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처에 슈퍼마켓이 없어요"... '장보기 난민' 대책 마련 나선 일본

입력
2024.04.24 04:30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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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고령층 4명 중 1명이 '장보기 난민'
식료안전보장 정의 바꿔 정책 마련 지원
지역 이동판매 차량·택배 지원 확대도

일본 도쿄의 한 식료품점에서 고령자들이 식품을 고르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일본 도쿄의 한 식료품점에서 고령자들이 식품을 고르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일본 정부가 주거지 근처에 식료품을 살 곳이 없어 곤란한 '장보기 난민'을 줄이기 위해 대책 마련에 나섰다. 일본에 사는 65세 이상 고령층 4명 중 1명이 장보기 난민으로 집계돼 국민 건강권을 위협하는 사회적 문제로 떠올라서다.

23일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에 따르면 일본 농림수산성 조사 결과 65세 이상 고령층 중 장보기 난민은 2020년 기준 약 904만 명으로, 65세 이상 전체 인구의 25%를 넘었다. 2015년 조사와 비교하면 약 10% 증가한 수치다. 75세 이상으로 기준을 높이면 566만 명으로 전체 75세 이상 인구의 30%가 넘는다.

장보기 난민에 대한 정의는 '거주지로부터 장을 볼 수 있는 슈퍼마켓이나 편의점까지 거리가 500m 이상이고, 자동차 사용이 어려운 65세 이상 노인'이다. 고령화·인구 감소로 상점 폐업이 잇따르고, 버스·철도 등 대중교통 노선도 폐지되면서 장보기 난민도 늘고 있다.

도쿄·오사카 같은 도시도 예외 아냐

일본 고령 소비자들이 지난해 3월 25일 도쿄 게이오백화점 여성 패션 매장에서 상품을 둘러보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일본 고령 소비자들이 지난해 3월 25일 도쿄 게이오백화점 여성 패션 매장에서 상품을 둘러보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일본 47개 광역 지방자치단체 중 장보기 난민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은 나가사키현으로 전체 65세 이상 인구의 41%나 된다. 75세 이상 인구로 좁히면 과반이 식료품을 사는 게 어려운 처지다. 아오모리현, 가고시마현이 각각 37%, 34%로 뒤를 이었다.

도쿄, 오사카의 장보기 난민도 각각 50만 명을 넘는 등 도시 지역도 예외가 아니다. 수도 도쿄 인근 가나가와현의 경우 약 60만 명이 장보기 난민인데, 이 지역 65세 이상 인구(지난해 기준 약 232만 명)의 25.8%나 된다. 닛케이는 "지방권은 26%, 도시권은 24%가 장보기 난민"이라며 "전국 장보기 난민의 절반 정도가 도시권에 있다"고 짚었다.


국민 권강권 위협... 대책 마련 착수

일본 정부는 본격적인 대책 마련에 착수했다. 영양 부족과 건강 악화를 일으킬 수 있어 국민 생명권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상점 접근이 어려운 지역에서는 이동판매 차량과 택배 서비스에 대한 지원금을 늘리고, 무인 자율주행 버스 실증 실험 등 교통수단 지원에 힘쓰고 있다. 아오모리현 남부에서는 이동판매 차량 덕분에 하루에 지역 주민 50명 정도가 식료품과 생필품을 구매하고 있다.

일본 국회는 장보기 난민 관련 정책의 근거가 될 '식료·농업·농촌기본법 개정안'을 처리할 계획이다. 식료안전보장에 대한 정의를 '양질의 식료품이 합리적인 가격으로 안정적으로 공급되고,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입수할 수 있는 상태'로 규정해 정책 기준을 제시할 방침이다.


도쿄= 류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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