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과 중국 공산당은 언제까지 생존할 수 있을까

입력
2024.04.26 14:00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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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브루스 J. 딕슨 교수의 '당과 인민'
근대화 이론 맞선 중국 공산당의 생존법 탐구
정치적 책임은 없되 인민의 요구엔 즉각 호응
중국 국민들도 '서구식 민주화'에 강한 거부감
'중국 모델'이 지닌 의외의 내구성 지켜봐야

만화 캐릭터 곰돌이 푸(왼쪽 사진)와 시진핑. 푸가 시진핑을 은유하는 이미지로 쓰이자 2013년부터 곰돌이 푸는 중국에서 사라졌다. 사계절출판사 제공

만화 캐릭터 곰돌이 푸(왼쪽 사진)와 시진핑. 푸가 시진핑을 은유하는 이미지로 쓰이자 2013년부터 곰돌이 푸는 중국에서 사라졌다. 사계절출판사 제공

중국은 도대체 언제 민주화될까. 1989년 톈안먼사태 이후 중국 문제가 논의될 때마다 늘 그 밑바닥 어딘가에 깔려 있는 질문이다. 워낙 오랫동안 반복적으로 물어온 질문이라 이제는 민주화될 때까지 계속 물어봐야 할 '인디언 기우제' 같은 질문이기도 하다.

이 질문엔 큰 전제가 있다. 경제가 발전하고 중산층이 두꺼워지고 사회가 다원화되면 자연스럽게 정치 또한 민주화가 될 것이라는 '근대화 이론'이다. 멀리 갈 것 없이 '대한민국'이 그 증거다. 분단, 전쟁, 독재를 뚫고 산업화에다 민주화까지 이뤘으니 말이다.

2025년 중국은 민주화된다?

서방 전문가들도 그래왔다. 1990년대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치솟기 시작한 이후 이름 좀 있는 서구 전문가들은 2025년 즈음이면 중국 또한 "완전한 자유"를 달성하리라는, "자유민주주의로의 전환"을 이뤄낼 것이란 전망들을 쏟아냈다. 시장 개방, 정치적 자유화를 위한 국제 사회의 압력 따윈 없었다. 어차피 시간 지나면 자연스레 그렇게 되리라 믿었으니까.

중국 공산당의 정책선전용 모바일 앱 '쉐시창궈(學習强國)'의 메인 화면(앞)과 쉐시창궈 인터넷 홈페이지 화면. 로이터 연합뉴스

중국 공산당의 정책선전용 모바일 앱 '쉐시창궈(學習强國)'의 메인 화면(앞)과 쉐시창궈 인터넷 홈페이지 화면. 로이터 연합뉴스

2025년을 목전에 둔 올해 이 전망은 좌절될 것이 확실하다. 아니 그사이 중국은 '학습강국' 앱을 출시한 나라가 됐다. 학습강국(學習强國)은 '공부해서 강한 나라를 이루자'는 뜻이지만 '습'은 시진핑(習近平)을 가리키기도 한다. '시진핑의 사상'을 배우는 앱이다.

미국 조지워싱턴대 부르스 딕슨 교수가 쓴 '당과 인민'은 이런 맥락에서 살펴볼 만한 책이다. 중국의 민주화에 대한 온갖 장밋빛 기대에 맞서 "그런 안이한 전망은 노!"라고 외쳐서다.

중국 공산당의 생존법 '책임 없는 호응'

저자가 꼽는 중국 공산당의 핵심 키워드는 '책임 없는 호응'이다. 정치적 책임은 지지 않으면서도 인민의 요구에는 적극 호응한다. 인민들의 불만이나 요구가 들끓으면 때론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적극 대응하거나 때론 굳이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탄압하지만, 동시에 그걸 민주화된 서구 사회 마냥 선거를 통해 정치적 책임을 지는 방식으로 해소하는 것만큼은 회피해왔다는 얘기다.

중국의 다섯 지도자. 맨 위 가운데부터 시계방향으로 마오쩌둥, 덩샤오핑, 장쩌민, 후진타오, 시진핑. 사계절출판사 제공

중국의 다섯 지도자. 맨 위 가운데부터 시계방향으로 마오쩌둥, 덩샤오핑, 장쩌민, 후진타오, 시진핑. 사계절출판사 제공


이는 책 제목 '당과 인민' 자체가 웅변하는 바이기도 하다. 민주화된 서구 국가는 국가와 국민 사이에 정당, 시민사회, 이익단체 같은 여러 완충지대를 두고 있다. 하지만 중국은 당과 인민이 아무런 완충지대 없이 직접 맞부딪히는 관계다. 삐거덕 소리가 요란할 수 있으니 그만큼 직접적이고 효과적이다.

저자는 마오쩌둥-덩샤오핑-장쩌민-후진타오-시진핑으로 이어지는 다섯 지도자의 시대를 일별 하면서 이런 구조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설명한다. 중국 공산당은 독재를 하되 그 내부는 철저한 능력주의에 따랐고, 최고지도자에 대해서는 5년 중임에다 68세 이하라는 규칙을 적용했다(시진핑은 2018년 개헌으로 국가주석직 3연임 제한 규정을 폐지하고 2022년 3연임을 확정했다).


"이미 높은 수준의 민주주의"라 믿는 중국인들

마오쩌둥의 극좌노선, 톈안먼 사태의 우경화, 1990년대 현실 사회주의권 붕괴 등을 겪으면서 나름대로 고안한, 성장을 추동하고 부패를 막고 엘리트 간 단합을 고취하는 통치 시스템인 셈이다. 이건 저자가 각 분야별로 차분히 설명하기 때문에 그대로 읽어나가면 된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중국인들의 속내다. 저자가 보기에 중국인들은 민주화에, 정확히 말해 서구식 민주화에 관심이 없다. 이런저런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중국인들 스스로는 "중국은 점점 더 민주화되고 있으며 이미 비교적 높은 수준의 민주주의를 달성했다"고 믿는다.

2019년 '우산 혁명 5주년'을 맞아 홍콩에서 반중시위가 격렬해진 가운데 한 시민이 노란 우산과 자유 홍콩이 그려진 길을 걸어가고 있다. AFP 연합뉴스

2019년 '우산 혁명 5주년'을 맞아 홍콩에서 반중시위가 격렬해진 가운데 한 시민이 노란 우산과 자유 홍콩이 그려진 길을 걸어가고 있다. AFP 연합뉴스

이게 가능한 이야기인가. 중국인들에게 민주화란 "선거, 법치, 정치적 자유, 평등권"이 아니라 "통치의 개선, 경제성장, 삶의 질 향상"에 훨씬 더 가깝다. 저자는 이를 "결과론적이고 가부장적인 민주화 개념"이자 "민주(民主)보다 민본(民本)에 가깝다"고 지적하면서도 그렇다 한들 본인들 스스로가 그렇게 느낀다는데 그걸 또 굳이 틀렸다고 해야 할 근거는 뭐냐고 되묻는다.

시진핑의 성패 '호응력'에 달렸다

한걸음 더 나아가 저자는 '공산당 일당 지배 종식 = 민주화' 공식을 순진한 발상이라 지적한다. 사회주의권 붕괴 뒤 "동유럽과 구소련에 있던 29개 공산주의 국가 중 10개 국가만 민주주의 국가"가 됐다. 2010년 전 세계를 놀라게 했던 '아랍의 봄'은 어떠했는가.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17개국 가운데 단 한 나라, 튀니지만 민주화됐다." 중국의 민주화? 더 권위적인, 최악의 정부가 등장할 수도 있다.

당과 인민·브루스 딕슨 지음·박우 옮김·사계절출판사 발행·448쪽·2만6,000원

당과 인민·브루스 딕슨 지음·박우 옮김·사계절출판사 발행·448쪽·2만6,000원


저자는 한때 풍미했던 '내재적 접근법' 마냥 중국 체제를 옹호하는 게 아니다. 중국 모델의 성패는 결국 '호응력의 강화' 문제에 달렸다. 책임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더 적극 호응해야 한다. 정치적 자유 없이 그게 가능할까. 이런 중국 모델은 이전의 근대화 모델을 무력화시킬 수 있을까. 그렇다면 중국 모델을 추종하는 나라들은 얼마나 늘어날까. 우리 또한 좇을 수밖에 없는 관심사다.

조태성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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