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커상도 노벨상도 받아야겠다"는 황석영..."근대를 사명으로 쓰다 죽겠다"

입력
2024.04.17 17:05
수정
2024.04.17 17:23
20면
구독

‘철도원 삼대’, 부커상 최종후보로
최종후보 지명 기념 기자회견
차기작 구상도…“계속 시도할 것”
"마지막 작품, 2027년에 탈고"

황석영 작가가 17일 서울 마포구 창비서교빌딩에서 열린 장편소설 '철도원 삼대' 기자간담회에서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철도원 삼대'는 영국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부커상 인터내셔널부문 최종후보에 올랐다. 연합뉴스

황석영 작가가 17일 서울 마포구 창비서교빌딩에서 열린 장편소설 '철도원 삼대' 기자간담회에서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철도원 삼대'는 영국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부커상 인터내셔널부문 최종후보에 올랐다. 연합뉴스

1시간 20분 동안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81세의 소설가 황석영은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쉴 새 없이 말을 이어나갔다. 올해 영국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에 오른 자신의 장편소설 ‘철도원 삼대’(2020)부터 염두에 둔 세 편의 차기작은 물론 프랑스의 소설가 르 클레지오, 미국의 어니스트 헤밍웨이, 콜롬비아의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일본의 오에 겐자부로 등 동시대 작가들의 생애까지 훑어냈다.

앉은 자리에서 세계문학사를 거침없이 횡단한 그는 자신의 문학적 ‘묘비명’까지 써냈다. “황석영이는 근대를 주제로 극복과 수용, 또 근대라는 공간을 자기의 일감이나 사명으로 생각하고 일하다가 죽은 작가다, 이렇게 규정을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동아시아, 근대 극복하지 못해”

철도원 삼대·황석영 지음·창비 발행·620쪽·1만8,000원

철도원 삼대·황석영 지음·창비 발행·620쪽·1만8,000원

17일 서울 마포구 창비서교빌딩에서 열린 기자회견은 ‘철도원 삼대’의 부커상 최종후보 지명을 기념해서 열렸다. 아파트 16층 높이의 발전소 굴뚝에서 고공농성 중인 이진오로부터 철도국 고원(직원)이었던 증조부 이백만, 철도 기관사로 일한 조부 이일철과 아버지 이지산까지 “사건의 먼지 같은 부분이 되어버린” 한국의 노동자를 근대화의 상징인 철도를 중심축에 두고 엮은 소설이다. 2022년 장편 ‘해 질 무렵’으로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1차 후보(롱리스트)에 올랐던 황 작가가 부커상 최종 후보에 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부커상 수상자는 다음 달 21일(한국시간) 발표된다.

‘식민지와 분단 시대의 작가’라고 스스로를 정의한 황 작가가 근대로 사명을 뜻매김 한 것은 “동아시아는 포스트 모던으로 진입한 모양새임에도 내용은 근대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 때문이다. 이를 위해 그 시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을 끊임없이 집필하고 있다는 것이다. 황 작가는 “전 세계가 다양성의 이름으로 결정된 것 없이 서성거리는 불안한 이행기에서는 돌아온 길을 돌아봐야 한다”면서 전 세계적으로도 ‘근대 극복’의 서사가 주목을 받는 까닭을 짚었다. 거듭 부커상 등 국제 문학상 후보에 그의 작품이 오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번엔 내가 상 받아야겠다”

황석영 작가가 17일 서울 마포구 창비서교빌딩에서 열린 장편소설 '철도원 삼대'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황석영 작가가 17일 서울 마포구 창비서교빌딩에서 열린 장편소설 '철도원 삼대'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엔 내가 (부커상을) 받아야겠다’ 이렇게 생각하려고 마음을 바꿨습니다. 그다음 상을 받아야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황 작가는 수상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자신이 그간 국제 문학상 후보로만 80여 차례 올랐다고 운을 떼고는 “풍문에 의하면 노벨상(후보에도 올랐다)”고 말했다. 4년 전 ‘철도원 삼대’ 출간 기자간담회에선 노벨상 관련 언급에 “그건 이제 다 낡은 얘기”라고 잘라 말했던 그였다. 이번에는 당시 같이 이름이 거론됐던 동시대 작가들과 자신의 “(노벨상 수상) ‘타이밍’이 끝난 줄 알았는데, 요새 수명이 좀 늘어서 연장된 모양”이라고 했다.

단순한 욕심이 아니다. 황 작가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철도원 삼대’보다 앞으로 써낼 작품에 대해 더 많이 얘기했다. “원로작가는 완성이 되어 경지에 오른 사람이 아니라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 백 척의 장대 위 허공에서 다시 나아가야 하는 위기의 자리에 있다”면서 “나는 계속 시도를 하겠다”는 이야기다.

황 작가는 미국기지 탄약고에 밀려 폐허가 된 마을을 묵묵히 지켜온 전북 군산 하제마을의 600년 팽나무에 관한 ‘할매’라는 제목의 소설을 쓰겠다면서 “그걸로 노벨상을 받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1920년 일제의 무장 호송대를 습격한 ‘간도 15만 원 탈취 사건’을 모티브로 한 소설에 이어 동학의 2대 교주인 최시형의 35년간 수배 생활도 쓸 계획이다. 마지막 작품의 탈고 시기를 ‘2027년’이라고 못 박은 그는 “85세까지만 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황 작가는 “뒷간에 갔다 왔더니 인생이 다 지나갔네. 중간에 망명하고 징역 살면서 10년을 허송세월한 건 돌려줘야 하지 않나. (그러니) 10년 더 활동해도 되는 거 아닌가 싶다”고 했다. 황 작가의 '맹렬한 쓰기'가 훨씬 더 오래 이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전혼잎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