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을 따르는 정책이 늘 옳을까?

입력
2022.09.07 00:00
26면

학제개편안 정책 내용보다 논란만
교육정책, 논쟁 피하면 해결은 요원
여론을 살피되 결정은 정책당국이

박순애 전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지난달 8일 서울 여의도 한국교육시설안전원에서 거취와 관련해 입장 표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순애 전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지난달 8일 서울 여의도 한국교육시설안전원에서 거취와 관련해 입장 표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교육부의 5세 취학 정책은 한 달이 채 안 되는 짧은 기간 동안 여론을 들끓게 하다가 장관의 사퇴와 함께 홀연히 사라졌다. 정책 발표와 거의 동시에 학부모단체나 교원단체의 큰 반발이 일었고 언론보도나 소셜미디어 또한 반대여론의 격한 반응과 장관의 행보에 관한 장면들이 절대다수였다. 반면, 정작 이러한 정책이 나오게 된 배경이나 예상되는 영향력, 문제점이나 보완할 점, 장단점에 관한 정보는 극히 적었다.

보도에 따르면 같은 정책은 이전 여러 정부의 장기 계획에도 있었다고 한다. 교육은 한국사회에서 가장 중요하고 개혁이 필요하지만 정책 변화가 미치는 영향의 범위가 크고 민감한 영역이다. 그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교육부가 이 정책을 처리한 방식에서 드러난 무능함과 무책임함은 더 말할 나위가 없어 이번 사태로 교육부가 없어야 우리 교육이 산다는 말에 스스로 힘을 실어준 꼴이 되어버렸다.

돌봄 시스템, 사교육, 교육격차의 문제 등 5세 취학 정책을 둘러싸고 있는 요인들 하나하나가 진지하게 논의되어 해결책을 찾아야 할 주제들이다. 정책이 폐기된다고 그 정책이 해결하고자 했던 문제가 같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어떤 이유로 정책이 폐기되었다면 그것이 차후 언제쯤 실행되어야 하는 시점의 문제인지, 혹은 그 정책 목표를 위해 어떤 대안이 가능할지 등 지속적으로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중요하고 복잡한 문제일수록 서로 다른 관점과 해법이 존재한다. 중요하지 않은 문제이거나 해결책이 뻔한 이슈라면 논쟁이 붙을 리가 없지 않은가. 불편하더라도 충분히 서로 다른 견해가 쏟아져 나와야 문제를 보다 완결성 있게 이해할 수 있고 합리적인 해결책이 찾아질 수도 있다.

다양한 욕구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사회에서 모두에게 환영받는 정책은 그리 많지 않다. 중요하고 복합적인 문제일수록 서로 다른 의견이 치열하게 다툼을 벌이는 불편한 과정을 거쳐야만 다양한 관점에서 문제를 입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게 되어 보다 장기적인 해법에 다가갈 수 있다. 주요한 정책을 충분히 사회적 논의도 거치지 못한 채 '국민이 원치 않기 때문에 추진하지 않는다'고 얼버무리는 일이 앞으로도 반복될 것인지 덜컥 겁이 난다. 당장의 논란이 불편해서 피하기만 한다면 우리는 시급한 교육 영역의 문제를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여론은 그 시대의 미디어가 갖는 특성에 따라 구성된다. 즉시적인 확산과 증폭으로 특징지어지는 미디어 환경은 장기적인 안목으로 숙고해야 하는 이슈를 담아내기에 그리 적합한 환경이 아니다. 정보가 많이 주어진다고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전문가의 의견이 희석되기도 쉬운 환경이다. 사람들의 반응과 의견이 마른 날 산불처럼 퍼지는 상황이라면 잠깐 멈추고 생각해 보자고 하거나 주류와 다른 의견을 내는 사람은 그대로 침묵당하기 일쑤다.

여론에 따라 정책을 편다는 것은 늘 옳은 것은 아니다. 말 그대로 모두의 의견을 파악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다. 논쟁적인 이슈라면 말 그대로 하나의 여론으로 수렴되기 어려운 이슈를 말한다. 여론을 살피는 일은 현장의 다양한 목소리를 듣고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진정한 장애는 무엇인지, 반대를 무릅쓰고 꼭 추진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가려야 하기 때문에 필요하다. 하지만 어려운 결정을 내리고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치밀하게 실행에 옮기는 것은 결국 정책당국의 몫이다.

여론의 뭇매? 정책입안자라면 때로는 감수해야 할 몫이다. 이번 논란이 한바탕 소모전으로 모두의 시간을 낭비한 것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적어도 논쟁은 계속되어야 한다.


김은미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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