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란 말을 가장 잘 활용한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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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3.02.06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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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레이건 독트린

'중미 공산주의 저지'라는 문구를 새긴 티셔츠를 들어 보이는 1986년 3월의 로널드 레이건. 위키미디어 커먼스

'중미 공산주의 저지'라는 문구를 새긴 티셔츠를 들어 보이는 1986년 3월의 로널드 레이건. 위키미디어 커먼스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은 배우 시절부터 연기보다 정치에 능했다. 그는 1932년 일리노이주 유레카대 졸업 후 아이오와의 한 라디오방송국 스포츠 아나운서로 5년 근무한 뒤 37년 캘리포니아로 이주했다. B급 영화 ‘사랑은 생방송 중(Love is on the Air, 37)’으로 데뷔해 64년 ‘살인자들(The Killers)’까지 약 50여 편의 영화에 출연했지만, 갤럽조사에서 41~42년 ‘Top 100 스타’에 포함된 것 말곤 도드라진 이력을 남기지 못했다. 대신 그는 1947~52년 미국배우조합장을 지내며 매카시 시대 미 의회 실력자들과 친분을 쌓았고, 59~60년 배우조합장에 재선출됐다.

그는 1964년 공화당 대선 후보 배리 골드워터 지지 연설로 정계에 입문했다. ‘선택의 시간’이란 제목의 연설에서 그는 “힘으로 시민을 통제하는 정부가 아닌 작은 정부”를 역설하며 좌·우가 아니라 위·아래가 “여러분과 내게 주어진 선택지”라고, “인류의 오랜 꿈인 개인의 자유의 최대치(위)를 선택할 것인지, 전체주의라는 개미 더미(아래)를 선택할지” 물었다. 그는 1966년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됐고, 두 차례 고배 끝에 80년 대통령이 됐다.

만 8년 레이건 정부 정책은 감세, 복지 축소를 골자로 한 레이거노믹스와 공세적 반공주의의 레이건 독트린으로 요약된다. 첫 임기의 무게중심이 전자에 있었다면 두 번째 임기의 초점은 단연 후자였다. 1985년 2월 6일 연두교서에서 그는 “자유란 선택받은 소수의 특권이 아니라 모든 신의 자녀가 함께 누려야 할 권리”이며 “그들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고 확장하는 것이 미국의 사명”이라 역설했다. 아프가니스탄 니카라과 앙골라 캄보디아 이란 베트남 등의 공산 정권을 전복시키기 위한 대규모 반군 지원. 봉쇄-데탕트의 냉전 전략에서 벗어난 이른바 ‘롤백(roll back)’ 전략이었다. 평가는 극단적으로 엇갈리지만 그는 가장 선명한 족적과 후유증을 남긴 20세기 정치인 중 한 명이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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