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스포츠 씨름, 청춘 넘기고 중장년도 '으랏차차'

민족 스포츠 씨름, 청춘 넘기고 중장년도 '으랏차차'

입력
2023.02.07 12:00
23면

<7> 씨름 동호회 신풍

편집자주

노인 인구가 급증하면서 한국은 2025년엔 65세 이상 비율 20.6%로 초고령 사회 진입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건 통계에 따르면 한국인의 기대 수명은 83.5세이나 건강 수명은 66.3세에 불과합니다. 평균 17.2년을 질병에 시달리며 살아가는 서글픈 현실. 건강한 노년을 실천하는 이들이 즐기는 운동을 통해 100세 시대 건강 장수법을 소개합니다.

생활체육 씨름의 터줏대감 권재훈(오른쪽)씨가 5일 경남 창원 서원곡씨름장에서 딸 선진씨와 샅바 싸움을 하고 있다. 창원=김지섭 기자

생활체육 씨름의 터줏대감 권재훈(오른쪽)씨가 5일 경남 창원 서원곡씨름장에서 딸 선진씨와 샅바 싸움을 하고 있다. 창원=김지섭 기자

민족 고유의 스포츠 씨름 인기가 생활체육으로도 번지고 있다. TV 예능프로그램 ‘씨름의 여왕’, ‘천하제일장사’ 등에서 초심자도 씨름을 하는 모습이 방영되면서 체구가 큰 사람이 아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스포츠로 인식이 바뀌었다.

경남 창원 지역 씨름 동호회 ‘신풍’이 격주 일요일마다 운동을 하는 5일 창원 서원곡씨름장에도 대다수가 20·30대였고, 젊은 여성들도 눈에 띄게 많았다. 조회호(44) 신풍 회장은 “불과 석 달 전 씨름을 좋아하는 사람끼리 모여 11명으로 시작한 회원 수가 현재 30명까지 늘었다”며 “씨름 인기를 체감 중”이라고 밝혔다.

청춘들 사이에서 샅바를 맨 장년의 남성은 회원들의 자세를 잡아주고 기술을 전수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신풍의 터줏대감이자 대부로 통하는 권재훈(58)씨다. 경남경찰청에 현직 경찰로 몸담고 있으며 씨름 동호회 활동만 30년 넘게 한 베테랑이다. 내일모레면 환갑인데도 모래판에서 열정과 실력은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생활체육 씨름대회 장년부(45세 이상)에서 열 살 이상 어린 경쟁자들을 제치고 수차례 입상했고, 연령 제한 없이 맞붙는 통합 경기에서도 4강에 들 정도다. 그래서 경남 지역 경찰 사이에서는 ‘권 장사’로 불린다.

권씨는 “모래판에 오르면 나이를 잊는다”며 “대회에서 20·30대 청춘들을 이기면 내가 청춘으로 돌아가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나이가 들수록 근력 운동이 필요하고, 자기 관리도 해야 한다”며 “남들은 ‘그 나이에 씨름하다가 다친다’고 하는데 여태껏 다쳐본 적이 없다. 대회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긴장감도 좋다”고 덧붙였다.

권씨 부녀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창원=김지섭 기자

권씨 부녀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창원=김지섭 기자

권씨의 씨름 사랑은 딸에게도 전파됐다. 아빠 손을 잡고 2019년에 씨름장을 처음 따라간 후 지금까지 씨름을 취미로 하고 있는 선진(22)씨는 “처음에 아빠한테 ‘무슨 씨름이냐’고 했는데 한번 해보니 기술 없이도 이기고 하니까 재미있었다”며 “나보다 큰 사람을 기술로 이기는 게 짜릿하다”고 씨름의 매력을 설명했다.

씨름은 상대를 힘으로 잡아당기고, 기술을 걸어 넘어뜨리는 격렬한 운동이지만 기술과 요령만 알면 부상 위험이 없다는 게 권씨의 설명이다. 그는 “생활체육 씨름도 체격이 비슷한 사람끼리 할 수 있도록 체급이 잘 나눠져 있다”면서 “무엇보다 넘어질 때 잘 넘어지는 연습을 많이 해야 한다. 연습 때부터 승부욕 탓에 안 넘어지려고 버티면 다친다”고 조언했다.

또 씨름은 근력을 키우는 데도 도움이 된다. 조 회장은 “하체 근육을 많이 사용하고, 허리와 팔 근력을 강화할 수 있기 때문에 씨름을 하면 나이가 들어도 근손실을 걱정 안 해도 된다”고 자부했다. 다만 승부욕을 불태우기보다는 즐기는 마음이 중요하다. 신풍을 지도하는 허상훈(44) 감독은 “생활체육으로 하는 만큼 즐길 줄 알아야 한다”며 “1년만 꾸준히 배우면 50·60대 중장년도 젊은 사람들을 이길 수 있는 게 씨름이다. 모래판에서 청춘을 되찾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중장년 씨름 인구를 늘리기 위해서는 개선돼야 할 점이 많다. 천하장사 이만기, 강호동을 배출한 씨름의 고장 창원, 마산조차 동호인들이 씨름을 즐길 수 있는 전용 공간이 없다. 서원곡씨름장은 평소 경남대, 창원시청 엘리트 선수들의 전용 훈련 장소다.

씨름 동호회 '신풍' 회원들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창원=김지섭 기자

씨름 동호회 '신풍' 회원들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창원=김지섭 기자

생활체육 대회도 45세 이상 장년부가 끝이 아니라 60세 이상 노년부 도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비슷한 연령끼리 맞붙어야 씨름의 진입장벽도 낮아진다는 이유에서다. 권씨는 “30년 넘게 같이 씨름을 해온 60대 이상 선배들은 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데 현실적으로 열 살 이상 어린 상대와 겨루는 걸 꺼려 씨름장에 잘 나오지 않는다”고 아쉬워했다.

대한씨름협회 역시 씨름의 저변 확대를 위해 여러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그중 하나로 품새 도입을 검토 중이다. 태권도처럼 품새를 만들어 어르신들도 쉽게 씨름에 참여해 신체와 정신 건강을 지킬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다. 태권도는 품새 위주로 하는 실버 태권도가 활성화됐다. 씨름인들은 “품새는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이라며 “특히 겨루기를 하기 힘든 어르신들에게 적합해 보인다”고 입을 모았다.

창원=김지섭 기자 onion@hankookilbo.com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