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동물보호소 개선한다더니... 높은 문턱에 예산 집행은 저조

입력
2024.04.09 16:3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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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동물보호시설 환경개선 예산 집행률 9%
불법 입지 등 해결 이후에야 사업 지원 가능


제주 한림읍 민간동물보호소인 한림쉼터에서 보호되는 개들이 철망 밖을 바라보고 있다. 동물자유연대 제공

제주 한림읍 민간동물보호소인 한림쉼터에서 보호되는 개들이 철망 밖을 바라보고 있다. 동물자유연대 제공

정부가 민간동물보호시설 환경 개선을 위한 지원 사업에 예산을 편했지만 실제 집행률은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보호소들은 입지나 건축물 관련 규정을 지키지 않은 경우가 많은데 이 점을 해결한 후에야 지원을 받을 수 있어서다.

9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민간동물보호시설 환경 개선 지원 사업 예산으로 2022년과 지난해 각각 18억 원이 책정됐지만 실집행률은 2년 연속 9%에 머물렀다.

당초 농식품부는 민간동물보호시설 개선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지난해 4월부터 400마리 이상 민간동물보호시설에 대해서는 신고제를 도입한 데 이어 6월에는 개선 방안까지 발표했다. 신고제는 단계적으로 도입돼 2025년 4월부터는 100마리 이상, 2026년 4월부터는 20마리 이상 보호시설이 의무 신고 대상에 포함된다. 또 개선 방안으로 민간동물보호시설을 가축사육 제한의 예외시설로 명확히 함으로써 가축사육제한구역에 설치할 수 있게 했고, 시설의 농지전용 허가면적 상한은 1만㎡로 확대시켰다.

제주 한림읍에 위치한 한림쉼터는 땅을 확보했지만 불법입지 등의 문제로 민간동물보호시설 개선 지원 사업 신청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동물자유연대 제공

제주 한림읍에 위치한 한림쉼터는 땅을 확보했지만 불법입지 등의 문제로 민간동물보호시설 개선 지원 사업 신청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동물자유연대 제공

정부가 신고제의 본격 시행에 앞서 환경 개선 지원 사업을 추진한 것은 전국 140여 곳으로 추산되는 민간동물보호시설을 제도권 안으로 들이면서 시설과 운영의 질을 높이고, 애니멀호딩(과다사육)을 막기 위한 취지였다. 보호소당 국고와 지방비로 3억6,000만 원까지 지원받을 수 있어 민간보호소들도 기대가 높았다.

하지만 동물보호소들은 쉽게 지원의 문을 넘지 못하고 있다. 대부분의 민간보호시설은 관련 법령에 따라 허가받지 못한 불법 건축물, 비닐하우스 형태의 가설 건축물 등의 형태로 보호소 설립이 어려운 임야나 농지에서 운영하는 경우가 많은데,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이 점을 미리 해결해야 한다는 요구를 받고 있어서다.

최근 제주시 한림읍에 위치한 민간동물보호시설인 한림쉼터 역시 지원을 받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재 116마리를 보호하고 있어 내년 4월까지 보호시설로 신고해야 하는데 지금은 임야에 개 보호 시설을 운영 중이라 불법 입지, 미허가 가설 건축물에 해당한다. 제주시는 먼저 기존 보호소를 철거하고, 임야를 보호소 설립이 가능한 산지전용 허가를 받는 등 '원상복구'를 해 지원 사업을 신청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보호소는 당장 갈 곳이 마련되지 않았다며 현실적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제주 한림읍 민간동물보호소인 한림쉼터에서 지내고 있는 개들의 모습. 동물자유연대 제공

제주 한림읍 민간동물보호소인 한림쉼터에서 지내고 있는 개들의 모습. 동물자유연대 제공

코리안독스(KDS) 등 다른 동물단체들도 이와 비슷한 입지 문제를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농식품부의 자체 조사 결과에서도 민간동물보호시설 102곳 중 80곳이 입지와 건축물 관련 규정과 절차를 위반하는 등 법적 쟁점이 있는 것으로 파악됐을 정도다. 조희경 동물자유연대 대표는 "단체들이 보호소 동물을 이동시키고 시설을 철거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따른다"며 "보호소로 개발을 승인할 수 있는 경우라면 '원상복구'만 고수할 것이 아니라 동물을 이동시키지 않고 개발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실질적인 지원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또 가축사육제한구역에도 민간동물보호시설의 설치가 가능하다고 밝혔지만 이를 법률적으로 확실하게 명시하기 위한 조례 개정 등을 지자체가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탓에 허가 과정에서 혼선을 빚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까지는 가축에 '개'가 포함돼 있다는 점을 들어 설치를 불허하는 상황도 발생하고 있는 실정이다. 유영재 비글구조네트워크 상임이사는 "정부 부처의 법 해석이 현장에서는 무시되고 있다"며 "동물 구조와 보호, 입양에서 민간동물보호시설의 역할이 큰 만큼 지자체도 양성화를 위한 지원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은경 동물복지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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