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중’이냐 ‘한중일’이냐

입력
2024.05.28 17: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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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27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9차 한일중 정상회의에 앞서 기시다 후미오(왼쪽) 일본 총리와 리창 중국 총리와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서재훈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27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9차 한일중 정상회의에 앞서 기시다 후미오(왼쪽) 일본 총리와 리창 중국 총리와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서재훈 기자

정부는 이번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 3국 정상회의의 공식명을 ‘한일중 정상회의’로 칭했다. 영어로도 ‘Korea-Japan-China’의 순서를 명확히 했다. 하지만 ‘한중일’이 입에 붙어서인지 ‘한일중’이 영 어색하다는 반응이 많다. 정치권이나 각 언론에서도 한일중과 한중일이 그 어느 때보다 어지럽게 뒤섞여 쓰이고 있다. 정부는 차기 회의 개최국이 일본이라 ‘암묵적 원칙’대로 우리나라 다음에 쓴 것일 뿐이라는 건데, 분분한 해석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 뒷공론이 끊이지 않는 건 정부 설명조차 맞아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국가 순서를 개최국-차기 개최국으로 하는 게 원칙이고 기본 순서가 한-일-중이라면, 일본에서 개최할 땐 ‘일중한’이고 중국에서 개최할 땐 ‘중한일’이 돼야 한다. 하지만 그동안 중국에서는 개최국 순서와 관계없이 줄곧 ‘중일한’으로 칭하는 등 원칙과 따로 갔다. 더욱이 보통 때 각국의 3국 지칭 순서는 매우 임의적이어서 중국에선 과거 일본과 댜오위다오(센카쿠열도) 갈등이 심할 땐 ‘중한일’을 더 많이 썼다.

▦ 원칙이 흐릿하고 임의성이 크다 보니, 이번 한일중 순서도 윤석열 정부 들어 중국과 일본에 대한 외교적 입장 변화를 반영한 것이라는 얘기가 많다. 그 근거로 지난해 윤 대통령이 “외교노선의 모호성은 가치와 철학의 부재를 뜻한다”는 말을 하고, 9월 아세안 정상회의에서 “이른 시일 내에 한일중 정상회의 재개를 위해 일본·중국과 긴밀히 소통해 가겠다"며 중국보다 일본을 앞세운 걸 거론하기도 한다.

▦ 그럼에도 우리 정부가 고작 외교적 입장을 천명하기 위해 한일중을 고집했다기보단, 흐릿하나마 개최국 순서 원칙을 따랐다는 설명을 믿고 싶다. 명칭의 국가 순서에 힘을 줘봤자 정상회의나 3국 협력에 하등 도움 될 게 없기 때문이다. 정작 이번 회의에서 새삼 느낀 비(非)원칙이랄까, 더 큰 문제점은 다른 데 있다. 3국 정상회의 출범 때부터의 관행이라곤 해도, 3국 정상 간 국가적 위상의 불균형이다. 3국 협력이 절실하다면 중국도 앞으론 국가주석이 참석하는 방안이 진지하게 논의됐으면 한다.

장인철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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