정 대사는 지난달 28일 갑질 의혹에 관한 한국일보 등의 보도가 나온 뒤 특파원들과의 정례 브리핑을 일방적으로 취소했다. 또한 매주 한 차례 주재해 온 전체회의도 연기하는 등 대사관 일부 업무에도 차질이 발생한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에서 근무했던 한 전직 고위 외교관은 "비위 행위로 본국 조사를 받게 된 것 자체로 이미 대사로서의 위신이 땅에 떨어진 것"이라고 우려했다. 22일부터 서울에서 열리는 정례 공관장 회의가 정 대사 거취를 결정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베이징= 조영빈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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