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명의 엄마가 국가에 묻고 있다

입력
2024.06.28 17:00
18면
구독

채 상병·훈련병·교제살인 피해자 모친
편지와 청원글로 정부 대처 의문 제기
이에 대한 답변은 언제쯤 들을 수 있나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왼쪽 사진부터 채수근 상병, 훈련병 박모씨가 어머니를 업고 있는 모습, 이효정씨. 연합뉴스·군인권센터 제공·JTBC 화면 캡처

왼쪽 사진부터 채수근 상병, 훈련병 박모씨가 어머니를 업고 있는 모습, 이효정씨. 연합뉴스·군인권센터 제공·JTBC 화면 캡처

전북 남원에서 서울 신사동 산부인과까지 왕복 8시간을 오가며 어렵게 가진 아이. 스무 살 아들 수근이는 아토피가 있어서 수영을 못 했다. 해병대 고 채수근 상병의 어머니는 1년이 지난 아직도 의문이다. 상부에서 수중 수색을 지시했을 때 아들의 수영 실력을 확인이라도 했는지.

지난달 갓 군에 입대한 박모 훈련병. 연병장에 찾아온 엄마와 아빠를 꼭 안고 “군 생활 할 만할 것 같다”고, “걱정 마시고 잘 내려가시라”고 했다. 그런 아들이 입대 열흘 만에 가혹한 군기훈련(얼차려)을 받다가 사망했다. 아들이 사경을 헤맬 때, 군은 늦게서야 전화로 알리고 부모가 올라올 교통편을 알아봐 주겠다고 했다. 화가 난 아버지가 소리쳤다. “우리가 어떻게 갈지가 아니라 아들을 어떻게 큰 병원으로 옮길지 고민하라.” 억장이 무너지는 마음으로 아들에게 말했다. “아들아, 아빠 엄마가 응급헬기를 띄울 힘 있는 부모가 아니어서 너를 죽인다.”

19세 이효정씨가 지난 4월 어머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 엄마… 나 빨리 앞으로 와줘. ○○이가 나 엄청 때렸는데, 나 여기 문제 생겼어.” 효정씨는 결국 숨을 거뒀고, 어머니는 분노했다. “경찰은 가해자가 구속될 때 ‘가해자 인생도 생각해달라’고 훈계하는데 억장이 무너졌습니다. 정작 효정이가 살려달라고 11번이나 신고했을 때 경찰은 가해자에게 ‘효정씨 인생도 생각해달라’라는 말 한마디, 권고 조치 한번 해주지 않았습니다.”

자식의 죽음이라는 지옥을 안고 있는 3명의 어머니가 이달 12, 14, 19일 각각 공개한 편지나 청원문엔 응어리가 가득하다. 이들의 의문은 사적이면서도 공적이다. 지난해 7월 채 상병이 구명조끼도 없이 물속 수색에 투입될 때, 그의 수영 실력을 누가 확인은 했는지를 왜 국민들이 아직도 몰라야 하는가. 박 훈련병의 대형 병원 이송은 제때 이뤄졌는가. 효정씨의 신고를 허술하게 처리하고 유족에게 비수를 꽂은 경찰은 내부 감찰이나 조사를 받고 있긴 한가.

사회적 죽음은 지독히도 힘없는 자들을 덮치는데, 힘이 없어 제대로 된 답변을 들어본 적이 없다. 아마도 답변의 부재는 또 다른 죽음을 틔우는 퇴비가 될 것이다.

경찰이 효정씨의 어머니에게 했다는 “가해자 인생도 생각해달라”는 말. 자식의 죽음에 휘청이는 어미를 공권력이 한 번 더 때려눕히는 것인데, 이 말은 아주 여러 형태로 변주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채 상병 사건으로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이 수사 대상이 된 데 분노해 그를 경찰 이첩 대상에서 제외하게 했다는 이른바 ‘VIP 격노설’도 본질은 같다. 실체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여러 정황과 증언으로 봤을 때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 죽어간, 힘없는 피해자 목숨보다 가해자를 더 챙기는 마음. 가해자에게만 발휘되는 놀라운 공감능력이라 하겠다.

이 땅의 힘 좀 있는 위정자나 공직자에게 바라는 바는 제발 안타까운 죽음에 합당한 답을 하라는 것이다. 과오를 철저히 조사하고 도덕적, 형사적 책임을 지고 매뉴얼과 제도를 개선하라는 것이다. 죽음에 내심의 등급을 나누지 말고, 당신들 목숨 못지않게 소중한 죽은 이의 그 목숨에 측은지심(惻隱之心)을 가져달라는 것이다. 가해자가 그렇게나 불쌍하다면, ‘나는 공무를 하면 안 되는 사람이구나’ 깨닫고 사인(私人)으로 돌아가면 된다.

24일 경기 화성시의 배터리공장에서 발생한 화재로 23명이 사망했는데, 그중 18명이 외국인 노동자였다. 사회적 죽음은 이번에도 약하고, 방치된 사람들을 귀신처럼 찾아냈다. 정부는 이런 빈틈들을 메울 의지가 있는가.

이진희 논설위원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