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그리고 밀려나는 사람들

입력
2023.11.08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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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과 비서울 간 위계질서... 소설로 형상화
근교도시 서울 편입 시도, 효과는 미지수
정치, 밀려나는 존재들 외면해서는 안 돼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지난 7일 경기 김포시 장기본동 행정복지센터에서 열린 김포시의 '서울 편입 공론화' 간담회. 뉴시스

지난 7일 경기 김포시 장기본동 행정복지센터에서 열린 김포시의 '서울 편입 공론화' 간담회. 뉴시스

한국문학사에서 가장 자주 그리고 인상적으로 다뤄진 도시는 따져볼 것 없이 서울이다. 멀게는 식민지 시대의 이상과 박태원으로부터 김승옥과 이호철까지, 서울은 기라성 같은 작가들에게 새로운 감각을 깨웠고 다채로운 감정들을 불러일으켰다. 한 문화연구자는 “한국문학이 근대성·도시성을 체험하고 논하는 공간은 절대적으로 서울이었고, 일종의 문학적 관습”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서울은 사람, 일자리, 돈과 권력 등 모든 것을 빨아들인다. 다만 서울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서울에 진입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 혹은 진입하지 못해 밖으로 밀려나는 이들은 복잡한 인간사를 다루는 소설의 단골 소재다.

때가 때인지라 10여 년 전 중견 소설가 9명이 서울을 테마로 쓴 단편소설집 ‘서울, 어느 날 소설이 되다’(2009)를 다시 꺼내 읽었다. 서울과 비(非)서울 간 위계질서의 강고함에 대한 작가들의 예민한 감각이 눈에 들어왔다. 많은 작품들에서 소외감이나 열패감, 막막함이 느껴진 건 그런 연유일 것이다. 수록작 중 하성란의 '1968년 만우절'의 주인공은 '전철을 두 번 환승하고 마을버스를 타고 이십여 분 들어가는 위성도시’에 살고 있다. 중병에 걸린 아버지를 간병하기 위해 하루 걸러 서울의 큰 대학병원과 집을 오가는 그는 스스로 '비주류의 외로움'을 타는 처지라고 자조한다. 편혜영의 '크림색 소파의 방'은 공장이 많은 소도시에 살던 한 가족이 서울로 이사 가는 내용이다. 서울이 테마이지만 정작 소설에서 서울은 신기루다. 가족들이 탄 차는 서울 진입을 30분 앞두고 고장이 나고 빗줄기까지 쏟아지면서 서울은 그 ‘형체가 보이지 않는'다.

작가들이 서울의 구심력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서울에 진입하려는 이들의 열망과 낙오된 이들의 좌절감을 그려냈다면, 팽창하는 '서울'에 눈을 돌린 이도 있다. 교통망 발달로 서울의 정치·경제·문화적 영향력이 주변 도시로 확장되고 서울과 주변 도시가 사실상 거대한 공동체가 된다는 ‘대(大)서울’개념은 문헌학자이자 답사가인 김시덕의 활발한 저술로 많이 알려졌다. 그에 따르면 서울의 바깥 도시에 살면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시민들이 주택 구매를 고려하는 지역적 한계선이 바로 대서울의 경계다. 그 경계는 이제 서울, 경기도가 아니라 강원 춘천, 충북 청주까지로 뻗치고 있다. 대체로 1963년에 획정된 지금의 서울 시계(市界)의 기능이 사실상 소멸됐다는 의미일 것이다. 서울이 그렇게나 커져도 김시덕의 눈에 밟히는 것들은 대서울의 바깥으로까지 밀려나는 도시빈민, 상이용사, 세입자들의 흔적이다.

최근 정부 여당이 경기 김포시의 서울 편입을 공식화하면서 비슷한 목소리가 구리, 안양, 광명 등 서울을 둘러싼 여타 도시들로 번지고 있다. 강남 개발에서 보듯 과거의 서울 행정구역 확대가 안보 혹은 산업재편과 같은 국가전략에 따른 정책 판단이었다면 최근의 이들의 움직임은 서울과 비서울 간 격차에서 생기는 서울 밖 사람들의 욕망을 정치적으로 활용하려는 노림수라는 게 차이라고 할 수 있겠다.

대서울화의 현실을 인정해 서울과 주변도시들을 통합한 ‘메가시티’를 만든다면 국가경쟁력이 강화될지, 아니면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를 키워 재앙적 결과로 돌아올지 도시계획 전문가가 아닌 나로서는 예측할 수 없다. 다만 이미 많은 이들이 직시했듯 서울에 들어가지 못하는 존재들의 열패감, 좌절감, 소외감을 들쑤시는 일, 서울에 진입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이들을 더욱 밖으로 밀려나도록 하는 건 정치가 할 일이 아니라는 점 역시 분명하다.

이왕구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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